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고향은 도시인들이 잃어버린 낙원이라고 한다.
내 유년시절의 고향은 순수함의 공간 그 자체였다.
지금 내 고향은 오라는 이도, 가라는 이도, 기다려주는 이도 없지만
내 존재의 모태임을 인식하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가을걷이의 꽃은 쌀농사였다
나락을 베고 난 논에 이삭 하나라도 떨어져있는지
달이 환하게 뜨는 날, 온 식구가 논에 가서 벼이삭을 주웠다.
난 검정고무신을 신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부르며
살포시살포시 밟아가며 달빛에 비치는 논바닥을 훑으면
손안에는 제법 나락이 쥐어져 있었다.

그 당시 농촌은 쌀이 곧 삶이었던 시대였기에
논바닥에 떨어진 이삭하나도 버리지 않고 주었다.
망태기에 가득 담겨진 이삭을 보며 온 식구의 웃음소리에
놀란 달빛은 우리 동네 끝집 단골네 집을 건너
우리집 싸리문에 데려다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늦가을이면 엄마와 함께
가을걷이를 하러 고향땅에 내려갔는데
지금은 집안에 앉아 쌀을 받는 세상이다.
엄마가 저쪽 세상으로 가셨으니 논을 팔아야 하는데
올해만 올해만 하다가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사진.글/정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