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전파사 《디스토피아 2025》 인터뷰: 디스토피아의 음악적 연대기

2025.04.20 02:36:51

현실의 균열을 기록하는 전자음악의 실존주의자

 

"우리 사회의 모순이 구조적인 모순이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났고... 직접적으로 그런 거대 담론 정치 얘기를 제 노래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게 거기서 나오는 신화와 오류와 착각이 너무 커 가지고..."

 

뉴스아트 편집부 | 묵직한 저음처럼 깔리는 이 한마디는 전자음악가이자 SF 작가, ‘삼각전파사’ 장호진의 세계를 여는 열쇠다. 최근 발표한 앨범 《디스토피아 2025》는 동시대 한국 사회의 불안한 공기를 포착한 음악적 기록이자, 거창한 구호 대신 삶의 미세한 균열 속에서 진실을 길어 올리려는 한 고독한 탐구자의 항해일지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매끈하게 포장된 현실 이면의 ‘이지러진 어긋남’에 집요하게 렌즈를 들이댔다. 삼각전파사의 음악은 바로 그곳, ‘삶이 무너지는 경계와 균열’에서 시작된다.

 

거대 서사의 노이즈를 뚫고, 삶의 현장음을 기록하다

 

삼각전파사가 겨누는 과녁은 분명하다. 정치적 영웅 신화, 선악의 편리한 이분법, 진영 논리의 선민의식 같은 거대 담론들이 만들어내는 ‘신화와 오류와 착각’. 그는 이런 것들이 현실의 복잡성을 가리고 오히려 “또 다른 모순”을 낳는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위가 아닌 아래로,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향한다.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그런 이지러진 어긋난 장면들에서 나타나고 이렇게 과대하게 포장된 그런 담론에서는 사실은 또 다른 모순이 시작됩니다."

 

그가 말하는 디스토피아는 먼 미래의 판타지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풍경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나는 해방촌 상인의 뒷모습, 건물주 앞에서 무릎 꿇는 가게 주인의 실루엣, 고요한 소성리 골짜기를 가르는 군 장비의 굉음,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동서울 터미널 상인들의 절규. 이런 날것의 파편들이 그의 음악을 구성하는 핵심 재료다.

 

이런 접근은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의 철학적 통찰과도 맥을 같이 한다. "현대 사회의 번듯한 모습이 이그러지고 무너지는 곳에서 사실은 그 본질이 드러난다"는 그의 말처럼, 삼각전파사는 시스템의 균열, 일상의 파열음 속에서 권력의 작동 방식과 사회의 모순을 읽어낸다. 지난 10년간 그가 길 위에서 마주한 투쟁의 현장들은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매번 계엄과 탄핵을 겪으며 사는" 것과 같은 실존적 경험이었다. 그의 음악은 이처럼 미시적 현실에 대한 끈질긴 청취를 통해 거대 담론의 허울을 벗겨내는 예리한 소리 탐침이었다.

 

 

"막다른 길을 계속 찾아서": 예측 할 수 없는 사운드 실험

 

정치적 사유가 현실의 구체성에 뿌리내린다면, 그의 음악적 표현은 기존의 문법과 질서를 교란시키는 치열한 실험정신으로 점철된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막다른 길을 계속 찾아서"라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이는 단순히 남들과 다른 소리를 찾는 것을 넘어, 음악이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태도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메트로놈이라든가 아주 음악적으로 기본적인 것들, 그걸 이제 안 지키게 되면 따라오는 이런 어려움과 불편함이 사실 생기잖아요. 그때 그래도 한번 치기로 그런 거 안 지키고 좀 해본다든지... 나름대로 중2병 같은 반항을 좀 했습니다."

 

이 ‘반항’은 유희처럼 들릴지 몰라도, 실은 익숙한 청취 습관과 안온한 감상을 거부하는 단호한 미학적 선택이다. 메트로놈의 구속을 풀고, 예측 가능한 화성과 구조를 배반하며, "들은 귀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되지 않는 거 같을 만한" 사운드를 좇는 여정. 이것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 중심 대신 주변, 승자 대신 패자, 영웅 대신 무명씨를 향하는 – 과 정확히 포개진다.

