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클래식 팬, 하루에 공연 3개 보는 이유

2024.07.01 14:10:47

명지의료재단 이왕준 이사장 |

 

지난 6월 29일 토요일, 두 달 만에 하루에 3개의 공연을 보는 강행군을 했다. 놓치기 아까운 연주회들이 이렇게 하루에 몰리면 괴롭다. 선택을 강요받느니 그냥 다 보는게 오히려 마음 편하다. 물론 동선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최악의 경우 공연이 동시간대에 겹치면 1부와 2부를 나누어 보는 메뚜기 관람을 할 수도 있다.)  

 


 

오후 2시 예술의 전당 IBK홀/ 이지윤 바이올린 독주회

 

이지윤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최연소 악장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다양한 협연만 하다가 오랜만에 독주회를 열었다. 이지윤은 나의 최애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다. 바이올린의 음색과 보잉이 정말 우아하고 매우 정갈해서 항상 진정성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고, 또한 절대 과하지 않는 세련된 음악성을 표현한다. (다니렐 바렌보임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악장 아닌가!)

 

 

 

오늘 선곡 모두가 그의 보잉 스타일에 아주 어울리는 곡들이다. 1부 첫 곡은 바그너 베젠동크 가곡집 중 <꿈>. 피아노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곡인데 원곡보다 아름답다. 두번째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이다. 슈트라우스가 20대 후반에 작곡한 후기 낭만주의 미학이 철철 넘치는 곡인데, 이지윤의 우아하고 세련된 연주에 꼭 걸맞는 곡이다.  2부 슈만의 <로망스> 3곡과 브람스 소나타 2번도 단아하고 정갈한 맛이 최고였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를 맡은 일리아 라쉬코프스키는 언제나 안정된 백점짜리 협주자이다. 

 

오후 5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KBS 교향악단 홀스트 <Planets>

 

오늘의 메인 디쉬는 오늘 KBS교향악단 제803회 정기연주회의 2부, 구스타브 홀스트 작곡의 <Planets>이다. 오늘 공연이 국내 초연이다. 총 7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왕성 악장과 지구 악장이 없다. 홀스트가 1918년에 쓴 곡이기 때문에, 한참 뒤인 1930년에 발견된 명왕성은 빠져있다.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어차피 행성에서 제외되었으니, 작곡자의 행성인 지구 악장만 없는 셈이다. 

 


첫곡 <화성>하고 네번째 곡 <목성>이 압권이다. 요엘 레비는 오랫동안 KBS랑 합을 맞춰왔기 때문에 항상 둘의 케미가 좋다. 오늘도 사운드가 아주 풍성하다. 항상 암보로 리드하는 요엘 레비의 지휘도 휼륭했다. 

 
마지막 악장 <해왕성>은 매우 신비롭고 조용하게 끝나는데 우주로 사라져가는 마지막 여정을 상징하듯 합창석 바깥 복도에서 들려오는 여성합창의 허밍과 어우러지면서 대막이 내린다. 사람들은 합창 소리가 환청인가 녹음인가 헛갈려하다가 공연이 끝나고 뒷무대에 여성합창단이 소개되면 그때야 환호를 지른다.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서울 시향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

 

허겁지겁 롯데콘서트홀로 이동한다. 비까지 내리다보니 주차에만 15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공연시간에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1부는 레이 첸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오늘 공연이 매진 된 것은 이 친구 때문인 것같다. 볼 때 마다 버터와 치즈를 너무 잔뜩 넣은 스파게티를 먹는 느낌인데...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계속 맛있게 먹히지? 볼수록 매력이 있는 친구임이 틀림없다. 

 


그 매력의 비결은 너무나 탁월한 테크닉과 눈부신 보잉인듯! 차이코프스키는 비장하고 유려하여 러시아적이길 기대하게 되는데, 레이 첸은 러시아적이기는 커녕 파리나 뉴욕의 파티에라도 온 듯 마냥 화려하고 불링블링하게 연주한다. 테크닉이 완벽하니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이렇게 연주해도 나름 묘미가 있다.

 

앵콜에서 보여준 파가니니 <카프리스> 21번 연주는 질퍽하고 느끼하다. 파가니니는 기교가 어려운데, 질퍽하게 연주하면서도 어떻게 이런 보잉테크닉과 운지법을 현란하게 자랑할 수 있나? 참으로 미워할 수가 없다. 팬이 많을 수 밖에. 그렇게 그가 15년전 메뉴인 콩쿨과 엘리자베스 콩쿨 우승자였던 이유를 다시 한번 절감한다.

 

 

2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교향시이자 35살에 작곡한 <영웅의 생애>이다. 슈트라우스는 이후로 교향곡만 썼다. 


이 곡은 뚜력한 내부 단락은 없지만 내용적으로 7부로 구성된, 슈트라우스의 오케스트라 작법이 집대성된 곡이다. 풀 4관 편성에 팀파니 2대와 하프 2대까지, 오랜만에 실황으로 들으니 소리의 샤워를 받은 듯하다. (슈트라우스는 본인이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마지막 영웅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실리 페트렌코랑 연주하면 시향 단원들이 모두 행복해 한다. 표정과 연주에 다 드러난다. 그만큼 지휘 실력도 명쾌하고 깔끔하다! 군더더기가 없어 나도 아주 좋아하는 지휘자이다. 


오늘 곡 시작과 중간, 말미에까지 곳곳에서 악장의 바이올린 독주가 나온다. 벌써 7년 가까이 공석인 악장을 대신해 부악장 명함으로 시향을 이끌고 있는 웨인 린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역시 인품도 실력도 최고다!!

 

 

이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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