
뉴스아트 편집부 | 홍대 앞과 합정동 일대의 문화 지형도에서 ‘지하(地下)’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었다. 주류 제도의 바깥, 자본의 논리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전위(Avant-garde)와 실험의 영토였다. 그 중심에서 오랫동안 한국 실험예술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요기가 표현갤러리’가 긴 잠행을 깨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요기가’의 수장 이한주 대표는 오는 2026년 7월 12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에 ‘요기가갤러리(YOGIGA Gallery)’를 정식 재개관한다고 밝혔다. 꽉 막힌 지하를 벗어나 따스한 햇살이 드는 건물 2층에 새 둥지를 튼 것이다.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다 만 것 같은 아쉬움에 자꾸만 미련이 남아 결국 다시 문을 연다”는 그의 일성은, 젠트리피케이션과 상업화로 퇴색해 가는 홍대 권역의 대안 문화 생태계에 다시 한번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1. 세 갈래의 실험: 섬바디, 갤러리, 그리고 아트숍
새로운 ‘요기가갤러리’는 단순한 화이트 큐브(White Cube)식 전시 공간을 지향하지 않는다. 공간은 크게 세 가지 유기적인 서사로 쪼개져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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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가 섬바디갤러리 (한 작가의 아카이브 기획전시)
한 주씩 공간을 통째로 대관하거나 기획전을 여는 공간으로, 창작자의 깊은 내면과 흔적을 추적한다. 재개관을 여는 첫 신호탄은 요기가 친구들의 릴레이 전시인 ‘내가 누구게?’다. 섬처럼 독립된 개개인의 예술가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찬찬히 돌아보며,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안아주는 하나의 ‘몸’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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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가 갤러리 (모든 곳이 갤러리)
“티끌 모아 삼라만상, 구석구석 자투리 공간이 모이면 우주에서 가장 큰 갤러리가 된다”는 이 대표의 오랜 모토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손바닥만 한 틈새라도 주체의 표현이 개입된다면 훌륭한 갤러리가 될 수 있다는 대안적 공간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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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들번들 아트숍 (상품 한 점에 작품 한 점)
커피나 밥값은 쉽게 지불하면서도 예술품 소장에는 주저하는 대중의 심리 장벽을 허물기 위한 실험이다. 작품과 상품의 라이선스를 조각내어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 맥주 한 잔 값으로 멋진 작품의 ‘1/1000’을 소유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만 원이 만 개 모여 1억 원짜리 작품이 되는 짜릿한 순간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한다.
2. ‘불가사리’의 즉흥 정신, 새로운 공간을 적시다
‘요기가’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줄기가 바로 ‘불가사리(Bulgasari)’다. 2003년 일본인 뮤지션 사토 유키에의 제안으로 시작된 불가사리는 노이즈, 아방가르드, 즉흥연주, 무용, 퍼포먼스를 망라하는 국내 최장수 실험예술 정기 발표회다.
합정동 시절,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마다 요기가의 지하 공간을 소리와 비명, 몸짓으로 채웠던 불가사리는 한국 실험음악가들의 인큐베이터이자 해방구였다. 정형화된 악보나 약속 없이, 오직 현장의 공기와 연주자 간의 호흡, 제스처만으로 소통하는 즉흥음악은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닌 ‘존재들의 생생한 교감’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정식 재개관을 앞둔 지난 6월 28일에도 새 공간의 임대계약 잔금을 치르자마자 이곳에서 불가사리 무대가 펼쳐졌다. 거친 지하의 낭만은 사라졌을지언정,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아래에서 펼쳐진 즉흥의 에너지는 요기가의 정신이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3. "예술은 생필품이다"… 대안 공간이 살아남는 법
문화예술계가 이번 재개관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한주 대표가 고수해 온 ‘예술은 생필품(Art is a Life Necessity!)’이라는 명제 때문이다. 그는 예술을 귀족적인 사치품이나 제도권의 전유물이 아닌,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일상의 필수재로 바라본다. 과거 뮤지션들의 공연비를 물건으로 대신 받던 ‘실물콘서트’ 같은 파격적인 기획도 이러한 철학적 기반에서 나왔다.
자본 중심의 예술 시장에서 요기가갤러리가 보여줄 행보는 일종의 ‘상부상조적 실험’이다. 이웃 대안 공간들과 연대하고, 창작자와 관객의 틈을 좁히며, 거창한 담론 대신 다독다독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공간.
새로운 요기가갤러리는 매주 월요일 문을 닫으며, 평일과 주말 모두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밀도 있게 불을 밝힌다. 7월 12일 오후 3시, 마포구 와우산로 2층 창가로 스며들 햇살 속에서, 한국 대안 문화의 가장 완고하고도 아름다운 불씨가 다시 지펴지려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