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감정한 사람 1998년 3월 13일, 대법원 제3부는 유화 한 점을 이렇게 읽었다. 그림 상반부는 북한이며, 나무숲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산은 북한에서 '혁명의 성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이고, 꽃이 만발한 곳의 초가집은 김일성 생가를 암시한다. 그 아래에서 농민들이 오곡과 풍년을 경축하며 춤을 추는 장면은 결과적으로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림 하반부는 남한이고, 농부가 황소로 써래질을 하며 이티(E.T)와 람보와 양담배와 코카콜라와 레이건과 나카소네와 전두환을 남해 바다로 쓸어버린다. 이 장면은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일으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한다는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결론은 한 문장이었다. 이 그림은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의 활동에 동조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물"이다. 이 판독이 어디서 왔는지, 지금은 알 수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2004년에 채택한 결정문에 반대신문 결과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대신문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그 감정인은 전직 북한 공작원이자 전직 그림 교사였으며 미술에 관한 그 이상의 전문적 식견은 없었다. 그는 경찰청 대공전술연구소에 고용되어 있었고,
1934년 2월 10일 토요일, 밤이 깊은 뒤에 뉴욕 록펠러센터로 트럭 한 대가 들어왔고, 인부들이 비계를 세우고 RCA 빌딩 로비의 벽을 올랐다. 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벽에는 가로 11미터 45센티미터, 세로 4미터 85센티미터짜리 벽화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부수어 벽에서 떼어냈다. 그 벽화는 이미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아홉 달 전에 천으로 덮여 가려진 상태였다. 계약금 2만 1천 달러는 전액 지급된 뒤였고, 화가는 진작 해고됐으며, 작업은 미완성으로 멈춰 있었다. 돈은 돌려받지 못했고,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부수었다. 왜 그랬을까. 예술이 정책을 바꾼 가장 극적인 사례, 더스트볼을 아시나요 지난 글에서 나는 1930년대 미국의 더스트볼을 다루면서 도로시아 랭의 사진과 존 스타인벡의 소설과 우디 거스리의 노래가 정치의 비용 계산을 바꾸어 놓았다고 썼다. 그 뒤로 비슷한 사례를 더 찾아보았는데, 자료를 파고들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달랐다. 예술이 법을 바꾸었다는 인과를 문서로 증명할 수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었지만, 권력이 예술에 되받아친 기록은 지나칠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형량이 있고, 압수 목록이 있고, 서한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