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오 작가 | MZ들 사이에서 인생샷 건질 수 있다고 소문난 바리메 오름. 비포장 도로가 섞여 있고 교행하기 어려운 좁은 길을 가야 한다. 바리매 가는 길, 어디쯤에서 찍으면 인생샷이 나올까? 인생샷으로 소문난 초지는 작물을 키우는 사유지라 들어가면 안된다. 거기 아니라도 멋진 곳 많으니까 삼가하자. 굼부리(분화구)가 바리 모양이라 하여 바리메 오름. 바리는 스님 밥그릇이라고도 하고 여성들 밥그릇이라고도 한다. 오름에 오르기 전부터도 멋진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지만, 올라가면 더 좋다. 바리메오름은 해송으로 가득한 곳. 남쪽은 숲이고 북쪽은 초지, 동쪽은 족은바리메오름, 서쪽은 큰바리메오름이다. 비온 뒤 솔향기 맡으며 솔그늘에 들꽃 영접 받고 올라보는 것도 좋다. 30분이면 오르는 오름 정상. 철쭉 군락이 있는 곳은 북봉,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쪽이 남봉이다. 북봉에서는 삼방산을 볼 수 있고, 남봉에서는 한라산 백록담 북면 부악(분화구벽)의 위용을 볼 수 있다. 남봉과 북봉 사이에는 움푹 패인 땅, 백록담처럼 둥근 모양의 굼부리가 보인다. 봄이면 흐드러진 철쭉이 무성한 해송을 배경으로 더욱 아름답다.
이동고 작가 | 전설같은 엣날 이야기. 옛날 지구에 '연달뫼'라는 산이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올 때면 이름 모를 꽃이 온 산을 덮었지만 산은 높고 험해서 그 산에 올라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꽃들은 해마다 봐주는 이도 없이 외롭게 피었다가 쓸쓸하게 지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하늘에 있던 두 천사가 하느님께 죄를 지어 이 산으로 귀양을 와, 그 꽃을 따먹고 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적막하던 그 산은 즐거움이 넘치는 산으로 변했다. 천사들의 노래와 춤이 끊일 사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산 밑에 살던 나무꾼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산을 반드시 오르겠다는 마음으로 손발에 가시가 찔려가며 드디어 산에 올랐다. 밑에서는 똥긋한 산봉오리인 줄 알았는데 산 정상은 의외로 널직한 데 놀랐다. 게다가 어디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여기는 천사나라 인간은 못 오는 데 연달산은 하늘산 인간은 못 올라오는 곳 향기 좋고 빛 고흔 이 꽃, 인간은 먹지 못하는 것 향기 좋고 빛 고흔 이 꽃, 무엇이라 이름 질까 연달산에 피는 꽃이니 연달래꽃이라 할까 연달래들이 피는 숲 속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따라 갔더니 거기에 아리따운 천
김수오 작가 |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큰노꼬메, 작은 노꼬메. 큰노꼬메는 높이 800미터가 넘기에 오르려면 제법 가파른 길도 만난다. 한라산 가는 기분으로 오를 수 있는 노꼬메 오름, 겨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았다. 가파른 길에 나무도 우거져 있어서일까, 옛날에는 사슴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 계단과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소나무와 억새풀이 장관이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이고, 노로오름, 한대오름, 바리메오름, 다래오름, 괴오름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벌써 저녁 어스름, 오름에서의 노을은 언제나 옳다.
김수오 작가 | 수망(水望)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 문헌상 한자로는 수영악(水盈岳), 수영악水靈岳), 수망악(水望岳)이다. 오름의 정상 분화구에는 늘 물이 고여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습지보호구역이자 람사르습지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소를 찾다 지친 젊은이 앞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값으로 오름 꼭대기에 큰 못을 만들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물이 고이지 않는 이 섬의 오름 꼭대기에 항상 물이 있는 호수가 있다니, 그저 전설로만 들리지 않는다. 오름의 둘레길은 '물보라길'이라 하고, 그 안에 소몰이길, 초원길, 오솔길, 삼나무숲길, 잣성길 등 다양한 길이 있다. 소몰이길이라니! 물이 가득해 말 키우기도 좋으니 수망리 공동목장이 있어서다. 버섯, 나무, 뱀, 새, 개구리, 도룡뇽, 오소리 ,노루 등 풍성한 생태계인 물영아리오름은 아름다운 제주를 더 아름답게 해 주는 생명의 근원이다.
