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성북문화재단과 갈등하는 이유

2024.05.23 18:35:49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성북문화재단(이하 재단)이 시끄럽다. 2018년부터 진행되던 기획전시사업인 <미인도 공동기획전시 동네예술광부전(이하 동네예술광부전)>에 참여할 일부 작가에 대한 교체 요구 때문이다. 재단에서는 '3년 연속 참여 작가'이기 때문에 교체해야 하다는 입장인데, 전시를 준비하던 고개엔마을 협동조합(이하 조합)은 이를 '검열'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재단에서 "대표의 지시사항"이라면서 작가 교체 요구를 한 것은 5월 8일로, 전시를 불과 한 달 앞둔 시기이다. 홍보시안도 다 나와있는 상태였다. 전시 준비에 최소한 2~3개월이 필요한 예술인 입장에서는, 이유가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조합은 대안 마련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조합은 5월 13일 공문을 통해 "참여 배제를 요구하는 공식적이며 행정적 근거"와 "배제 결정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결정될 것인지"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재단은 이메일을 통해 신진작가 참여 및 지역문화예술 생태계를 위해 내부 논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라는 요지로 답하였다. 여기서 내부논의란, 대표이사와의 논의를 말한다.

 

조합과 참여작가진은 이번 전시 참여 작가 10명 중 6명이 신인이라는 점에서, 또한 지난 수년간 지역문화예술에 헌신해 왔다는 점에서 재단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 이에 재단의 태도가 "명백한 예술 검열과 권리 침해"이며 "지역문화예술의 선순환적 생태계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5월 20일 공개입장문을 내고 오는 28일 <동네예술검열전:재단의 셀렉숍>이라는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조합은 입장문에서 "재단 측은 대안은 없고 두 작가와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반복"했다고 하면서, 전시 기획자를 배제하는 것은 "예술 검열이자 권리침해"이며, "(그동안) 헌신해 온 두 작가와 그 동안 재단과 협력해 온 수많은 예술인을 마치 신진작가의 참여를 가로막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악의적인 모욕"이라고 했다. 

 

또한 "6월 전시에 맞춰 작가들의 작업이 시작된 상황이라 작가와의 계약의 형태를 빠르게 확인하여 추진해주기를 요청하였으나, 회의 때마다 계약형태에 대한 입장이 번복되면서 5월이 될 때까지도 작가들과의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재단 측은 검열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3년 일몰제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와의 계약이 늦어진 이유는, 사업자가 없는 예술인들에게 개별 계약이 어려울까봐 용역계약을 하고자 하는 등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늦어진 것이지, 3년 일몰제를 위해 일부러 미룬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3년 일몰 규제는 산업 행정 등의 분야에서 규제 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이것이 보조금 지원 사업을 3년마다 심사하는 일몰제로 적용되더니, 관공서와 하는 모든 계약이 3년 넘게 지속되면 안된다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에 엉뚱하게도 모든 지자체와 문화재단에서 '관행적으로' 예술계약에 적용하고 있다.

 

재단은 다양한 지역예술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3년 넘게 특정 분야에서 지속되는 사업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올해 동네예술광부전 담당부서가 바뀌었다. 실무자들은 부서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동네예술광부전이 올해 4년 차라 참여작가가 일몰제 적용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사업을 진행했다. 이에 전시 개최 한달 전 대표이사 보고 과정에서 뒤늦게 4년차 작가를 배제하라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미인도 공동기획전시 동네예술광부전(이하 동네예술광부전)>은 미아리 고가차도 아래 버려진 공간을 활용한 소중한 기획 전시이자 지역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다. 그런데 이번 일로 상호간의 신뢰가 크게 손상되었다. 

 

조합은 재단의 이번 결정이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예술인의 창작, 예술활동 권리에 대한 부당한 침해 행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술인신문고에 고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재단은 2017년부터 공동운영 협약을 맺고 지속해 온 신뢰에 기반해서 문제를 풀어가지 않고 공개입장문을 내면서 강도높게 비판한 조합에 대하여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조합은 5월 8일 이전까지 전적으로 재단을 신뢰하면서 사업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크다. 대표이사 면담 등 직접적인 노력을 더 하지 않은 것이 서로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재단은 행정단체로서, 4회 연속 같은 사람이나 업체와 사업을 하게 되면 감사 지적 대상이 되며 이로 인해 기관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 곳은 조합이 아니라 재단이다. 따라서 귀책사유는 재단에게 있다. 그런데 작가 2명을 갑자기 배제하라고 함으로써 그 책임을 예술가에게 묻는 결과가 되었다. 


성북문화재단은 이 결정이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지 몰랐다. 그동안 쌓아 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소통을 했다고 생각하고, 배제 작가 가운데 한 명이 기획자라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예술인의 자존심을 지켜줄 때 거버넌스의 토대가 될 신뢰가 지켜질 것이다.    

 

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이사는 2023년 9월 21일에 취임했다. 행정학을 전공하고 행정사무관, 서울시 문화정책과장, 양천구 부구청장, 서울시의회 사무처장 등을 거친 뼛속까지 행정전문가이다. 문화적이기보다는 원칙적으로 일처리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원칙이 좀 더 책임있는 방식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 사태의 귀책사유가 예술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문화재단의 이창기 대표이사가 취임 직후에도 거버넌스가 문제가 되었다. 유능한 행정가인 이창기 대표는 서울문화예술포럼을 만들고, 100명의 현장예술가 의견을 직접 청쥐하는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어 이것으로 거버넌스를 대체하고자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들어온 거버넌스 조직인 예술청의 민간위촉직 공동청장 2명과 운영위원 9명 중 7명이 2023년 4월 계약만료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위촉 종료시켰다. 

 

하지만 뉴스아트에서 보도했듯이, 서울문화예술포럼은 거버넌스에 대한 다양한 성공모델을 소개하고 있지만 선포에 그칠 뿐이다. 성공모델에 대한 이해와 적용보다는, 현란한 거버넌스 단어들을 훈장처럼 흔들 뿐이다.

 

대한민국에는 국정홍보와 관광과 문화 수출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만 있고, 예술부는 없다. 그러니 문화예술단체는 행정의 대상일 뿐이고, 거버넌스는 멀고도 멀다. 문화재단이 서울시 의원의 감사 지적을 받자 10년 동안 쌓아 온 거버넌스 조직을 해체하고, 거버넌스의 토대가 되는 신뢰보다 감사 지적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이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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