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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그리는 시대에 손으로 그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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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회화가 돌아왔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것을 확인할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새벽 다섯 시

 

2026년 2월 27일 새벽 다섯 시에 화가 황재형이 죽었다. 향년 74세. 유족과 가나아트센터에 따르면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최근 병원에 입원했고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부고를 실은 신문들이 그를 부른 이름은 거의 같았다. 광부 화가, 그리고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82년 중앙대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고, 재학 중에 같은 대학의 박흥순·전준엽 등과 미술 그룹 '임술년'을 만들었다. 주목을 받은 것은 1981년의 「황지330」인데, 황지 탄광 매몰 사고로 죽은 광부의 작업복 한 벌을 그린 높이 2미터가 넘는 그림으로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태백으로 갔다. 그림을 그리러 간 것이 아니라 살러 간 것이었고,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서 일용 노동자로 일하며 사십 년을 그렸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4월 30일부터 8월 22일까지 개인전 「회천(回天)」이 열렸다. 작품 65점으로 첫 개인전 이후 사십 년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였다.

 

전시장에는 초기의 탄광촌 작업복 연작부터 후기의 머리카락 초상까지 걸렸다. 나라와 자식에게 자신을 내준 은퇴한 광부를 그린 「아버지의 자리」(2011~2013), 안쪽으로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탄광촌을 그린 「고한」(2011), 그 틈에 끼어든 환락을 그린 「욕망」(2008)이 나란히 놓였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이랬다. "저들 중 내가 있다." 막장에서 식사하는 광부들을 그린 그림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칸칸한 어둠 속에선 서로의 랜턴 빛에 의지해야 그나마 내 밥이 보인다. 막장에 갇힌 시간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때, 식사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는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이기도 했다. 유족이 부고에 붙인 문장은 이랬다. "황재형 화백은 1984년 첫 개인전 이후 40여 년간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던 사람들, 노동하는 인간의 실존을 화폭에 담았다." 한 통신사가 뽑은 부고 제목은 그 자신의 말이었다. 그저 그들과 막장에 머물렀을 뿐.

 

AI 시대의 회화라는 간판

 

그가 죽은 뒤 몇 달 사이에 국내 화랑들이 손으로 그리는 일을 명시적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선화랑의 6인전 「예감」은 기획 의도부터 그것을 적었는데,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인간의 직접적인 손길이 닿은 회화를 보이겠다는 것이다. 원혜경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직접 신체의 여러 감각을 거쳐 이를 느끼기보다는 디지털 스크린 속 이미지를 빠르게 소비하고 잊기를 반복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7월에 시작한 박성민의 개인전을 다룬 기사는 제목이 아예 「AI 시대, 극사실회화의 힘」이었고, 본문에는 극사실이 "더 닮게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쉽게 안다고 믿는 시선을 잠시 멈춰 세우는 장치가 된다"는 문장이 들어 있다. 4월에는 패션지 하퍼스 바자 코리아가 손으로 그리는 작가 일곱 명을 한꺼번에 인터뷰했는데, 그 서론이 이 흐름의 주장을 대신 써준다.

 

"회화를 그린다는 것은 … 몸이 흔적 없이 소비되고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태도이자, 손을 움직여 대상을 감각하는 흔적을 남기겠다는 선언이다."

 

기계가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에 사람의 손이 돌아왔다는 이야기인데, 여기까지는 여러 지면이 같은 말을 한다.

 

다만 이 답은 손에 걸려 있다. 직접 닿은 손길과 몸을 거친 감각, 남겨진 흔적이 그 근거인데, 황재형이 남긴 답은 그쪽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러 태백에 간 것이 아니라 살러 갔고, 사십 년을 그곳에서 일용 노동자로 지내며 그렸다. 「회천」전에서 그가 한 말은 내 손이 여기 있다가 아니라 "저들 중 내가 있다"였고, 부고 제목이 된 문장도 그저 그들과 막장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두 답의 간격은 기계 앞에서 실질적이다. 이미지 생성 모델은 탄광촌을 즉시 만들어내고 붓자국의 질감까지 흉내내므로, 손의 흔적 쪽은 재현할 수 있는 대상이다. 재현되지 않는 것은 사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손으로 그리는 일의 값어치를 손에서 찾는 것이 맞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서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비평이 지난해 나왔다. 배리 슈왑스키가 2025년 7월 22일 『아트뉴스』와 『아트 인 아메리카』에 실은 「구상회화의 붐과 파산」이다.

 

"구상회화는 물론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어떤 때는 더 큰 소리를 내고 더 많은 주목을 끌어모은다. … 구상회화가 죽었다가 컴백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 오래된 명곡을 기억해야 한다. '떠나지도 않은 당신을 내가 어떻게 그리워하겠어?'"

