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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자체가 예술이었던, <예술도 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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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지 않은 아름다움과 신선함
장애인문화예술지원사업의 다음이 기대된다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비오는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3일 양평 폐공장에서 열린 <예술과 노동전>을 보러 나섰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 '요란하지도 않은 화목함'을 보고싶었다. 30일에 시작한 전시의 마지막 날이었다. (관련기사 발달장애예술노동자 작품 총망라, <예술도 노동전>)

 

물길도 지나고 산길도 지나 아신역에 도착하니, 비가 와도 떨어지지 않게 살뜰하게 붙여둔 안내 화살표가 보였다.

 

 

화살표를 따라 전시장에 도착했는데, 담 너머 보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폐공장이라더니, 넓은 정원에 저택이라도 서 있는 듯 하다. 대형 플래카드와 대형 벽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는 초대받지 않으면 초대하겠다는 이 전시의 취지대로 손님맞이용 음료와 간식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무슨 작품이 나를 맞을지? 기대반 염려반이었다. 아무래도 정은혜  작가 작품 중심이려나? 전시장에 들어서자 정은혜 작가가 방문객을 맞으며 자신의 책에 사인도 해 주고 있었다.

 

 

 

옆에는 정작가가 만났던 사람들, 우스꽝스러운 고양이 그림, 독특한 느낌의 자화상 등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뭐, 정은혜 작가니까. 

 

 

 

의외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맞은 편 벽에 걸린 작품에서부터다. 추상미술이다. 화면 분할이나 색채로 보아, 상당히 숙련된 사람이 그린 듯 하다. 알고보니 꽤 알려진 '기성' 작가였다. 

 

 

옆 방은 동물의 왕국이었다. 많은 종류의 동물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림으로 옮겨놓았다. 설명도 상세하다. 책으로 출판하려고 기획한 것일까싶을 정도다. 동물마다 울음 소리를 적어놓았는데, 얼룩말은 "멍멍", 뱀은 "쉿", 하마는 "쿠르르르"이다.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는 강석준 작가는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다른 건물에 더 많은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어린아이의 그림같은 안우진 작가의 그림은 선이 단단하고, 조예은 작가의 그림은 색감이 좋았다. 이 방의 그림 앞에서 아이들이 유독 즐거워한다.

 

 

 

이상의 시를 그림으로 번역한다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싶은 작품도 있었다.

 

 

다른 방에서는 이명선 작가가 클레이아트로 만든 공룡들이 손수레에서 내려 낡은 방직기계 위로 몰려가고 있다. 너무 정교해서 이미 만들어진 작품에 색칠만 했나싶었는데, 직접 다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형형색색의 공룡들 앞에서, 내가 어린아이라면 하나 달라고 그 자리에서 마구 떼를 썼을 것만 같다.

 

 

 

비오는 날 폐공장의 벌어진 천정과 벽 틈으로 떨어지고 흐르는 빗소리는, 변색되고 낡은 공장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양평의 피카소로 불리운다는 피주헌 작가의 그림은 그 자리에 딱 어울려서 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임우진 작가의 작품도 눈을 사로잡았다. 만일 부모님들이 이렇게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임우진 작가의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을 것 아닌가. 임작가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로봇 그림을 선보였는데, 느낌이 독특했다.

 

 

삭아버린 실타래를 그대로 매달고 있는 낡은 방직기계들이 있는 곳에서도 작품 전시가 계속되었다.  김혜자현 작가의 추상화에는 제목이 붙어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와! 크다> <아빠> <언니, 오빠> <새> <하나 둘 셋> 등을 보면서 수수께끼를  풀 듯 골똘히 생각해 본다.

 

 

 

뱅크시의 작품처럼, 멋진 작품은 어디에 어떻게 그려도 빛날 수 있다. 피주헌 작가와 임우진 작가의 그림은 톤이 강렬하기 때문에 폐공장에서 가장 무서운(?) 방에 걸려있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새는 바람에 작품 보호를 위해 일부 작품을 다른 방으로 옮겨걸었다고 한다.

 

 

 

 

누구의 간섭도 없자, 시간은 폐공장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버려진 공장은 진심을 담은 기획으로 아름다운 갤러리로 변신했다. 있는 그대로에 약간의 돌봄이 가해지자 특별하고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우리들에게 요란하지 않은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선사한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이 다음에는 또 어떤 신선한 예술감각을 일깨울지 기대된다.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