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탐구] 기타 한 대로 그려 낸 우리 시대의 자화상 '서울·수원 이야기'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

2024.09.04 18:35:44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늘에서 피어난 현재진행형의 민중음악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아픔을 노래하다
출장작곡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시대의 자화상

 

 

 

천 원으로 시작된 음악 여정

 

"천 원에 노래 한 곡 만들어 드립니다."

 

이 소박한 문구로 시작된 김동산의 음악 여정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환경운동가에서 '출장 작곡가'로 변신한 김동산은 지난 10년간 거리와 카페, 때로는 철거 농성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왔습니다. 

 

2017년에 발표된 그의 첫 정규앨범 '서울·수원 이야기'는 이러한 작업의 결실입니다. 이 앨범으로 그는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업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동산의 진가는 단순히 음악적 완성도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의 노래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기록한 살아있는 역사서이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메가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동산의 음악 여정은 2010년 수원의 한 공원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그는 행사에서 자작곡을 불렀지만 관객의 반응이 시원찮자, 즉흥적으로 '천 원에 노래를 만들어드립니다'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첫 '고객'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한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만든 노래에 함께 온 누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김동산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노래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소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거리에서 만난 우리 시대의 자화상

 

이후 김동산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의 '고객'들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90세 노인부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난 포차 주인, 부당 해고된 노동자,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동네 주민들까지... 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었고, 김동산은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노래에 담았습니다.

 

'서울·수원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앨범의 곡들은 하나같이 강렬합니다. '수원아이파크시립미술관송'은 공공미술관 이름에 기업 브랜드를 넣은 것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입니다. "나는 아파트/나는 공원/나는 이제 미술관"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가사는 공공성을 해치는 기업과 지자체의 횡포를 꼬집습니다.

 

'4인가족'은 힙합 듀오 리쌍과의 분쟁으로 유명한 가로수길의 유명 곱창집 '우장창창'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저 맘 편히 장사하고 싶어/제일 좋은 재료 구해서/정성껏 대접하면/4인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그런 단순한 삶을 지키고 싶어"라는 가사는 열심히 땀흘려 성실하게 살아가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나야 하는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아픔을 노래하다: 앨범 속 주요 곡들

 

'아현포차 30년사'는 마포구 아현동의 포장마차 할머니들이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승만 박사 때가 더 가난했는데/지금 이 세상이 더 가혹해"라는 구절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노래하는 이유'는 13년간 해고 투쟁을 벌인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삼천하고도 오백구십 날을/아무 해결도 사과도 없이/마흔 여섯 명은 기타 부속처럼/길 위에 버려졌다"는 가사는 우리 노동자들의 처절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콜텍은 그 값싼 노동력을이용해 돈을 벌고/미국은 그렇게 만든 기타를 가져가 우리에게 다시 판다/ 사람들은 그걸 브랜드라고 말한다"는 이 곡의 킬링파트로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악

 

'서울·수원 이야기'는 멀티트랙이 아닌 옛날 방식 그대로 하나의 리본마이크로 원테이크 녹음되었습니다. 일체의 가공이 없는 이 녹음 방식은 노선택, 김페리, 박희진, 양승현 등 한국 최고 수준의 악기 세션들의 연주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러한 녹음 방식은 김동산의 음악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의 음악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듯, 앨범 역시 그 순간의 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옛 것을 고수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의 과도한 편집과 가공을 거친 음악들 사이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김동산만의 독특한 매력입니다.

 

 

새로운 민중음악의 탄생

 

김동산의 음악은 전통적인 의미의 포크나 프로테스트 송과는 다른 결을 지닙니다. 그의 노래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음악적 수사와 현장성은 어떤 세련된 음악보다 강렬합니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가사로 옮기는 그의 방식은 노래에 특별한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는 김동산의 음악을 새로운 형태의 민중음악으로 볼 수 있게 합니다. 전통적인 민중음악이 큰 서사와 이념을 다뤘다면, 김동산의 노래는 개인의 구체적인 삶과 아픔을 담습니다. 하지만 그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민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과 이웃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듬뿍 담고 있는 점이 현재진행형인 민중음악으로서 그의 음악의 특징입니다.

 

'서울·수원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경고를 보내는 중요한 문화적 산물입니다. 김동산의 노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잃어가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서울과 수원이라는 특정 도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현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질문들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명반

 

'서울·수원 이야기'는 들을수록 그 매력이 깊어지는 앨범입니다. 처음에는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음악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이는 단순히 음악적 완성도 때문만은 아닙니다. 김동산의 노래가 담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김동산의 '출장 작곡'은 우리에게 음악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노래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서울·수원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명반입니다. 그리고 김동산의 음악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의 기타 소리와 함께,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노래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정규 2집의 제작을 예정하고 있다니 다같이 기대해보면 좋겠군요.

 

- 황경하 음악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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