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못다 부른 이름들을, 다시 부른다

URL복사

문진오·신채원 광복절 서사음악회 '다시 찾은 빛' 8월 14일 노무현시민센터

 

서울의 낮 기온이 37도를 찍었다. 이런 날 극장에 오시라는 말은 아무래도 염치가 없다. 공연을 알리는 안내문도 그렇게 시작한다. "무더위에 극장에 오시라는 말을 하기에도 머뭇거려지는 날씨입니다만…." 머뭇거리면서도 끝내 말을 꺼낸 그 문장이, 이 공연의 성격을 어쩌면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오는 8월 14일 금요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광복 81주년·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 문진오·신채원 2026 광복절 서사음악회 '다시 찾은 빛'>이 열린다.

 

이야기가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이야기를 잇는다

 

'서사음악회'.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노래만 늘어놓는 무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야기를 짓고 들려주는 사람이 있고, 그 이야기가 더는 말로 갈 수 없는 지점에서 노래가 이어받는다. 관객은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 걷다가, 그 생애의 가장 아픈 자리, 가장 뜨거운 자리에서 노래를 만난다. 설명이 멈추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되는 형식이다.

 

문진오와 신채원은 이 형식을 여러 해에 걸쳐 함께 벼려왔다.

 

2024년 11월, 경남 남해에서 열린 제3회 남해동학문화제가 그런 자리였다. 신채원이 시나리오를 쓰고 사회를 맡았다. 학자가 남해와 동학혁명을 이야기하고, 소설을 쓴 작가가 동학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화가가 자신이 그린 동학 그림을 이야기했다. 그 사이사이를 문진오의 노래가 채웠다. 「천명 – 수운 최제우」, 「빛이 된 사람 해월 최시형」, 「이 산하에」, 그리고 「남해바다 시천주」. 마지막 곡은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 노래였다. 백오십 년 전 이 땅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외쳤던 이들의 이야기가, 남해 바다를 앞에 둔 홀에서 노래가 되어 흘렀다.

 

두 사람의 인연은 무대 위에만 있지 않다. 문진오의 2집 『결』에 실린 「천명, 수운 최제우」는 신채원이 노랫말을 쓰고 문진오가 곡을 붙인 노래다. 편곡은 권오준이 맡았다. 기록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이 한 곡 안에서 이미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서른 해를 지나 도착한 자리

 

문진오는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광장의 노래가 곧 시대의 언어이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19년, 그는 데뷔 30년을 맞았고 그해 11월 8일 구로아트밸리에서 30주년 무대를 열었다.

 

서른 해의 매듭으로 그가 내놓은 것은 자축의 베스트 음반이 아니었다. 『독립 운동가의 노래』였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일제 치하에서 싸운 이들이 남긴 어록과 그들을 기린 추모시에 곡을 붙인 여덟 곡. 2019년 11월 12일에 세상에 나왔다.

 

수록곡의 이름들을 가만히 읽어보면 이 음반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가 보인다.

 

여운형의 연설문에서 온 「우리가 건설할 국가는」. 장준하의 어록을 옮긴 「민족주의자의 길」. 「혁명의 강물에 뛰어든 김 알렉산드라」. 권오설을 기린 「가곡지 회화나무」. 「의병장 황병학의 노래」. 통일시인 이기형의 「분단 아리랑」.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을 위한 「독립군 추도가」.

 

그리고 「목숨이 경각인 아들에게」.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어머니가 건넨 말,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심정을 이윤옥 시인이 시로 옮긴 것에 문진오가 곡을 붙였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빌지 않은 어머니의 그 마음이, 노래가 되어 다시 흐른다.

 

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와 국악기로만 편곡됐다. 밴드도 스트링도 없다. 프로듀서 권오준의 선택이었다. 화려한 편성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목소리와 말이다. 그 비어 있음이 오히려 이름들을 또렷하게 만든다.

 

교과서에 이름이 굵게 박힌 이들만 고른 목록이 아니다. 김 알렉산드라를, 권오설을, 의병장 황병학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문진오가 30년 끝에 도착한 자리는 결국 거기였다. 잊힌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 부르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이름을 굳이 입에 올리는 일.

 

아무도 취재하지 않는 자리에 서 있던 사람

 

신채원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1인 미디어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며,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담담한 한 문장이지만, 그가 써온 기사 목록을 보면 그 문장의 무게가 달라진다.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어달라는 국회 청원운동. 백 년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학살을 기억하는 추모문화제. 봉오동에서 독립군을 먹이고 입혔던 최운산 장군의 순국 76주기 추도식. 제95주년 6·10독립만세운동 기념식. 쿠바 땅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간 임천택 선생의 후손, 세르히오 림 알롱소 씨가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온 날.

 

큰 언론의 카메라가 오지 않는 자리들이다. 유족과 몇몇 시민이 모여 조용히 치르고 흩어지는 행사들. 신채원은 그런 자리에 혼자 찾아가 사람을 만나고 기록을 남겼다. 아무도 쓰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는 일들을, 그는 계속 있었던 일로 만들어왔다.

 

그러니 이번 무대는 우연히 성사된 만남이 아니다. 잊힌 이름을 노래로 불러온 사람과, 잊힌 자리를 기록으로 남겨온 사람이 각자 오래 해오던 일을 들고 한 무대에서 만나는 것이다.

 

150년, 그리고 81년

 

2026년은 백범 김구가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유네스코는 올해를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로 지정했다. 정부는 '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를 슬로건으로 걸고 스무 개의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학술회의, 8월 광화문 문화주간, 김구상 시상식이 줄지어 예정돼 있다. 지난 6월에는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일지』 친필 원본이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서 두 아들에게 남기려 쓴 유서가, 백 년을 건너 우리 앞에 놓였다.

 

큰 기념의 해다. 그 옆에서, 두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대 하나를 올린다.

 

예매는 티켓 사이트를 거치지 않는다. 계좌로 입금하고 전화로 예약한다. 안내문에 적힌 번호는 휴대전화 번호 하나뿐이다. 규모로 따지면 작은 공연이다. 그러나 광복절을 하루 앞둔 저녁, 국가의 기념식이 아니라 시민의 홀에서 누군가 조용히 이름들을 부르기 시작한다는 것. 그 장면 자체가 이 공연이 하려는 말인지도 모른다.

 

공연장이 노무현시민센터라는 사실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창덕궁 담장을 따라 걷다 만나는 원서동, 그 건물 지하 2층의 다목적홀 이름은 '가치하다'이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세운 공간에서 광복절 전야를 맞는다. 되찾은 빛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생각하기에 나쁘지 않은 자리다.

 

무더위는 다음 주에도 꺾이지 않을 모양이다. 그럼에도 저녁 일곱 시, 지하 홀의 불이 꺼지고 첫 이야기가 시작될 때, 그 안은 아마 조금 서늘할 것이다. 오래 부르지 못한 이름을 부르는 자리는 대체로 그렇다.

 

공연 정보

 

공연명 광복 81주년·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 문진오·신채원 2026 광복절 서사음악회 '다시 찾은 빛'

일시 2026년 8월 14일(금) 저녁 7시

장소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73)

관람료 일반석 5만 원 / VIP석 10만 원

예매·후원 계좌 하나은행 376-910258-59907 (예금주 문진오)

예약·문의 010-3312-1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