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일 작가 |
편집자주 : 2023년 1월 시작하여 28점의 그림을 연재한 <전승일의 생각그림>을 <전승일의 AI 아트>로 컨셉을 바꾸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예술은 인간의 생각과 감성, 사유와 사상의 반영이다. 그런데 플랫폼 자본주의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예술과 콘텐츠의 개념, 형태, 소통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전승일의 AI 아트>는 ‘생성 AI 시대의 대안적 예술담론’을 탐구하고자 한다. |
AI를 반대하는 시각예술가들
위 사진은 미국의 경제언론 포브스(Forbes)지에 게재된 롭 살코비츠(Rob Salkowitz)의 기고문 <AI Is Coming For Commercial Art Jobs. Can It Be Stopped?(AI상업예술, 멈출 수 있을까?)>에 실려 있는 이미지이다. 롭 살코비츠는 <Comic-Con and the Business of Pop Culture>의 저자로서 만화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아이스너 상(Eisner Awards) 후보에 오른 저널리스트이자 대학 교수이다.
롭 살코비츠는 “텍스트를 이미지(Text to Image)로 생성하는 AI 기술이 인간 창의성 영역과 예술 자체의 본질을 잠식하는 문제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라고 언급하면서 게임 분야에서 독특한 화풍의 일러스트레이션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판타지 아티스트 그렉 루트코프스키(Greg Rutkowski)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렉 루트코프스키는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 던전 앤 드래곤(Dungeons & Dragons) 등과 같은 유명 게임의 컨셉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위 사진에서 상단 그림은 그렉 루트코프스키의 ‘작품’이고, 하단 그림은 생성형 AI(Generative AI)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으로 ‘생성’된 이미지이다. 롭 살코비츠의 기고문에 따르면 “루트코프스키의 이름이 이미지 프롬프트 검색에서 수십만 번 나타났다. 이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샘플링하여 수십만 개의 이미지가 생성되었음을 의미한다.(기사원문)"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디자인, 건축, 자동차, 컨셉 아트, 특수효과, 순수 미술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전 세계 시각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플랫폼이자 커뮤니티인 아트스테이션에 203점의 작품을 포트폴리오로 올려놓은 그렉 루트코프스키는 자신의 사이트 첫 번째 이미지로 “AI 생성 이미지 반대(NO TO AI GENERATED IMAGES)” 로고를 선택했다.
루트코프스키는 “우리는 윤리적으로 도둑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이유는 이미지 생성 AI를 개발한 회사가 아티스트의 허락도 동의도 없이 인터넷에서 무단으로 스크랩하여 학습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2022년 12월 불가리아 일러스트레이터 알렉산더 나니치코프(Alexander Nanitchkov)는 “AI 생성 이미지 반대”를 상징하는 로고를 만들었다. 또한 인터넷에 발표된 그의 그림들 대부분에는 “AI 생성 이미지 반대” 로고와 함께 “Create, Don’t Scrape” 로고가 포함되어 있다.
알렉산더 나니치코프의 “AI 생성 이미지 반대” 로고는 시각예술가 대형 플랫폼 아트스테이션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페이지 메인 이미지에 지금도 올려져있으며, 이는 생성 AI 플랫폼의 저작권 침해에 항의하는 작가들의 온라인 시위를 상징하고 있다.
미드저니가 학습한 아티스트 명단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ney)의 창업자 데이비드 홀츠(David Holz)는 학습 데이터 세트와 저작권 문제에 대하여 2022년 포브스, 레지스터, The Verge 등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질문: 살아있는 예술가에게 동의를 구했거나 저작권이 적용되는 작업을 했나요?
홀츠: 아니요. 수억 개의 이미지를 얻고 그 이미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실제로 없습니다. 이미지에 저작권 소유자에 대한 메타데이터가 포함되어 있으면 멋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별거 아닙니다.
질문: 아티스트가 미드저니 데이터 훈련 모델에 포함되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나요?
홀츠: 현재 검토 중입니다. 이제 문제는 규칙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실제로 특정 작품의 예술가인지, 아니면 그냥 이름을 붙인 것인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데이터 세트에 실제로 포함된 자신의 이름을 빼기를 원하는 아티스트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질문: 아티스트가 지정되는 프롬프트에 자신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홀츠: 현재는 할 수 없습니다. 검토 중입니다. 이 경우에도 거부 요청이 올바른지 확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므로 어려워집니다.
