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봄이 아니래도 장터에 가면 씨앗 봉지를 펼쳐놓고 열심히 설명하는 씨앗 장수를 만난다. 1990년에 전북순창장에서 만난 씨앗 장수 할매는 하얀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씨앗을 담아 팔면서 어떤 씨가 어느 봉지에 담겨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할머니 머리가 좋으시네요” 인사를 하면 장사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며, 씨앗 봉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금매 아욱씨 100원어치만 주랑께 왜 안판다고 그러요. 100원은 돈이 아닌감네이!” 백원어치는 안판다는 할매와 백원어치만 팔라는 할매가 한참을 실갱이 하면서 찾아낸 합의점이 500원어치다. 신문지에 500원어치 아욱씨앗을 싸주자 씨앗을 받아든 안씨할매가 구시렁구시렁 볼멘소리를 하지만 못들은 척 고개를 돌려 돈을 셈하고 있다. 이들을 한참 지켜보면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인생을 순하게 살아내는 모습이 참으로 숭고해 보인다. 한치 양보도 없을만큼 팽팽하더니 500원치 아욱씨를 통크게 산 할매가 보자기 속에 씨앗을 넣더니 머리에 이고 총총히 사라진다. 이렇듯 장터에 가면 살아있는 날것 그대로의 삶을 만난다.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 전에 정(情)을 나누는 고향이 아닐까 싶다.
김수오 작가 | 여러 개의 분화구로 이루어진 용눈이 오름, 제주 동쪽에서 가장높은 오름이다. 사진가 김영갑을 사로잡은 흘러내리는 곡선미. 그는 여기서 평화로움과 이상세계를 봤다고 한다.
김수오 작가 | 제주 동쪽 바다를 품고 봄에는 철쭉, 가을엔 억새로 꾸며져... 아름답기로도, 높이로도 손꼽히는 다랑쉬 오름. 그 옆에 사이좋게 붙어 있는 자그마한 오름, 아끈다랑쉬. 석양에 4·3의 원혼들을 부르는 듯, 다랑쉬굴 가는 길가 붉은 만장만 깃발처럼 휘날린다. 작가의 말 : 4·3때 해안마을 사람들이 다랑쉬굴 속에 피신해 있다가 토벌대에게 발각되어 굴속에서 모두 질식사하였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1992년, 당시 같이 피신했다 살아난 마을분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국은 이 때 발견된 유골을 모두 화장해 유족들이 배를 타고 나가 직접 바다에 뿌리도록 압박했다. 제주 4·3평화공원에는 당시 굴속에서 발견된 엄마와 아이들 등 십여구의 백골이 '재현'되어 있다. 나중에 유족들은, 뼈조각 하나라도 남겨두었으면 무덤이라도 만들어주었을텐데 수십 년 굴속에 갇혀있다가 햇볕을 보자마자 다시 수장되었다고 안타까와했다. 마지막 사진은, 올해 4월 다랑쉬굴 30주기를 맞아 원혼을 위무하기 위해 위령제와 위령돌탑을 쌓는 행사를 했고 이를 위해 다랑쉬굴 가는길에 걸린 만장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소프라노 이윤순 기고 | [편집자주] 이 글은 이탈리아 베르가모 국립음대 외래교수로 재직 중인 소프라노 이윤순씨가 현지에서 보내온 소식이다. 16년 전 공연 도중 뛰쳐나갔던 최고의 테너 알라냐가 돌아와 오른 첫 무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2022년 10월15일 토요일,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극장은 2021/2022년 시즌 후반기 프로그램 움베르토 죠르다노의 오페라 <페도라> 첫 공연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16년 만에 스칼라 무대로 돌아온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알라냐가 출연하는 페도라 개막일 표는 일찌감치 매진되었고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낮 1시부터 줄을 서서 현장 판매 예약을 기다렸다. 코로나 이후 스칼라 극장은 매진된 공연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당일 오후 1시부터 선착순 50명에게만 이름을 적고 번호를 매겨 갈레리아라고 불리는 극장 맨 위층 관람석 표를 구입할 기회를 주고 5시 반에 다시 모이게 한 후 번호순으로 10명씩 끊어 매표소로 들여보내 현장 판매한다. 줄서기부터 시작해서 저녁 8시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며 왔다 갔다 해야 하지만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오페라 애
김수오 작가 | 예상치 못한 비극에 힘든 주말이었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피우지도 못하고 져버린 젊음을 또 이렇게나 많이 보태고 말았습니다. 제주 일만 팔천여 신 가운데 동쪽 신들의 본향인 송당 당오름에서,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수오 작가 |
김수오 작가 | 굼부리 안 삼나무숲 품은 아부오름 (편집자주) 굼부리는 구멍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분화구를 말한다.
김수오 사진 | 별이 빛나는 밤, 아부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과 오름.
논산 개태사에 가면 고려의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개국 사찰로 창건한 개태사 주방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철확이 있다.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로 등록되어있는 철제가마솥이다. 장터에서 엿듣는 지역문화는 덤이다. 장터에서 사진 찍는게 안쓰러운지 어르신들의 주문은 날로 늘어만 간다. 연산임리에 산다는 주영길씨는 개태사에 있는 철확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본놈들이 지그 나라로 가져가려고 그 큰 가마솥을 부산까지 가지고 내려갔데유. 그란디 가마솥을 배에 실으려고 허니께 솥에서 큰소리가 나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 났대유, 그란께 선적이 보류되었지유. 여그 지역사람들이 이 가마솥을 찾을라고 진정서도 내고 난리굿을 다 했시유” 일본으로 실려 가지 못한 철확은 경성박람회에 출품됐다가 한동안 논산연산공원에 전시되었으며, 1981년 개태사로 옮겨왔다. 큰 가뭄이 들때마다 이 솥을 다른 곳에 옮기면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어 연산부근으로 옮겨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태조 왕건이 5백명의 중에게 국을 지어먹을 솥으로 내려준 것으로 알려진 개태사 철제가마솥은 개태사가 폐허가 된 후 벌판에 방치되다가 다시 개태사로 옮겨졌다. 일본태평양전쟁이 일어나던 해 철확을 녹여서 무기를 만들려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오리나무와 굴피나무가 살아가는 조건은 비슷하다. 물이 가까운 개울가에 습한 곳에 살아간다. 흔히 콩과식물만 질소고정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식물이 근균을 이용해 공중질소를 직접 이용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아까시나무, 자귀나무, 싸리나무, 붉나무, 등나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자작나무과 식물인 사방오리, 산오리, 오리나무 등도, 또 보리수나무, 보리장나무도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이런 식물을 비료목이라 부른다. 이러한 식물들은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흙을 거름지게 하고 미생물을 풍부하게 만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도로공사를 끝낸 마감처리용으로 는 단풍이 좋은 붉나무는 단연 인기인지라 어디든지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양지마을 어른의 말에 의하면 봄철 논에 넣는 생거름으로는 굴피나무 잎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오리나무 종류보다 더 좋은 거름이라고. 굴피나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료목이 아닐까. 굴피나무는 가래나무과 흔히 자라는 나무이다. 일반 농가는 지붕을 잇는 재료로 볏짚이 가장 흔하지만 산간지방에는 귀한 재료라 굴피나무나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굴피집’이라고 부른다. 흔히 굴피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