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정민제 작가가 무인양품 롯데월드몰점에서 개인전 '시간과 기억의 레이어링'을 개최하고 있다. 5월 7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쓰임을 다한 사물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작품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작품 '만촌동'은 작가의 작업실에 쌓인 자투리 실과 천을 해체하여 재조립한 작업이다. 만촌동이라는 지역에 살면서 만난 인연과 일상 속 순간들, 과거의 경험과 내적 갈등, 그리고 시간 속에서 응축된 감정들이 물질적 형태로 표현됐다. 색색의 실과 천 조각들이 서로 얽히고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질감과 색채의 향연은 관람객들에게 작가의 생활공간이자 정신적 세계인 '만촌동'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두 번째 작품 '그녀들의 베란다 정원'은 버려진 의류를 활용해 만든 패브릭 식물 시리즈다. 결혼 이후 마주하게 된 다양한 여성들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작가는 여성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가꾸는 베란다 정원에 주목했다. 이 빠진 국그릇이나 벗겨진 법랑 냄비에 심겨진 식물들, 친구 집에서 가지치기로 얻어온 작은 식물들이 모여 만들어진 정원은 고된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치유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알록달록한 천과 실로 재현된 식물들은 실제 식물이 지닌 생명력과 더불어 인간의 손길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식물이 자라는 시간과 여성들이 그 식물을 돌보는 시간, 그리고 작가가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재해석하는 시간이 모두 작품 속에 겹겹이 쌓여 있다.
작가는 "식물을 가꾸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작은 저항이자 자기 치유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삶의 무게를 견디며 만들어내는 작은 일상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고 한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삶의 과정 속에서 포착한 감정과 경험을 시각화했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흔히 버려지는 소재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시간과 기억이 중첩되는 독특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정민제 작가는 이번 전시 외에도 다양한 협업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아트굿즈 브랜드 '캄플로우'와의 협업에서는 "여성의 존재가 투영된 일상의 사물 위 재치있는 말들을 바느질로 새기는 작가"로 소개된 바 있다. 그의 작업은 섬유와 실이라는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 현대 여성의 고민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배민영 평론가는 정민제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일상을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로 포장하기보다는 날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면서 "여기서 '날것'이란 '있는 그대로의' 그 이상이다.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풍자하거나, 변용되거나, 무의식적인 듯하게 수집된 기호의 형태로 만나라고 던져지는 것들"이라고 평가했다.
무인양품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예술이 삶 그 자체의 체험이며 무인양품이 탐구하는 삶의 원점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라며 "예술을 소개하는 활동을 통해 '기분 좋은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하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예술이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정민제 작가는 대구 출신으로, 영남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실과 천, 바느질 등 전통적인 여성 노동으로 여겨졌던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여성의 일상과 내면을 탐구해왔다. 2018년 첫 개인전 '실의 무게'를 시작으로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최근에는 패션,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의 공간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실용적인 디자인과 기능성을 추구하는 무인양품의 철학과 작가의 일상 소재를 활용한 예술 작업이 만나 독특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상업 공간 속에 위치한 전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전통적인 예술 공간의 경계를 넘어,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만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버려진 천과 실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여성의 일상과 경험이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간과 기억의 레이어링' 전시는 5월 7일까지 무인양품 롯데월드몰점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 관련 문의는 무인양품 커뮤니티 매니저 김민지(mjkim@mujikorea.co.kr)에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