데이비드 홀츠의 답변들은 모두 진실일까? 홀츠 스스로 게시한 미드저니 디스코드 메시지에는 “이 스타일 기능에 대해 여러분 모두 놀라게 될 것”이라며, “장르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이름도 포함된다. 4000개의 아티스트 이름, 1000개의 스타일”이라고 적혀 있다.
미드저니가 학습한 아티스트 명단(Midjourney Style List)은 “Create, Don’t Scrap.(창작물이다, 스크랩하지마.)” 운동을 벌이고 있는 링크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87페이지에 달하는 PDF 파일이다. 이후 추가된 ‘Proposed Additions’은 무려 158 페이지이다. 시카고 대학교 벤 자오(Ben Zhao) 교수팀이 이끌고 있는 “Create, Don’t Scrap” 운동은 추후 연재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미드저니 스타일 리스트’에는 폴 세잔, 앤디 워홀, 쿠사마 야요이, 게르하르트 리히터, 프리다 칼로, 엘즈워스 켈리, 데미안 허스트, 모딜리아니, 파블로 피카소, 폴 시냐크, 노먼 록웰, 뱅크시, 월트 디즈니, 반 고흐 등 1만6000명이 넘는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데이비드 홀츠는 인터뷰에서 “미드저니는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데이비드 홀츠는 철저한 ‘플랫폼 자본주의 옹호론자’인 것으로 보인다.
“AI 생성 이미지 반대” 로고가 시각예술가들의 대규모 플랫폼에 공공연히 등장하게 된 이유는 바로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달리(DALL-E) 등과 같은 이미지 생성 AI 플랫폼 대부분이 인터넷 상에서 수억 개의 이미지를 학습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이미지를 생성하기 때문에 AI가 학습을 한 원본 이미지에 대한 지적재산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며,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특정 예술가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기술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으면 생성 AI 플랫폼은 작동하지 않는다.
생성형 AI 기술에 대한 예술가의 주관적 배타적 사용
나는 1992년에 미술대학 졸업 작품으로 페이퍼 연필 드로잉을 S-VHS 비디오로 촬영한 첫 번째 독립 애니메이션 <기억>을 만들었고, 1994년에 어도비 포토샵(Photoshop)과 프리미어(Premiere)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첫 번째 디지털 독립 애니메이션 <내일인간(Tomorrow Human)>을 만들었다.
<내일인간> 시놉시스 -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고 있는 무제한적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막아내지 못하면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만나서는 안될 이러한 가상공간을 살고 있는 ‘내일인간’은 멀지 않은 미래의 실제 우리 모습일 수도 있다.”
30년 전에 만든 디지털 독립 애니메이션 <내일인간>은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애니메이션 유튜브 채널에 네이버 ETECH Ai SR 기술로 고해상도로 복원되어 올려져 있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내일인간> 제작 30년 후 2024년 시작한 AI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Sensitive Generation>은 생성 AI 기술을 활용하여 환경 문제와 사회적 트라우마를 테마로 제작했던 나의 기존 드로잉과 디지털 페인팅(세월호 연작, Post-TRAUMA 연작 등), 2D 애니메이션(내일인간)을 원본으로 새롭게 재창작한 실험적인 AI 영상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대형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이나 학습 데이터 세트에 의존하지 않았다. AI 아트에서 중요한 알고리즘으로 제기된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나, 생성자(generator)와 판별자(discriminator) 데이터를 모두 AI 플랫폼에서 제공하여 만들어지는 영상물 레퍼런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직 나의 시각적 창작물을 사용하여 작품의 독창성(originality)을 '생성적으로' 강화하였다.
AI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Sensitive Generation>은 이미지와 영상 생성 AI 기술에 대한 예술가의 주관적 배타적 사용에 대한 미학적 방법적 실험이며, 이후 연작 작업을 통해 좀 더 많은 구체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안적 공론적 예술담론과 미학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미지와 영상 생성 AI 플랫폼을 직접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어 보니까 ‘AI 아트’에 대해서 진단하고 연구하고 창작할 영역이 매우 넓다는 것을 느꼈고, 이후 본 연재와 강좌 혹은 창작 워크샵을 통해 다양하고 진취적인 예술 작품이 많이 제작되어 대안적 공론적 예술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해본다.
(전승일 aniex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