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에 「재사」라고 새겨 넣는 자 1857년 파리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저자는 쿠르베의 친구이자 그 무리의 대변인 노릇을 하던 비평가 샹플뢰리인데, 정작 그 책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 부르는 자는 누구든, 명함에 이름 다음에 「재사(才士)」라고 새겨 넣는 자만큼이나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책 제목으로 그 말을 쓴 사람이 서문에서 그 말을 쓰는 사람을 조롱한 것이다. 같은 서문에서 그는 -이즘으로 끝나는 말들을 "과도기의 말로서 딱하게" 여긴다면서,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인기를 얻을수록 그것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라고 썼다. 자기가 제목으로 삼은 말의 수명을 스스로 깎아내린 셈이다. 이유도 밝혀두었다. "나는 유파를 좋아하지 않고, 깃발을 좋아하지 않고, 체계를 좋아하지 않고, 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이라는 작은 교회 안에 나를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설령 내가 그 교회의 신이 된다 해도." 그는 그 말의 수명을 삼십 년으로 봤다. 비평가들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려고 발명한 무기이지만 "그것을 쓰는 자를 상처 입히는 종류의 무기"이며, 삼십 년을 넘기지 못할 과도
1934년 2월 10일 토요일, 밤이 깊은 뒤에 뉴욕 록펠러센터로 트럭 한 대가 들어왔고, 인부들이 비계를 세우고 RCA 빌딩 로비의 벽을 올랐다. 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벽에는 가로 11미터 45센티미터, 세로 4미터 85센티미터짜리 벽화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부수어 벽에서 떼어냈다. 그 벽화는 이미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아홉 달 전에 천으로 덮여 가려진 상태였다. 계약금 2만 1천 달러는 전액 지급된 뒤였고, 화가는 진작 해고됐으며, 작업은 미완성으로 멈춰 있었다. 돈은 돌려받지 못했고,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부수었다. 왜 그랬을까. 예술이 정책을 바꾼 가장 극적인 사례, 더스트볼을 아시나요 지난 글에서 나는 1930년대 미국의 더스트볼을 다루면서 도로시아 랭의 사진과 존 스타인벡의 소설과 우디 거스리의 노래가 정치의 비용 계산을 바꾸어 놓았다고 썼다. 그 뒤로 비슷한 사례를 더 찾아보았는데, 자료를 파고들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달랐다. 예술이 법을 바꾸었다는 인과를 문서로 증명할 수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었지만, 권력이 예술에 되받아친 기록은 지나칠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형량이 있고, 압수 목록이 있고, 서한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