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오 작가 | 비행기가 뜨지 못할 정도로 눈이 온 날, 말들이 사라졌다. 몇 년을 드나든 곳인데도 찾을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눈덮인 무덤만 들판에 홀로 남았다.
김수오 작가 | 제주에는 오름이 아닌 산이 다섯 개 있다. 높이 순으로 보면 한라산, 산방산, 영주산, 청산(성산일출봉), 그리고 두럭산이다. 영주산은 오름이 몰려 있는 동쪽 제주의 관문이다. 300미터가 넘는 높이지만 부드럽고 완만하다. 오르는 길은 잔디로 덮여 있지만 소나무숲과 삼나무숲도 품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영주'라는 말은, 원래 제주를 뜻하고 한라를 뜻했다. 하지만 이제 영주산은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몸을 낮춰 동쪽을 지킨다. 노을진 오름능선에 나무 하나 홀로 밤 지새울때 바람슷긴 구름 사이로 북두칠성 반짝인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다’라고 했던 발자크는 일찍부터 인간의 표정에서 삶을 읽었나 보다. 얼굴 표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상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장터에 나와 붕어빵을 먹으며 행복하게 웃는 모녀의 모습이 한 장의 풍속화를 보는 것 같아 덩달아 행복해진다. 지치고 힘든 농촌생활 뒤에 모처럼 장나들이를 했는지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시골 장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붕어빵,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날 때면 다 익었나 열어보며 돌리는, 붕어빵장수의 바쁜 손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순간은 행복한 추억이다. 이윽고 갓구어져 나온 붕어빵을 이손저손 옮겨가며 야금야금 베어먹던 때가 34년이 지났건만 마치 어제 일 같다. 환하게 웃는 모녀의 모습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느낀다. 사진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모녀의 모습이 시간으로 건너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미소가 빈 오선지 위에 그려져 소리가 들린다. (글. 사진/장터사진가 정영신)
김수오 작가 | 웬만한 산보다 높은 해발 1700미터 윗세오름.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을 아우르는 통칭으로 '위에 있는 세 오름'이라는 뜻이다. 윗세오름 1700미터가 넘는 곳에는 '밭'이 있다. 선작지왓이라는 자갈밭이다. 제주 말로, 작지는 자갈이고 왓은 밭이다. 눈이 오면 대평원처럼 보인다. 선작지왓은 봄이면 산진달래로 장관이다. 초록의 누운향나무, 백리향, 시로미 등이 산진달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추울 수록 더욱 기대되는 봄!
곰방대하나로 장터바닥을 지휘하던 야채 파는 할매는 내 동무였다. 장(場)에 왔다는 신고를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다 마주치면 긴 곰방대가 여지없이 내 등짝을 내리쳤었다. 영동장에 가면 삼각대와 카메라 가방을 맡겨놓고, 점심도 한 숫가락씩 나눠 먹고, 막걸리 한 사발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할매와 나는 해가 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놀았었다. 허나, 지금은 사진만이 남아 곰방대할매와 나의 시간은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처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준다. 1991년 어느 장날 오후, 바람이 일어 배춧잎 하나가 팔랑거리는 풍경을 놓치지 않았던 그날 처럼, 수직으로 흘러내린 한겨울의 햇살이 내 창가에 내려와 앉는다. 오늘 할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두고 온 내 고향 언저리처럼 서럽다. (글.사진/장터사진가 정영신)
김수오 작가 | 제주 오름에서 새 해를 기다립니다. 어두운 새벽 구름 뒤로 해가 느껴집니다. 순식간에 구름빛이 변합니다. 해가 떠오르니 검은 구름도 밝게 빛납니다. 바짝 다가가서 보면, 구름은 여전히 검지요. 구름이 검을 수록 해는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납니다. 해가 더 높이 오르니 아름다운 오름 군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구름은 여전하지만, 오히려 조화를 이룹니다. 뉴스아트 독자 여러분, 먹구름보다 높이 솟아 모든 아름다운 것을 비추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푸른빛이 감도는 새벽, 긴 신작로 길을 개미행렬처럼 손수 만든 죽물(竹物)을 이고, 지고 많은 사람들이 장터로 몰려오던 때가 있었다. 마을이 있으면 대나무가 있고, 대나무가 있는 곳엔 마을이 있다는 담양의 죽제품은 조선시대부터 시작하여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담양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짬짬이 만들어낸 죽물은 담양전체 생산액의 절반쯤을 차지하고도 남았었다. 이른 새벽에 죽제품을 이고지고 나오면 호랑이도 도망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담양의 죽물시장은 컸다. 심지어 다른 지방에서 죽제품을 갖고 담양장에 모여들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죽제품은 우리나라 곳곳에 팔려 나갔다. 우리선조들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응축되어 대나무를 자연의 벗으로 찬양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온갖 종류의 죽제품을 만들어 장날이면 새벽부터 나와 죽제품을 팔았다. (글.사진/장터사진가 정영신)
김수오 작가 | 동쪽에 있는 신의 땅, 동검은이오름. 원형분화구와 말굽형분화구가 모두 있는 특이한 오름으로, 정상에서 보이는 4개의 봉우리 외에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는 귀여운 알오름이 여러 개. 너른 들판엔 황소울음이 들리고 저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 섭지코지도 보인다. 함부로 오솔길로 들어서지 마라 길 잃는다.
김수오 작가 | 빛알갱이들이 운무를 뚫고 백약이 오름에 오른다. 백약이 오름은 온갖 약초가 피어나는 곳. 찔레나무 이뇨제, 오이풀 지혈제, 층층이꽃 감기약 복통에는 방아풀, 무릎 아프면 쇠무릎, 열 내릴 때 하눌타리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약은, 백약이 오름의 아름다움. 길 끝에 탁 트인 전경과 멀리 보이는 어머니산 한라산.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음식의 간이 맞지 않아 매우 짜거나 쓴맛이 나면 흔히 ‘소태맛’이라고 한다. 쓴맛은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맛이라 안전을 위해서도 사용한다. 유아들이 삼키기 쉬운 크기가 작은 장난감이나 마시면 위험한 부동액이나 농약 등에는 강한 쓴맛을 느끼게 하는 비트렉스(Bitrex)라는 물질이 첨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이 쓴맛에 대해 거부반응이 커서 어른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아이들이 알칼로이드를 함유한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가 다 있다. 쓴맛 수용체가 어른보다 7배 정도 더 많아 알칼로이드 쓴맛이 약해도 아이들에게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쓴 약을 먹일 때는 한판 전쟁을 치르고, 사탕은 보상이다. 소태나무 껍질은 아주 쓴맛이 강하다. 소태나무는 한자로 고수(苦樹), 고목(苦木) 등이다. 그 맛을 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소의 태(胎)가 쓴맛이 강하다는 데에서 소태나무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소의 태반이나 탯줄은 그저 물컹하고 질기기만 할 뿐 별다른 맛이 나지 않는다. 혹 쓸개라면 모를까. 실제로 중국의 소태나무 별칭 가운데 하나가 웅담수(熊膽樹)다. 예전에는 따로 간식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