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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의 구의동 오윤 테라코타 부조, 시민의 힘으로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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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노동자 청년이 새긴 부조, 40주기를 맞아 시민 1만 1,750명의 서명과 크라우드펀딩으로 되살아나다

오윤 작가와 1973년 구의동 테라코타 부조

 

오윤 작가와 1973년 구의동 테라코타 부조

 

오윤 작가와 1973년 구의동 테라코타 부조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낡은 은행 건물 안쪽 벽. 반세기 가까이 가벽 뒤에 숨어 있던 테라코타 부조 두 점이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건물은 올봄 새 주인을 맞았고, 철거는 이르면 2~3개월 안에 시작된다. 행정에 보존을 청원하는 목소리는 이미 1만 명을 넘어섰지만, 행정의 시간은 철거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먼저 지갑을 열기로 했다.

 

흙을 빚던 노동자 청년들

 

1973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구의동 지점 객장 양쪽 벽에 마주 보는 부조 두 점이 들어섰다. 한쪽 벽에는 사람의 형상이, 맞은편 벽에는 새의 등을 표현한 추상 문양이 새겨졌다. 흙을 구워 빚은 이 작업을 한 이는 오윤·오경환·윤광주, 세 청년이었다.

 

오윤은 이 작업에 앞서 1971년 삼각지 지점 부조에 참여했고, 곧이어 입대했다. 위장병이 악화돼 이듬해 조기 제대한 그는 동료들이 이어가던 부조 작업에 다시 합류해 구의동 지점을 함께 완성했다. 이들은 부조를 굽기 위해 경주와 일산에 전돌 공장을 직접 운영하며 흙과 씨름했고, 신라 고분과 와당의 고졸한 미감을 손끝으로 익혔다. 이듬해에는 동대문 지점 부조로 작업이 이어졌다.

 

노동자였던 청년들이, 노동자들이 매일 드나드는 은행 객장에 자신의 손으로 구운 흙을 새겨 넣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은행은 이 부조를 가벽으로 가려버렸다. 사람들은 그 앞을 스치듯 지나다니면서도 벽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이 작품은 세상에서 잊혔다.

 

마흔 살에 멈춘 손

 

오윤(1946~1986)은 소설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의 장남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갯마을 사람들의 삶을 문장으로 옮겼다면, 아들은 민초들의 얼굴을 나무판에 새겼다.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한 1965년, 한국 미술계는 서구 추상이 대세였다. 그러나 오윤의 눈은 다른 곳을 향했다. 김홍도의 풍속화와 민화, 탈춤과 굿에서 그는 미술의 뿌리를 찾았다. 1969년에는 동료들과 '현실동인'을 결성해 한국 현대미술사 최초로 '현실을 그리는 미술'을 선언했다. 전시는 당국의 제지로 무산됐지만, 그 선언은 10년 뒤 '현실과 발언' 창립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로 이어졌다.

 

그가 평생 놓지 않은 매체는 목판화였다. 여공과 농부, 국밥집의 저녁과 할머니의 주름, 짓눌린 한(恨)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춤사위를 그는 칼끝으로 나무에 새겼다. 〈칼노래〉, 〈춤〉, 〈도깨비〉. 그렇게 찍어낸 판화를 그는 에디션도 넘버링도 없이 시집 표지에, 민주화 현장의 포스터와 걸개그림에, 아이들의 동화책 삽화에 아낌없이 내주었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그가 남긴 말 그대로였다.

 

1986년 5월, 그는 생애 첫 개인전 「칼노래」를 열었다. 두 달 뒤인 7월 5일,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첫 개인전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마흔 살이었다. 세상은 10년마다 그를 다시 불러냈다. 10주기 추모전, 20주기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30주기 가나아트센터 회고전이 이어졌고 2005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그리고 40주기인 올해, 이번에는 그의 작품이 먼저 세상 앞에 나타났다.

 

우연이 닿은 유족, 그리고 아들의 목소리

 

건물을 매입한 이가 국립현대미술관에 부조의 처리를 문의하면서, 그 문의는 뜻밖에도 유족에게 가닿았다. 오윤의 차남 오상엽 씨는 아버지가 남긴 부조가 철거 직전이라는 소식을 듣고, 보존과 이전을 적극적으로 바라고 나섰다.

 

"멸실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작품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도, 그것을 지키자고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이름을 올려 주신 것도 유족으로서는 벅찬 일입니다. 힘을 모아 주신 시민 한 분 한 분께 가족을 대신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벽화는 이제 저희 가족의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상엽 씨의 말이다.

 

1만 1,750명의 서명, 그리고 시민의 펀딩

 

「오윤 구의동 테라코타 보존 추진위원회」가 발족하고,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시민 청원을 시작했다. 목표는 서명 1만 명. 결과는 1만 1,750명으로, 목표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행정이 움직이기까지는 통상 수개월 이상이 걸리고, 철거까지 남은 시간은 그보다 짧다.

 

그래서 추진위는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와 함께 크라우드펀딩을 열었다. 목표 금액은 최소 1억 원. 해체, 이전, 손상 점검과 보존 처리, 안전한 임시 보관에 쓰인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모인 만큼 즉시 작품 해체·이전에 집행합니다." 추진위는 이렇게 밝혔다. "이번을 놓치면, 다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펀딩은 예술인 작품 플랫폼 씨앗페(SAF2026)에서 진행 중이며, 마감일은 씨앗페 2026 기금마련전 종료일에 맞춰 8월 14일로 정해졌다. 후원 금액과 관계없이 모든 후원자는 '구의동 테라코타 보존 후원자'로 동일하게 예우받는다. 1만 원부터 참여할 수 있고, 30만 원 이상 후원자에게는 오윤 「칼노래」(1985)의 사후판화를 촬영해 제작한 한정 지클레 아트프린트가, 100만 원 이상 후원자에게는 오윤의 동료 예술가·평론가와 함께하는 '후원자의 밤' 초청이 주어진다. 모금액이 목표를 초과하면, 초과분은 오윤을 기리는 사업과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운영자금으로 쓰인다.

 

죽은 이가 산 이를 살리는 구조

 

씨앗페는 작품 판매 수익으로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을 조성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잇는 캠페인이다. 2022년 12월부터 2025년 9월까지 354건의 대출이 집행됐고, 상환율은 95%에 이른다. 이번 오윤 테라코타 펀딩에서 목표 초과분이 이 대출 기금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은, 그래서 단순한 문구가 아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예술가가 남긴 작품이, 오늘을 살아가는 동료 예술가의 다음 한 달을 지탱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 한강은 소설 속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바 있다. 이 펀딩은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고 있는 셈이다. 오윤이 평생 믿었던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 그가 떠난 지 40년 만에 부조 하나를 지키는 시민의 손과 손을 통해 다시 실현되고 있다.

 

철거 예정 건물의 가벽 뒤에서 반세기를 침묵하던 얼굴들이, 이제 다시 세상 앞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펀딩: https://www.saf2026.com/funding/oh-yoon-terracot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