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방식의 새로운 음악 생태계 실험, 상반기 3종 앨범 주목

2025.05.27 15:24:05

평화연대·베테랑 복귀·실험음악... 사회적 메시지와 예술성 겸비한 독립음악의 성과
협동조합 방식 독립제작으로 입증한 대안적 음악 유통의 가능성
크라우드펀딩부터 인프라 공유까지, 기존 음악산업 틀 벗어난 혁신적 시도

뉴스아트 편집부 | 한국 독립음악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음악 생태계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2025년 상반기 발매한 세 장의 앨범이 각각 다른 접근법으로 기존 음악 시장의 대안을 제시하며 음악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단순한 앨범 발매를 넘어 전문성을 가진 여러 조합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제작 방식, 창작 인프라 공유, 그리고 아티스트와 청자 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이름을 모르는 먼 곳의 그대에게》 - 평화를 노래한 12인의 특별한 연대

 

 

"이름을 모르는 먼 곳의 그대에게"라는 제목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앨범은 2월 7일 디지털 발매와 함께 음악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12인의 음악가가 참여한 이 평화 연대 컴필레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전쟁과 폭력에 맞서는 예술가들의 진솔한 응답이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의외로 소박했다. 2023년 여름 강정 피스앤뮤직캠프의 기념 음반으로 기획되었던 이 작업은 당시 무산되었지만, 그해 겨울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활동가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세계 곳곳의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음반을 만들어보자"는 그의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강정마을과 소성리를 비롯한 전국의 평화 운동 현장에서 활동해온 음악가들과 활동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음악적 스펙트럼도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다. 정진석은 소성리 투쟁 현장의 긴장감을 특유의 해학으로 풀어낸 블루스를 선보였고, 모레도토요일은 가자지구 여성들의 해방 의지를 따뜻한 포크 선율에 담았다. 자이와 HANASH가 협업한 일렉트로닉 넘버는 전쟁으로 팔을 잃은 소녀의 이야기를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김동산과 블루이웃의 '물결'은 평화로운 시절의 축제를 그리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제작 과정에서도 평화의 가치가 실현되었다. 제주 대정읍의 램프스튜디오에서 시작된 녹음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직접 구축한 서울 은평구의 스튜디오 놀로 이어졌고, 소노리티 마스터링의 이재수 감독과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조합원인 오디오가이 사운드360의 돌비애트모스 마스터링 지원으로 완성되었다. 각 참여자들은 개인적 이득 없이 순수하게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 참여했으며, 제작진 역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힘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CD로 선발매된 이 앨범은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으로 조기 완판을 기록했다. 제주 강정평화센터와 서울 홍대 스페이스 한강에서 열린 발매 기념 공연은 평화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모인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앨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전용 웹사이트(peaceandmusic.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이(Jai) 《Golden Hour》 - 25년 음악 여정의 황금빛 결실

 

 

3월의 음악계는 한 전설의 귀환으로 설렘에 가득했다. 1990년대 말 전설적 여성 록밴드 헤디마마의 리더였던 자이가 7년의 침묵을 깨고 정규앨범 《Golden Hour》로 돌아온 것이다. 이 앨범은 단순한 복귀작이 아니라 25년간의 음악적 여정이 마침내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골든아워'라는 제목은 사진 용어에서 빌려온 것으로, 일출과 일몰 무렵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을 의미한다. 자이에게 이는 음악적 경험과 기술, 예술적 영감이 모두 정점에 이른 시기를 상징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연결되는 이 순간이 제게는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그의 말에서 앨범에 담긴 깊은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이 앨범의 탄생 과정 자체가 새로운 음악 생태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75명의 후원자가 참여한 크라우드펀딩은 목표액의 115%인 810만원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뮤지션과 리스너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성공 사례로, 상업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 환경에서 완성도 높은 앨범이 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5곡으로 구성된 앨범은 록, 재즈, 포크, 보사노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작품이다. 첫 트랙 '너의 데이트'는 "어제 넌 분명 구멍 난 셔츠였는데/오늘은 새로 산 옷을 입고/새 구두도 신었구나"로 시작하는 가사로 짝사랑의 설렘과 아픔을 섬세하게 담아낸 포크 넘버다. 자이는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이와 데이트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서운함과 자책감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Fever'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자이가 "가장 초창기에 만든 곡"이자 "록에서 재즈로 넘어간 첫 곡"으로, 오랫동안 품어온 곡을 이제야 완성한 것이다. 부드러운 보사노바 리듬 위에 자이 특유의 폭발적인 보컬이 어우러지며,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열기가 제목 그대로의 '열병'을 선사한다.

