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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때문에? 영진위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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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4월 30일 국가인원위원회 앞에서 <사전검열을 제도화 한 윤석열정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국가인권위에 고발한다>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영진위에서 또 다시 블랙리스트 문구를?

 

영진위에서 미래관객 육성 차원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지난 3월 27일 조달청에 입찰공고하면서 제안요청서에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 사상을 배제한 영화 및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은 조촐하게 진행됐다. 

 

영화계에서 이 문구를 두고 논란이 되자 조국혁신당 소속 김재원 국회의원 당선인과 정상진 문화예술특별위원장이 4월 25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술계마저 군사정권 때로 돌아가는 현 상황",  “1980년대 군부독재 때나 있던 영화 검열 사태”라고 강도높게 비난하면서 정치투쟁화 했기 때문이다.

 

<건국전쟁> 때문에 추가한 문장, 삭제할 것을 고려

 

영진위 영화문화저변화지원팀에서는, 공모사업이 아닌 용역사업이라 제안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제안서 작성과정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있어서 추가한 문장일 뿐이라면서 실제 사업집행시에는 해당 문장을 삭제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하였다. 

 

작년에 서울의 봄 상영 문제로 시끄러웠다. 학교에서는 이런 문제에 예민하고 곤란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를 선생님들이 직접 골라야 하는데) 최근 건국전쟁같이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와서 시끄러우니 선생님들이 곤란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고자 실무 차원에서 용역사업제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추가한 문장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자는 건 아니었고... - 영진위 영화문화저변화지원팀

 

하지만 블랙리스트 사건에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는 예술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 주범들이 제대로 처벌되지도 않았고, 이명박 시절 문화권력균형화전략에 동조한 유인촌 장관이 돌아왔으며, 블랙리스트 재발방지책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대응에 소극적인 영진위에 대한 불신

 

게다가 영진위는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요 실행기관 중 하나로, 위원장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기자회견 및 대국민사과를 하고,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조사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시행하기는 커녕 진상규명에 애쓰는 민간위원들을 해산시키려 하면서 상부기관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여 영화인들의 신뢰를 잃었다. 

 

영진위는 또한 블랙리스트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편성된 예산의 70%를 불용처리할 정도로 이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지난 해 말 영진위가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및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사업 예산 집행 내역’에 의하면, 예산 1억원 가운데 2955만원만 집행했다. 피해자 구술 채록 연구, 공청회, 블랙리스트 관련 책자백서 발간 등 기록사업에 써야 하는 예산을 거의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블랙리스트이후 등 6개 시민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진위의 이번 조치는 “2022년 ‘윤석열차 논란’과 판박이 사건”이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영진위가 사전 검열을 제도화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인권위에 이 문구가 삭제되게 해 달라고 진정했다. 

 

특정 이념이나 사상이 포함되지 않은 영화나 작품은 있을 수 없다... 정치적 중립성 소재,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하라는 것은 영화의 다양성과 예술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침해... 청소년의 양심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을 침해... 국가 구성원인 청소년들은 입시문제, 기후 등 환경문제, 교육문제 등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기본권이 있다...  - 기자회견문 중에서

 

한편 영진위에서는 올해 처음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특수학교, 지방소멸위험(인구감소) 지역학교를 대상으로 한다. 총 8억 4000만원 규모의 사업으로 1920회 운영예정인데, 멀티플렉스 3사에서 1500회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4월 18일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사)한국영상미디어협회가 용역업체로 선정되었다.

