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전승일 기자 |
1979년 8월 9일부터 8월 11일까지 가발 및 봉제품 수출업체인 <YH 무역>의 여성 노동자 200여 명은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조치에 항의하며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당시 야당인 신민당사(총재 김영삼) 건물 4층 강당에서 농성과 시위를 벌였다.
8월 11일 새벽, 경찰은 1200여 명의 병력을 건물에 투입하여 강제 진압과 해산 작전에 나섰다. 진압부대는 강제 해산 과정에서 심한 욕설과 폭언을 하면서 곤봉 등 진압장구 이외에 벽돌, 쇠파이프, 의자 등 불법적인 도구까지 사용하여 농성 중이던 YH 노조 여성 노동자, 신민당 의원 및 당직자, 그리고 취재기자들까지 무차별 구타했다. 이 진압 과정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사망했다. 당시 21세였던 그녀의 이름은 '김경숙'이다.
당시 경찰은 김경숙의 사망 경위를 "진압 작전 개시 30분 전에 스스로 동맥을 끊고, 건물 4층에서 주차장 쪽으로 투신자살하였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서 보도했다.
그러나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진화위'는 "김경숙이 추락 사망한 시각은 경찰의 강제 해산 작전 개시 이후였고, 사체에는 동맥을 절단한 흔적이 없으며, 오히려 손등에 쇠파이프와 같은 둥근 관에 가격당한 상처와 후두정부에 치명적인 상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추락 지점도 경찰 발표와 달랐다"고 밝혔다.
즉, "김경숙의 사망 원인은 투신자살이 아니라, 경찰의 강제적인 폭력 진압 과정에서 구타당한 후 추락사한 것"이며, "진압 작전 직전 투신자살이라고 밝힌 경찰 발표는 김경숙 사망 원인에 대한 진상은폐와 왜곡행위로서 중대한 조작이며, 또 다른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29년 만에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현재 김경숙 열사의 묘소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