 

그가 겨눈 것은 구상회화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서사다. 헤드라인들이 도판이 명백히 보여주는 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서, 그는 그 이름을 대신 붙인다.

 

"경매가가 치솟은 뒤 그만큼 빠르게 폭락한 이들은 전부 구상화가였다. … 그들의 작업은 어떤 논의도 촉발하지 않았고, 오직 투기만을 촉발했다."

 

공백을 메울 사람들이 필요했다

 

슈왑스키는 그 붐의 출발점을 2014년으로 잡는다.

 

"2014년 좀비 포멀리즘이 창밖으로 내던져지면서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값싸게 사서 프리미엄을 붙여 빠르게 되팔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뜨거운 젊은 작가 집단이었다."

 

시장이 먼저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에 맞는 상품이 필요했으며 구상회화가 그 자리에 들어갔다는 것인데, 미술의 내적 필연이 아니라 재고 회전의 문제였다는 진단이다.

 

그는 이 붐의 시기가 다른 흐름과 겹친다는 점도 짚는데, 구상회화의 붐이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과 나란히 시작된 흑인 작가 작업에 대한 관심의 급증과 시기가 겹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차이를 덧붙인다.

 

"흑인 개념미술가와 추상화가들도 갑자기 더 가시화되었지만 그 분야에서는 유사한 투기 시장이 결코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주목받은 작가들 가운데 사고팔기 좋은 쪽에만 시장이 붙었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다. 『아트리뷰』의 마틴 허버트도 2025년 4월에 방향을 반대로 읽어서, "구상이 부활했던 여러 해가 지나고 최근 양식의 진자가 추상 쪽으로 결정적으로 넘어간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썼다.

 

구상으로의 전환이 미술관에서 선언됐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리는데, 근거로 흔히 휘트니 비엔날레가 지목된다.

 

찾아보면 없다. 2019년과 2022년과 2024년 휘트니 비엔날레의 공식 큐레이토리얼 성명 어디에도 구상으로의 전환이라는 프레이밍이 없고, 2022년 성명은 오히려 추상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가설로 내걸었다. 각 회차의 구상 작품 수를 집계한 문서도 없다.

 

구상회화를 표방하는 단체의 숫자도 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사실주의 회화를 표방하는 국제 공모전인 아트 리뉴얼 센터 살롱의 응모작은 2004년 1,100점에서 2022년 5,400점까지 늘었다가 2025년에는 3,500점으로 줄었다.

 

 

미국 국립초상화갤러리는 오바마 부부의 초상이 공개된 회계연도에 관람객 200만 명을 넘겨 연평균 110만 명의 약 두 배를 기록했다. 다만 그 뒤 연도별 관람객 수치나 순회 전시 기관별 집계는 공개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한 해의 급증을 흐름이라고 부르려면 그 뒤가 필요한데, 그 뒤가 없다.

 

그렇다면 구상회화가 정말 시장에서 돌아왔는지를 숫자로 확인하면 될 일인데, 확인할 수 없다.

 

아트바젤과 UBS의 연례 리포트, 아트프라이스, 아트넷,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내 실태조사를 모두 뒤져도 구상과 추상을 나눈 데이터가 없다. 네 곳 모두 시장을 작가 출생연도와 매체와 지역과 가격대로만 쪼개고 구상성은 변수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즉 구상회화가 시장에서 돌아왔다는 주장은 개별 작가의 낙찰가로만 뒷받침되고 집계 통계로는 뒷받침되지 않으며, 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주장도 같은 이유로 집계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이 공백 자체가 사실이다. 미술시장을 설명하는 공식 지표들은 그림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를 세지 않는다.

 

대신 있는 숫자들

 

집계된 것들을 보면 그림의 내용과 무관한 층위에서 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드러난다. 2025년 글로벌 미술시장 규모는 596억 달러로 4퍼센트 반등했고, 인상주의·근대 부문이 47억 달러로 29.5퍼센트, 올드마스터가 7억 860만 달러로 41.2퍼센트 늘었다.

 

 

젊은 쪽은 반대다. 1974년 이후 출생 작가를 묶은 울트라컨템포러리 부문은 2억 2,990만 달러로 26.5퍼센트 줄었는데 이것이 4년 연속 하락이다. 로트당 평균가는 1만 5,629달러로 10년 최저이며 2021년 정점 대비 72.4퍼센트 떨어졌고, 전후·동시대 부문의 로트당 평균가도 2만 3,027달러로 10년 최저인데 정작 낙찰된 로트 수는 10년 최다다. 싸게, 많이 팔린 것이다.