 

비선형적인 작곡 방식은 이런 태도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통 처음에 한두 소절 들으면…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를 예상하는데,” 그는 바로 그 예상을 깨부수는 데 집중한다. "정신 차려 보면 이제 제일 이상한 걸 하고 있는" 그 순간, 의도된 혼돈과 길들여지지 않은 즉흥성 속에서 창작의 에너지를 얻는다. 이는 미리 짜인 각본과 예정된 결말을 거부하고, 현실의 복잡함과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그의 태도가 소리로 발현된 셈이다.

 

스스로를 "전자음악가"라기보다 "전자 놀이"를 하는 사람이라 겸손해하지만, 그의 '놀이'는 전자음악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탐색하며 기존 어법의 경계를 허무는 진지한 작업이다. 이 실험은 청자에게 불편함과 낯섦을 선사하며, 수동적 감상을 뿌리째 흔든다. 그의 음악은 사회적 모순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형식 자체를 파괴한다. 예측 불가능한 사운드는 그 모순과 균열을 청각적으로, 때로는 신체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현장의 소리, 공간의 정치학: 소리로 쓴 아카이브

 

삼각전파사의 사운드는 진공 상태의 스튜디오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구체적인 '현장'과의 충돌, 특정 '공간'과의 교감을 통해 발화된다. 그는 음악 기획자 황경하와 함께했던 다양한 사회적 이슈 현장 연대 경험이 창작의 불씨를 지폈다고 말한다.

 

"같이 이제 찾아가는 현장마다 이슈가 생기고 내용이 생기고 주제가 생기니까... 저는 그걸 어떤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든지 이런 생각 없이... 그냥 떠오르는 대로 닥치는 대로 그대로 트랙으로 담아서 하나하나 만들어 오게 됐죠."

 

이 ‘현장성’은 앨범 곳곳에 지문처럼 찍혀있다. 한남동 부촌의 기묘한 풍경('그리마 X'), 젠트리피케이션의 상흔이 남은 해방촌('땅거미 Z'), 사드 레이더 소음과 목가적인 풍경이 충돌하는 소성리('그들은 이 골짜기의 아름다운 소리를'). 각 트랙은 특정 공간의 사회·정치적 좌표와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숨결을 담아낸 '사운드 맵'과 같다. 특히 소성리 트랙에서 기계적인 레이더 소음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를 병치시킨 대목은 공간에 각인된 긴장을 청각적으로 생생하게 드러낸다.

 

"떠오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만든다는 그의 말은 무계획적인 즉흥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을 미학적으로 윤색하거나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려는 유혹을 떨치고, 현장의 복잡다단함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예술적 승화" 대신 현실에 대한 충실성을 택한 그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음악에 깊은 사회적 공명과 아카이브로서의 무게를 더한다.

 

 

정치적 목소리의 용기, 복잡성을 끌어안는 태도

 

삼각전파사는 예술가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해묵은 신화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는 "중도나 중립성 이런 미명 하에 덮어놓기"를 경계하며, 때로는 솔직한 입장 표명이 더 건강한 대화를 가능케 한다고 믿는다.

 

"베를린 청년들이 자기 정치 성향을 먼저 얘기하고 대화를 한다 그래요... 이런 데서 사람들 모여 있는 데서 정치적인 얘기 꺼내는 거는 실례지라는 또 그 어떤 서울식 매너에 잠식돼 있다가 그 얘기를 딱 듣는데 그냥 확 깨더라고요... 드러내는 그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드러냄'은 이념의 깃발을 흔드는 것과는 다르다. 정치를 영웅 서사로 포장하거나, 정권 교체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단순 논리를 그는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구조적 모순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현실의 복잡성 자체를 끌어안으려 한다. 변화하는 소통 환경에 대한 그의 진단도 흥미롭다.

 

"갈수록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젊은이들 만나보면 표현을 훨씬 더 잘 하는 것 같고 정보도 더 촘촘하고 예전처럼 막연한 인상비평으로 서로 막 이러는 게 아니라..."

 

그의 음악은 바로 이 복잡성을 소리로 구현한다. 명확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답을 내놓거나 편을 가르지 않는다. 불편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사운드는 어쩌면 이 복잡한 세계를 대하는 정직한 태도일지 모른다. 민중음악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는 "민중적인 환란의 장에서 노래를 하면 그걸로 그냥 민중가요가 되는 거니까"라며, 장르적 규정보다는 노래가 불리는 '맥락'과 '현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는 그의 음악이 특정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과 접속하려는 열린 자세를 보여준다.