 

이하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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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영화진흥위원회의 블랙리스트 부활을 고발한다.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끊임없이 예술검열 사건이 터지고 있다. 이번에는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설치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헌법을 위반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영진위는 지난 3월 27일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이하 미래관객 사업)’ 운용 용역을 입찰 공고하면서 제안요청서에 해당 사업의 운용 용역사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도록 공지하였다.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할 공공기관이 사업을 시행하면서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겠다고 한 것은 명백한 국가검열이다. 과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아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실행했고, 기관장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까지 했던 영진위가 윤석열 정권 아래서 또다시 검열을 시도하는 것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런데 블랙리스트 정황이 의심되는 지점이 있다. 영진위가 2024년 3월 27일 미래관객 사업의 제안요청서에 교육 내용을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한 영화 및 교육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진행’하라고 공지하기 전인 1월 5일에 열린 2024년 제1차 위원회 임시회의에서 위원들이 의결한 회의자료에는 사전 검열에 해당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2024년 1월 24일 개최한 영진위 사업계획 발표회에서도 미래관객 사업의 영화 및 교육 프로그램 구성을 ‘청소년 추천영화 선정위원회 운영으로 청소년 추천영화 선정’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영진위는 언제, 어떤 이유로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 사상을 배제’하라는 불명확하게 표현된 문구를 삽입하게 되었는가?

 

영진위의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은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복권 수입금을 배분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건으로 문체부는 관리 책임이 있으며, 부처 사업 집행에 있어 ‘소관 중앙관서의 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블랙리스트 공포를 겪은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영진위의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 사전 검열에 대한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담당 직원의 사소한 변경이나 개인적인 일탈로 꼬리 자르고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예술인들은 영진위의 사전 검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한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문화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거나 특정 사상과 이념을 배제하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이미 윤석열 정부 들어서자마자 발생한 ‘윤석열차’ 검열 사건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이런 견해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영진위의 미래관객 사업은 2022년 10월 크게 문제가 되었던 ‘윤석열차’ 사건은 이 사건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당시 문체부는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하고 전시했다는 이유로 재단법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고 엄중 경고 조치하였고, 이 공모전의 선정 과정을 조사하고 후원 명칭 사용승인을 취소하였으며, 급기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한 바 있다.

 

문체부가 ‘윤석열차’를 문제 삼으며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대한 후원 명칭 승인 취소를 한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진정에 대해 인권위는 “국가기관이 공모전 공모 요강에 결격 사항으로 ‘정치적 의도’를 포함시키는 경우 기본권침해의 위험성이 있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문체부 장관에게는 향후 공공기관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기본권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다. 인권위의 견해처럼 국가 등이 문화적 지원 조치를 하면서 정치적·세계관적 중립 의무를 준수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이 사업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에게도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 등 기본권은 보장해야 한다. 해당 사업은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특정 사상과 이념을 배제’하라고 요구하면서 청소년의 정치적 판단과 토론의 기회를 봉쇄하고 있다. 청소년도 그들의 지적 성숙도에 따라 인권, 복지, 생태, 다양성, 교육, 예술 등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다. 건강한 청소년 교육을 위해서는 오히려 영화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청소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정 이념과 사상을 배제하라고 하면서 특정 이념과 사상이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배제해야 하는 이념과 사상이 무엇인지 해석하기 불가능하므로 결국 모든 이념과 사상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명확성은 ‘법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

 

이명박 정권 시절 문체부 장관을 역임하며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에 따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던 유인촌 장관이 다시 윤석열 정권에서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문화예술 정책에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래관객 사업은 윤석열 정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재발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 중 하나다.

 

정치적 중립 소재를 강요하고 특정 이념과 사상을 배제하라는 반헌법적 발상이 어떻게 영진위의 사업에 적시되었는지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 있는 자는 응당한 처분을 받아야 할 것이다.

 

현재 문화예술계는 예산의 일방적인 삭감과 장관의 지시에 따라 일방적으로 집행되고 있는 ‘책임심사제’의 도입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 현장에서 문화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검열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고, 반헌법적인 블랙리스트가 재발하지 않도록 끝까지 감시하고 싸울 것이다. 이것 또한 예술이 해야 할 역할 중 하나이고, 예술이 해야 할 정치적 사회적 역할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국가인권위는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 사전 검열을 철저히 진상조사 하라.

하나. 윤석열 정부와 유인촌 문체부는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 사전 검열 사태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

하나. 국회는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특별법을 제정하라.

 

 

2024년 4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블랙리스트 이후,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배우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