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미국의 대표 뮤지션 테일러 스위프트가 초창기 앨범을 모두 다시 녹음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벌여 음반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테일러가 이런 일을 한 이유는, 초기에 발매한 6개 앨범의 노래에 대한 권한을 온전히 자신이 갖고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작권법상, 제작사가 만든 앨범에 대한 권한은 제작사에게 있다. 테일러가 이 권한을 넘겨받지 못하게 되자 직접 새로이 앨범을 만들어 유통함으로써 기존 앨범을 무력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테일러는 만 15세의 무명가수였던 2005년 중소음반제작사였던 빅머신레코드와 13년 장기계약을 했다. 이 때 초창기 앨범의 마스터권, 즉 음반제작자의 권리가 빅머신레코드에게 넘어갔다. 2018년 계약 만료를 몇 년 앞두고 테일러가 마스터권을 사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협상이 결렬됐다.
2016년, 빅머신레코드가 3억 달러에 매각되면서 마스터권은 스쿠터 브라운의 이타카홀딩스에 인수되었고, 2020년에는 사모펀드 회사로 다시 매각되었다. 테일러는 자신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손에 자신의 노래가 팔려다니는 것에 매우 상심하였다. 이에 재녹음을 결행한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재녹음 사례가 있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당시에는 재발매된 앨범을 유통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반이 아닌 음원의 형태로 유통되는 요즘 시대가 테일러의 손을 들어주었다. 팬들이 아티스트의 요구에 따라 과거의 음원을 지우고 새로 발매된 음원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의 반란은 현재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다. 2022년에 그녀의 앨범 Red and Fearless에 실린 'Taylor's Version'은 빅머신레코드의 기존 스트리밍 수를 능가했다. Fearless의 경우 빅머신 버전은 6억 8000만번 스트리밍된 반면, 그녀의 새 버전은 14억 7000만번 스트리밍됐다. Red의 경우 빅머신 버전은 4억 7600만번 스트리밍된 방면, 그녀의 새 버전은 28억 6600만번으로 여섯 배 이상 스트리밍되었다.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신의 노래에 대하여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이렇게 재녹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음반제작사들도 변화된 환경에 따라 대안을 마련했다. 발매된 앨범에 수록된 곡을 최대 20~30년 내에는 재발매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계약서에 추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티스트의 '자유'를 제한하는 듯한 이런 규정이 저작권법에 저촉되지는 않을까? 법리적으로는, 사인간에 합의된 계약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저촉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재녹음이 시장에서 흥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테일러는 자기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현재 누리고 있는 엄청난 인기와 음악유통 구조의 변화 덕분에 이 예외적인 일을 해낸 것이다.
테일러의 재녹음 사태는 아티스트의 입장을 무시한 채 마스터권이 판매되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에 대한 갑론을박을 불러왔다. 법률적으로 마스터권의 판매는 재산권 행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이 아티스트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저작물은 기술이나 제품과 다른 측면이 있다보니 절차 상에 갈등이 일어나면 문제가 커지곤 한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테일러의 행동이 아티스트의 권리를 높이고 제작사에 한방 먹인 혁명적인 행동이라고 칭송받는 한편, 절대적으로 우월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무력화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있다.
음반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기여가 필요...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가수 혼자서 하긴 불가능... 특히 신인 가수...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 못하니까... (이번 사태가) 좋게 작용할거같지가 않음... 무조건적으로 가수에게 권리가 가게 되면 그에 따른 부담도 가수 책임... 영화사나 TV제작사나 음반사들 다 저런 판권, 마스터를 소유함으로써 오는 장기수익으로 회사 유지... 직원들 돈주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거... 가수에게 마스터권 줘야지 안주면 나쁘다 하는 거 황당... - 온라인 커뮤니티의 댓글들
하지만 테일러가 마스터권을 사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에 소속사가 테일러에게 넘기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하필이면 그와 가장 사이가 나쁜 사람에게 마스터권을 매각했다면 문제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마스터권을 자기가 사고싶다고 (밝혔는데)... 여기(마스터권을 가진 소속사빅머신)서 12집까지 내라 아니면 안 판다... (테일러는 마스터권 포기하고 계약만료 뒤) 소속사 옮김... (테일러에 의하면, 가수이자 구매희망자였던 본인에게 구매 의사 확인 없이) 스쿠터에게 판매됨... 테일러 실망... - 온라인 커뮤니티의 댓글들
과거에도 마스터권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다. 소속사가 마스터권을 타사로 넘길 경우 가수들이 복잡한 상황에 처하면서 정산을 받기 어렵게 되는 등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파스텔뮤직의 심규선과 차세정도 이 문제로 두 번이나 소송을 하였는데, 법원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뮤지션이 소속사에 요청한 해지 정산금도 정당한 수입으로 인정하는 한편, 제작사가 마스터권을 거래하는 것 또한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가수가 마스터권을 인정받으려면 제작 과정에서 명백한 기여가 있어야 한다. 김창완의 경우에는 음반 제작과정을 주도하고 제작비의 90%를 냈기 때문에 나중에 재판을 통해 마스터권 소유를 인정받았다. 혹은 계약 단계에서 아예 마스터권을 확보해야 한다. 프린스, 제이지, U2, 메탈리카, 스티비원더, 리한나 등은 본인 노래에 대한 마스터권을 모두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는 극히 드문 케이스이다.
마스터권을 가진 폴매카트니의 경우 비틀즈 시절에 본인이 만든 노래에 대한 권리는 없다. 비틀즈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단독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가수는 자신이 만든 노래일지라도 제작사가 만든 MR 등을 무단으로 이용해 공연할 수 없다. 노래에 대한 권리는 있어도 MR에 대한 권리가 가수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작재산권 행사 대상은 저작인격권에 포함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하지만 감정은 어디에나 묻어 있기 때문에 마스터권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 없는 마스터권의 거래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