 

앨범의 백미는 '때늦은 옛 이야기'다. 이 곡은 자이의 가장 개인적인 고백이 담긴 자전적 발라드로, "음악을 떠나고 싶었던 시기,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쓴 곡이다. 당시에는 "음악이라는 사랑에게서 이별을 고하는 노래"였지만, 지금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 완성하게 된 "묘한 아이러니"가 곡에 깊은 울림을 더한다. 25년간의 음악 여정에서 마주한 희로애락이 모두 응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제작진도 화려하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했다. 프로듀서 박찬울, 재즈 피아니스트 이보람, 베이시스트 정수민, 드러머 권낙주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해 자이의 보컬에 풍부한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앨범의 상세한 내용은 자이의 웹사이트(litt.ly/golden_hour)에서 만날 수 있다.

 

삼각전파사 《Dystopia 2025》 - 디스토피아를 전자음악으로 그려낸 실험

 

 

5월 발매 예정인 삼각전파사의 《Dystopia 2025》는 세 앨범 중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작품이다. 전자음악가이자 SF 작가인 장호진이 실험전자음악과 민중음악을 결합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전자음향으로 기록한 이 앨범은, 한국 실험전자음악과 민중음악의 경계를 재정의하는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장호진은 지난 10년간 다양한 사회적 이슈 현장에서 연대 활동을 펼치며 그 경험을 음악으로 기록해왔다. "같이 찾아가는 현장마다 이슈가 생기고 내용이 생기고 주제가 생기니까, 저는 그걸 어떤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든지 이런 생각 없이 그냥 떠오르는 대로 닥치는 대로 트랙으로 담아서 하나하나 만들어 왔다"는 그의 말에서 이 앨범의 현장성과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8곡으로 구성된 앨범에서 '그리마 X'는 작가 자신의 SF 소설을 음악으로 재구성한 독특한 크로스미디어 실험작이다. 한남동 부촌의 기묘한 풍경을 수식과 노이즈로 해체한 이 곡은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다. '땅거미 Z'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의 폭력을 왜곡된 신디사이저로 생생하게 표현했고, '그들은 이 골짜기의 아름다운 소리를'은 성주 소성리의 평화로운 자연과 사드 레이더의 기계적 소음을 병치시켜 국가폭력의 일상적 침투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국 민요 'House of Rising Sun'의 2025년 버전이다. 전통적 저항 민요를 21세기 전자음향으로 재탄생시킨 이 작품은 민중음악의 국제연대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갱신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저항 음악의 문법 자체를 현대화하는 시도이자, 우리 시대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저항의 언어를 제시하는 작업이다.

 

장호진의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다. 그는 메트로놈과 화성 진행 등 기본적인 음악 규칙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반항적' 작곡 방식을 구사한다. "막다른 길을 계속 찾아서"라는 표현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운드 실험을 통해 기존 음악 문법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 중심 대신 주변을, 승자 대신 패자를 향하는 시선 – 과 정확히 일치하는 접근법이다.

 

"우리 사회의 모순이 구조적인 모순이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났고, 직접적으로 그런 거대 담론 정치 얘기를 제 노래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처럼, 이 앨범은 정치적 구호보다는 현실의 복잡성 자체를 끌어안으려 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차가운 전자음향 속에 뜨거운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낸 이 독특한 작품이다. 앨범의 전체적인 정보는 삼각전파사 공식 웹사이트(dystopia2025.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협동조합이 열어가는 새로운 음악 생태계

 

 

이 세 앨범의 가장 큰 공통점은 협동조합 방식의 독립 제작을 통해 상업적 압박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예술적 실험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크라우드펀딩, 인프라 구축, 조합원들의 참여, 장르 실험 등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기존 음악 산업의 틀을 벗어난 대안적 접근을 성공적으로 실현해 보였다.

 

음악기획자 황경하는 "이 앨범들은 한국 독립음악이 사회적 메시지와 음악적 실험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며 "특히 여러 사람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제작과 유통은 자생 가능한 음악 생태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 앨범 모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름을 모르는 먼 곳의 그대에게》의 CD 및 공연 조기 완판, 자이 앨범의 크라우드펀딩 목표 초과 달성, 삼각전파사 앨범의 킨디라운지 5월의 주목할 앨범 선정, 그리고 각 앨범이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꾸준한 재생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대안적 음악 생태계도 충분히 지속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히 음악적 성취를 넘어 한국 문화산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협동조합이 구축한 인프라를 활용하여 아티스트들 간의 수평적 협력과 연대를 통한 창작과 유통이 가능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들의 실험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상업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의 실험이 한국 독립음악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세 앨범 모두 멜론, 지니,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자이는 4월부터 전국 투어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음악 생태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지, 그리고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런 방식의 창작과 유통에 참여하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의: 한국스마트협동조합 02-764-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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