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전승일 작가 |
2024년 올해는 제주 4.3 76주년이 되는 해이다. 제주 4.3 사건은 해방 직후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건국과 한국전쟁 이후에 이르기까지 무려 7년 7개월 동안 지속된,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민간인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1947년 3만여 명이 모인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6살 아이가 치여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한다. 이들 가운데는 15세 국민학생과 젖먹이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피살된 여인도 있었다. 이 ‘3.1사건’은 제주 4.3의 도화선이 되어 대대적인 민·관 합동 총파업이 일어났고, 이에 미군정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지목하고, 경찰과 극우단체의 무차별 검속과 고문치사가 잇따랐다.
제주 4.3은 이러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군경 토벌대에 의해 ‘불태워 죽이고 때려 죽이고 굶겨 죽이는’ 소위 3광 작전이 온 섬을 휩쓸며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진압 과정으로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만 5,000∼3만여 명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9년 4월 1일 미군 정보보고서에는 “1948년 한 해 동안 1만 5,0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그 중 80%가 군경 토벌대에 의해 사살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 4.3 평화공원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2000) 제정 공포 이후,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공식 진상 조사가 실시되고,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2003) 채택과 함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2003)가 이루어지면서, 2008년에 4.3 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 인권 기념공원으로 건립되었다. 그리고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4.3 희생자 추념일’이 법정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2008년 개관한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비설(飛雪)>이라는 제목의 야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군경 토벌대의 대규모 초토화 작전(Scorched-earth Strategy)이 벌어지던 1949년 1월 6일, 변병옥(변변생, 당시 25세)과 그녀의 두 살배기 젖먹이 딸이 봉개동 거친오름 북동쪽 지역에서 피신 도중 학살된 후, 후일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발견된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을 추념하는 모녀상(母女像)으로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두 생명의 넋을 기리고자 강문석, 고길천, 이원우, 정용성 작가가 참여하여 제작 설치되었다.
제주 4.3의 역사와 피해실태, 주요사건, 진상조사보고서, 4.3평화공원, 4.3평화기념관, 4.3어린이체험관, 4.3트라우마센터, 4.3홍보영상, 4.3애니메이션, 4.3평화문학상, 추모조형물 귀천(歸天), 1만 2천여 건의 4.3아카이브 등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4.3평화공원은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평화·인권의 의미와 통일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평화와 통일의 성지이자 인권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4.3 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는 14,65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행방불명자표석에는 4,030기의 시신 없는 희생자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 인권, 화해, 통일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는 제주 4.3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