 

경계를 허무는 유랑: 문학, 영화, 그리고 판소설의 꿈

 

SF 작가라는 또 다른 정체성은 삼각전파사의 음악적 영토를 더욱 확장시킨다. 그의 작업은 문학, 영화, 음악 등 여러 매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자신의 단편 '그리마 X'를 동명의 음악으로 만든 것이 좋은 예다.

 

"예전에 누보 로망이라고 엄청 실험적인 소설을 시도하는 그런 사조가 있었어요... 저도 그리마 X라는 소설을 썼는데 수식을 엄청 많이 집어넣어서 어떻게 보면 의도적으로 읽기 곤란하게 만드는 나름의 그런 장난이 들어간 소설이었는데..."

 

'읽기 곤란한 소설'을 쓰려는 시도는 '듣기 불편한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이는 관습적 수용에 안주하지 않고 매체의 표현력을 확장하려는 그의 일관된 예술적 태도를 드러낸다. 그가 구상하는 "판소설"이라는 형식 역시 흥미롭다. 메이지 시대 일본 '엔카'의 기원처럼, 길거리 연설가의 사회 비판적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적인 거리의 서사를 만들고자 하는 꿈. 이는 엘리트주의적 예술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언어와 소리로 현실을 직시하려는 그의 단단한 의지를 드러낸다.

 

영화적 이미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블레이드 러너》와 반젤리스의 사운드트랙을 언급하며, 그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과 신다사이저 사운드가 만나는 지점에 주목한다. 이처럼 다양한 매체에 대한 관심과 실험은 그의 작업이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다각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려는 총체적인 시도임을 증명한다. 《디스토피아 2025》는 그래서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 영화적 감수성, 철학적 사유, 사회학적 관찰이 뒤섞인 우리 시대의 복합적인 문화 텍스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예측불가능성의 미학, 미래의 주파수를 찾아서

 

삼각전파사 음악의 핵심은 '예측불가능성'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Depeche Mode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에 매료되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음악 취향을 넘어선다.

 

"지루함을 스스로 느끼지 않는 방향으로만 그냥 딱 그거 하나... 다 계속 예측 못하는 진행으로 가는... 그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이 '지루함에 대한 저항'은 곧 현실을 정해진 틀이나 익숙한 서사로 재단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저항이다. 그의 음악은 청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편안한 감상을 방해하며,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현실을 다른 감각으로 느끼도록 이끈다. 《디스토피아 2025》의 트랙들은 바로 이 예측불가능성의 미학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불편하지만 정직하게, 혼란스럽지만 생생하게 그려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협업들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열린 태도다. 그가 25키 마스터 키보드를 들고 집회 현장에서 연주하며, “시민들이 어, 무슨 일 났나?” 싶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퍼포먼스 구상은 특히 인상 깊다. 그의 음악은 공연장이나 스튜디오를 벗어나, 현실 공간에 직접 개입하며 파열음을 일으키는 ‘음향적 개입(sonic intervention)’, 곧 사회적 행위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거리의 노래꾼을 꿈꿨던 '판소설'의 정신이 21세기 전자음악의 형태로 발현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장호진은 자신의 작업이 동료 뮤지션들에게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삼각전파사의 음악은 확실히 쉽거나 편안한 길을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동시대의 모순 앞에서 눈감지 않고, 그 복잡성과 불편함을 끌어안으며, 실험적인 사운드를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한국 음악 씬에서 독보적인 좌표를 점한다. 《디스토피아 2025》와 그의 여정은,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에게 예술이 현실과 어떻게 대결하고 질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증언이자, 마땅히 기록되어야 할 '음악적 사료'다. 그의 불편하고 낯선 전자음악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외면했던 현실의 민낯을 마주하고 미래를 다른 주파수로 상상할 용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디스토피아 2025》 트랙리스트

  1. 물결 (03:25)
  2. 그리마 X (05:50)
  3. House Of Rising Sun (2025 Ver.) (05:45)
  4. 땅거미 Z (05:02)
  5. 그들은 이 골짜기의 아름다운 소리를 (04:08)
  6. Why (09:10)
  7. 해뜨는 집 (05:54)
  8. 수원 지동 29길 (03:55)

 

크레딧

  • 프로듀서: 삼각전파사
  • 기획: 황경하
  • 레코딩: 삼각전파사, 황경하
  • 믹싱, 마스터링: 황경하 (@스튜디오 놀)
  • 디자인: 김한샘 (@오와오와 스튜디오)
  • 참여 뮤지션: 최니마, 정수민

 

인터뷰 일시: 2025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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