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부천국제영화제 개막식 바로 다음날인 7월 5일부터 7일까지 무려 3일 동안 'BIFAN+ AI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AI를 주제로 하루 또는 반나절 동안 열리는 컨퍼런스는 많았다. 하지만 워크숍과 함께 컨퍼런스만 3일 동안 진행되는 사례는 처음이었다.
2박 3일 48시간 동안 AI 툴을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BIFAN+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 신청은 20대1의 경쟁률을 넘어섰고, 하루 입장권이 3만원이었던 컨퍼런스 티켓도 매진되었다. AI영화 국제경쟁부문작을 상영하는 '부천 초이스 : AI 영화'도 매진되었다. AI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AI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었다.
이 컨퍼런스의 첫 기조연설자는 카이스트 최초 미술계 전임교수이자 초대 카이스트 미술관장을 역임한 뉴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 교수였다. "AI시대 새로운 융합예술의 도래와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주제로 한 기조연설은 '액체 현대'의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 <유동하는 공포>를 인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액체 현대'란 우연적이고, 불확실하고, 끝없이 변화하고, 예측불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발전이 예측불가능성을 오히려 증가시켰다. 이제 인공지능으로 인해 더욱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더 편리하고 좋아진 세상을 기대하는 즐거운 공포일 수도 있다. 이런 시대에 예술가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질문해야 한다."라고 이진준 교수는 말한다. 다음은 그의 발제 및 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AI시대 예술의 가치, 예술의 역할
예술의 가치는 다양성의 존중이다. 그런데 기술 발전으로 정보도 취향도 오히려 획일화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AI는 도구이지 창작자가 아니다. 사람은 작품을 감상하고 그 울림을 자기 안에 담지만, AI는 사람과 달리 작품을 감상하지 않고 목격할 뿐이다. 인공지능은 학습한 것을 기반으로, 다르지만 비슷한 것(편집자주: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아니다)을 내놓을 뿐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학습은 서구 백인 남성 편향의 학습이다.
사람들은... 기만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단순히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만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실제로는 만족을 주지 않는 만족에 매달리지 않으면 삶이 견딜 수 없게 될 것임을 느낀다. (아도르만)
그래서 우리는 디지털 세계와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것일까?
AI는 정보집합거울, 그것이 만드는 취향 감옥
AI는 거대한 정보집합거울과도 같다. 우리가 제공한 정보를 다시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알고리즘은 우리를 취향의 감옥에 가둔다. 우리는 차츰 미적 바보가 될 수 있다. 예술은 멈춤 기능을 발휘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보집합거울을 깨고, AI와 알고리즘이 만든 취향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아티스트이기도 한 이진준 교수는, AI의 탁월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탁월함은 위험하다.
AI는 내가 예술활동을 하면서 만난 그 어떤 비평보다도 나와 나의 예술세계를 잘 이해하는 훌륭한 비평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결국 내가 듣고싶은 이야기였을 뿐이다. 예술의 본질적 힘과 기회는 다양한 가치와 목소리를 들려주는 데에 있다. AI의 비평이 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널리 알린다면, 결국 나는 취향의 감옥에 갇히는 셈이다.
시적 함축성, 몸의 기억, 사적 경험
우리는 모두 이런 인식론적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서 벗어나야 AI를 도구로 바라볼 수 있다. 벗어나는 방법으로 이진준 교수는 세 가지를 제안한다. 시적 함축성, 몸의 기억, 사적 경험이다. 이 세가지는 모두 AI가 이해하기 힘든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시적 언어를 익혀 언어 사이의 침묵을 이해하고, 몸을 움직임으로써 언어 이외로도 사고하며, 주변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사적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시 쓰는 마음, 몸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친밀한 관계, 자기 자신을 이용해 이것을 유지하는 것이 이진준 교수가 제시한 AI시대를 맞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