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밤 9시 뉴스 전에 매일 가곡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1980년대에는 그러했다. 대중음악계에 큰 혁신이 일어난 것은 1990년대. 서태지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통합적이면서도 세련된 새로운 음악이었다. 이로 인해 가곡은 견고해 보이던 지위를 순식간에 잃고 말았다. (9시 뉴스 직전에 방영되던 한국가곡 영상 보기)
가곡을 다시 즐겨 부르게 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계속 있었다. 어려운 와중에 자비를 들여서라도 가곡을 권장하며 부르고자 하는 크고 작은 모임과 공연이 끊이지 않았다. 2021년 예술의 전당 대학가곡축제는 그간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마침내 가시적인 결실을 거두고 가곡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8월에 했던 공연의 앙코르 공연을 9월에 다시 했을 정도이다.
이 공연이 관심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관람평을 살펴보면, 기존의 정형화된 공연 형식에서 벗어나 관객이 원할 법한 프로토콜을 사용한 것과 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들과 늦깍이로 성악을 배운 사람들에게도 출연 기회를 주어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이 정도면 한국 가곡계에서 큰 성과를 이루어낸 셈이다.
한국가곡에 대한 열망은 특히 지역에서 강하다. 최근 예고된 성주(星州) '별고을참외성악경연대회'는 성주군에서 꾸준히 예술가곡을 배워온 14명의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열정을 모아 만들어낸 결실이다.
성주군 합창단 등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4년 동안 박춘식 지휘자로부터 가곡 배우기 모임을 하면서 자신들끼리 조촐한 연주회를 하다가 성주예술가곡협회(회장 정병천, 이하 협회.)를 만들었고, 협회에서 그간의 활동을 기반으로 성주군과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지역 홍보를 겸한 성악대회를 기획한 것이다.
한국가곡경연대회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화천비목콩쿠르>이다. 매년 5~6월 비목의 고장 강원도 화천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애환을 담은 한국가곡만을 참가곡으로 하여 개최되고 있다.
별고을성악경연대회는 이번이 1회이니만큼 참가곡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지만, 한국가곡을 가장 앞에 내세워 한국가곡 부흥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차대환 사무국장은 "별고을가곡경연대회의 롤모델이 화천비목콩쿠르"라고 밝혔다.
현재 서울을 포함하여 다양한 지역에서 참가를 신청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최고령자는 86세, 85세라고 한다. 성주는 대구생활권으로 대구에서 대중교통으로 20~30분이면 접근할 수 있다. 숙박은 대구나 달성 지역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별고을에서 참외성악대회 열린다 기사 참조)
1980년대 이후 퇴조하던 한국가곡이 해외에서 오히려 더욱 인정받고 있다. 1999년 바리톤 노대산씨는 가디프 콩쿠르에서 한국가곡 ‘산아’로 가곡상 (歌曲賞)을 수상했다. ‘산아’는 2022년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열린 ‘세계 난민의 날’ 공연 프로그램에 포함되기도 했다.
해외 유학 중에 한국가곡에 대한 외국인의 반응을 보고 아예 한국 가곡을 논문의 주제로 삼기도 한다. 호주 시드니 음악대학의 변은정 반주자는 한국가곡을 박사학위 주제로 하여 시드니에서 한국가곡 15곡을 연주했다. 최근 소프라노 김홍경씨는 외국인이 한국가곡을 부르는 유튜브를 운영하여 성공리에 우리 가곡을 해외에 알리고 있다.
'산아'의 신동수 작곡가는 한국가요 퇴조의 이유로,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서 음악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 ▲합창 밴드 등의 음악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 ▲음악대학 입시에서 뜻도 모르는 외국 가곡만 부르게 하는 것, ▲음악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우리 가곡을 가르치지 않는 경향을 꼽는다.
트로트 가수가 된 성악가 김호중씨 덕분에 역설적으로 한국가곡을 접하게 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11년 음악교육공학지에 실린 광주교육대학 홍승연씨 논문에 의하면, 뉴욕 음대의 외국 성악가의 34%가 한국가곡 또는 예술가곡에 대한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사대상의 60%는 국제음성기호의 도움 등으로 한국어를 읽게 된다면 한국가곡 연주를 시도할 것이라 했다. 한국어를국제음성기호로 표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논문도 나왔다.
BTS에 힘입어 한국의 음악이 널리 알려졌으니, 뜻밖의 곳에서 뜻밖의 방법으로 한국가곡 제2의 부흥기가 올 수도 있다. 결국, 한국가곡에 얼마나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지냐는 문제이다.
설비 및 시설 전문건설업체인 세일ENS는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한국가곡 부흥을 위해 <세일음악문화재단>을 만들고 2009년부터 해마다 '세일한국가곡콩쿠르'를 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소속인 <창원문화재단>에서는 2022년에 처음으로 '한국가곡축제'를 열었다. 비전공자 단체인 <(사)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도 9년 동안 크고 작은 가곡음악회와 예술가곡제를 주관하여 왔다.
이처럼 민간의 열정을 뿌리로 하여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한국가곡 콩쿠르를 후원하고, 학교교육에서 한국가곡의 아름다움을 학생들이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된다면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가곡이 우리 국민들 안에서 자리잡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