 

작품 단위로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제니 새빌의 「받쳐진」(1992)이 2018년 10월 5일 953만 7,250파운드에 팔려 생존 여성 작가 기록을 세웠다. 리사 브라이스의 「엠바 이후」(2018)는 2025년 3월 4일 추정가의 다섯 배인 541만 파운드에 팔렸고, 에이미 셰럴드의 「목욕하는 사람들」(2015)은 2020년 12월 7일 저가 추정치의 약 스물여덟 배인 426만 5천 달러에 낙찰됐다.

 

반면 케힌데 와일리의 최고가는 2024년 3월 7일의 66만 400파운드로 100만 달러에 못 미친다. 오바마 초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의 시장이 기관 수요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같은 흐름에 속한다고 묶이는 작가들 사이에도 이만큼 편차가 있다. 이 서사를 지지하는 쪽에서 가장 강한 증거는 아트넷의 2025년 상반기 인텔리전스 리포트에 실린 아트 어드바이저 리즈 파크스의 관찰이다.

 

 

"주제 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열 점 모두가 초상이거나 최소한 초상에 인접한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작품을 제외하면, 특히 여성을 그린 초상은 모두 여성이 그린 것입니다. 남성적 시선이라는 서사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죠."

 

실제로 2025년 상반기 컨템포러리 낙찰가 상위 열 점에 마를레너 뒤마(1,360만 달러)와 새빌(735만 달러), 브라이스(688만 달러)가 세 자리를 차지했다. 다만 같은 목록의 나머지 일곱 점 가운데 여섯 점이 장미셸 바스키아다. 상위 열 점이 전부 초상이라는 관찰은 사실이지만, 그 열 점의 대부분은 1988년에 죽은 한 화가의 작품인 것이다.

 

기계가 이미지를 만드는 쪽에서도 같은 종류의 물음이 나와 있다. 트레버 파글렌과 케이트 크로퍼드가 2019년에 쓴 「AI를 발굴하다」에 이런 대목이 있다.

 

"관상학자들에게는 어떤 사람의 이미지와 그 사람의 성격 사이의 관계가 이미지 자체에 새겨져 있다는 근본적 믿음이 있었다. 마그리트의 전제는 거의 정반대였다. 이미지는 재현하는 듯 보이는 대상과 기껏해야 매우 불안정한 관계만을 가지며, 그 관계는 특정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할 권력을 가진 자가 조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이 나온다. "데이터셋은 원재료가 아니라 정치적 개입이다."

 

이미지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미지에 새겨져 있지 않고 그것을 말할 권력을 가진 쪽이 정한다는 것인데, 관상학과 마그리트의 차이가 그것이고 학습 데이터를 모으고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 중립적 수집이 아닌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위조하고 싶었습니다

 

슈왑스키가 그 비평문에서 최근 구상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사례로 든 작가가 한국계인데,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홍은남이다.

 

"저는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캐릭터를 위조하고 싶었습니다."

 

2023년 뉴욕 루보브에서 연 전시의 작품 「신화」에 대해 그가 한 말이다. 슈왑스키의 평가는 그의 작업이 정체성의 이른바 진정성이 아니라 그럴듯한 인공성을 강조한다는 것이고, 그 점에서 최근 구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하다는 것이다. 진짜 얼굴을 그려서 진짜를 증명하는 대신 만들어진 얼굴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정리하면 이렇다. 기계가 그리는 시대에 손으로 그리는 일이 다시 주목받는다는 이야기는 국내 화랑의 기획 의도와 지면 제목에서 확인되지만, 그것이 미술시장에서 구상회화의 부활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개별 낙찰가에서만 확인되고 집계 통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붐을 가까이서 본 비평가는 거기서 미술의 회귀가 아니라 재고 회전을 봤다. 값싸게 사서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 상품이 필요했던 자리에 젊은 구상화가들이 들어갔고, 오른 만큼 빠르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황재형이 한 일은 이 두 셈법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다. 시장 지표는 그림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를 세지 않고, 화랑의 기획 의도는 손이 닿았는지를 센다. 그런데 그가 남긴 것은 화면에 찍힌 손의 흔적이라기보다 태백에서 보낸 사십 년이고, 그 시간은 낙찰가에도 붓자국에도 적히지 않는다. 부고가 그를 부른 이름이 사실주의도 현실주의도 아닌 광부 화가였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세는지가 무엇이 있는지를 정한다. 미술시장의 공식 지표는 그림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를 세지 않으니, 구상이 돌아왔는지 아닌지는 지금으로서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