김수오 작가 | 폭설 속으로 사라진 말은 해가 지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함께 누비던 들판 구석구석 살펴도 그 많은 말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먼 산으로 숨어버린 모양이다. 2월 첫째날 다시 찾은 벌판, 한바탕 달려댔는지 눈밭은 이미 다 헤쳐졌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내리쬐는 빛과 눈밭에 반사된 빛을 한껏 즐기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벌판을 거닌다. 다음 겨울을 기다리며.
김수오 작가 | 비행기가 뜨지 못할 정도로 눈이 온 날, 말들이 사라졌다. 몇 년을 드나든 곳인데도 찾을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눈덮인 무덤만 들판에 홀로 남았다.
김수오 작가 | 제주에는 오름이 아닌 산이 다섯 개 있다. 높이 순으로 보면 한라산, 산방산, 영주산, 청산(성산일출봉), 그리고 두럭산이다. 영주산은 오름이 몰려 있는 동쪽 제주의 관문이다. 300미터가 넘는 높이지만 부드럽고 완만하다. 오르는 길은 잔디로 덮여 있지만 소나무숲과 삼나무숲도 품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영주'라는 말은, 원래 제주를 뜻하고 한라를 뜻했다. 하지만 이제 영주산은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몸을 낮춰 동쪽을 지킨다. 노을진 오름능선에 나무 하나 홀로 밤 지새울때 바람슷긴 구름 사이로 북두칠성 반짝인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다’라고 했던 발자크는 일찍부터 인간의 표정에서 삶을 읽었나 보다. 얼굴 표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상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장터에 나와 붕어빵을 먹으며 행복하게 웃는 모녀의 모습이 한 장의 풍속화를 보는 것 같아 덩달아 행복해진다. 지치고 힘든 농촌생활 뒤에 모처럼 장나들이를 했는지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시골 장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붕어빵,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날 때면 다 익었나 열어보며 돌리는, 붕어빵장수의 바쁜 손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순간은 행복한 추억이다. 이윽고 갓구어져 나온 붕어빵을 이손저손 옮겨가며 야금야금 베어먹던 때가 34년이 지났건만 마치 어제 일 같다. 환하게 웃는 모녀의 모습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느낀다. 사진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모녀의 모습이 시간으로 건너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미소가 빈 오선지 위에 그려져 소리가 들린다. (글. 사진/장터사진가 정영신)
김수오 작가 | 웬만한 산보다 높은 해발 1700미터 윗세오름.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을 아우르는 통칭으로 '위에 있는 세 오름'이라는 뜻이다. 윗세오름 1700미터가 넘는 곳에는 '밭'이 있다. 선작지왓이라는 자갈밭이다. 제주 말로, 작지는 자갈이고 왓은 밭이다. 눈이 오면 대평원처럼 보인다. 선작지왓은 봄이면 산진달래로 장관이다. 초록의 누운향나무, 백리향, 시로미 등이 산진달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추울 수록 더욱 기대되는 봄!
곰방대하나로 장터바닥을 지휘하던 야채 파는 할매는 내 동무였다. 장(場)에 왔다는 신고를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다 마주치면 긴 곰방대가 여지없이 내 등짝을 내리쳤었다. 영동장에 가면 삼각대와 카메라 가방을 맡겨놓고, 점심도 한 숫가락씩 나눠 먹고, 막걸리 한 사발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할매와 나는 해가 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놀았었다. 허나, 지금은 사진만이 남아 곰방대할매와 나의 시간은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처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준다. 1991년 어느 장날 오후, 바람이 일어 배춧잎 하나가 팔랑거리는 풍경을 놓치지 않았던 그날 처럼, 수직으로 흘러내린 한겨울의 햇살이 내 창가에 내려와 앉는다. 오늘 할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두고 온 내 고향 언저리처럼 서럽다. (글.사진/장터사진가 정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