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 매진된 공감각적 공연, '어둠 속에, 풍경'

2024.06.24 16:22:06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공연장에 들어서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객석은 모두 치워졌고, 중앙에는 커다란 원통형의 설치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설치물 사이 공간에 무대랄 것도 없는 공간이 있다. 그곳을 중심으로 관객이 빙 둘러 앉았다. 시각에 의존해 온 공연 관람 방식에서 탈피해 다양한 층위의 공감각으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니, 눕던 서던 보던 말던 자유롭게 하란다.

 

 

지난 6월 20일(목)~23일(일) 충정로에 위치한 모두예술극장에서 진행한 전시+퍼포먼스 ‘어둠 속에, 풍경’ 공연 모습이다. 시각장애인, 비시각장애인, 무용수, 배우, 시각예술가 등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로 소통하며 작업하는 예술가 10명과  함께 리서치, 워크숍을 통해 장애의 경계 없이 각자의 감각으로 교감한 지난 3년간의 경험들을 풀어냈다. 

 

공연의 첫 순서인 <꿈 주석>은 전시이기도 하고 행위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다같이 일어나 중앙의 원통형 설치물을 감상하는 데서 시작한다. 시각 경험이 있는 사람과 시각 경험이 없는 사람이 꾸는 꿈의 세계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감각적 이미지들이 꿈에 등장하는지를 탐구하여 묵자(비시각장애인들의 문자, 독자가 지금 보고 있는 것)와 점자로 기록한 것을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들려준다.

 

소리로 그림을 감상하는 '소리그림' 섹션은, 비시각장애인의 눈에는 희미한 그림이 그려진 하얀 화면일 뿐이다. 관객이 헤드폰을 끼고 화면을 터치하면 위치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오는데, 소리그림 앞에서 시각장애관객들은 비시각장애관객들보다 훨씬 오랫 동안 몰입했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이 함께 탐구한 다양한 언어 조각들을 석고조각과 점자, 묵자로 표현한 전시물 앞에서는 비시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다같이 한꺼번에 웅성거렸다. 비시각장애인은 점자 앞에서 본인이 "눈뜬 장님"임을 실감한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만져봐도 전혀 구분되지 않는 점자를 시각장애인들은 어찌 읽는단 말인가. 프로젝트 참여자 뿐 아니라 관객으로 온 시각장애인들도 비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를 읽어주었으니, 이거야말로 관객참여 퍼포먼스였다. 

 

 

언어 조각 전시가 갖는 더욱 특별한 의미는, 주로 시각에 의해 정의되는 시각적 단어들을 촉각과 감각적 경험을 동원하여 새롭게 정의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핑크색은 살며시 퍼져나가 목젖에 닿으면 절정에 이르는 달코옴한 맛으로,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맡은 라일락 향기로 표현되며, 검은색은 카카오 초콜렛 68% 정도의 맛이라고 한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많은 시각 단어를 정의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 다양함이 익숙한 언어를 더욱 새롭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재미있다.  '완만하다'는 "조금씩 서서히", '주머니'는 "자기보다 작은 것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것", '가까이서 들린다'는 "모기소리가 들릴 때 모기와 나 사이의 거리 정도"라니, 얼마나 폭신폭신한 정의인가. 


퍼포먼스에는 귀 뿐 아니라 온 몸으로 이루어지는 '깊이 듣기', 움직이는 몸을 보지 않고 춤을 경험하는 '말하기 춤추기' 등도 포함되었다. 비시각장애인 관객도 눈을 감고 퍼포머의 소리와 움직임을 따라가거나 배요섭 연출의 지도에 따라 소리를 냄으로써 객석의 구성상태를 묘사하면서 시각장애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체험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음성해설을 비롯해 점자안내, 문자통역(자막), 이동지원은 물론 공연 전에 공연장 미니어처와 창작자들의 의상을 만져보며 설명을 듣는 터치투어 등 다양한 접근성 서비스를 진행했다. 또한, 공연 프로그램 북은 큰글씨와 점자, 스크린리더로 인식 가능한 텍스트 파일, 프로그램북을 낭독한 음성파일로 준비해 관람객들의 편의를 높였다. 이 외에도 좌식 방석으로 된 비지정석 객석 형태로 관람이 진행되었지만, 의자가 필요한 관람객에게는 접근성 지원신청서를 통해 의자를 별도로 마련하였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관람객들은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근육을 쓴 느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의 경험은 충격 그 자체였고, 공연 마지막에 그 감정은 폭발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독립된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내 안의 관념과 상상력의 종합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공연”, “신파와 극복의 요소 없이 온전히 자신만의 감각과 언어로 소통하고 작업한 예술을 만나고 왔다.” 등 호평을 남겼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김형희 이사장은 “장애예술의 본격적인 활성화를 위해서는 장애 유형별로 특화된 작품 제작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공연 ‘어둠 속에, 풍경’은 시각장애인과의 협업을 통해 의미 있는 창작 작업을 보여줄 수 있어서 유의미한 과정이었다. 수 년에 걸쳐 장애인의 고유한 감각을 모색해 온 창작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다.”고 전했다.

이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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