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오 작가 | 여러 개의 분화구로 이루어진 용눈이 오름, 제주 동쪽에서 가장높은 오름이다. 사진가 김영갑을 사로잡은 흘러내리는 곡선미. 그는 여기서 평화로움과 이상세계를 봤다고 한다.
김수오 작가 | 제주 동쪽 바다를 품고 봄에는 철쭉, 가을엔 억새로 꾸며져... 아름답기로도, 높이로도 손꼽히는 다랑쉬 오름. 그 옆에 사이좋게 붙어 있는 자그마한 오름, 아끈다랑쉬. 석양에 4·3의 원혼들을 부르는 듯, 다랑쉬굴 가는 길가 붉은 만장만 깃발처럼 휘날린다. 작가의 말 : 4·3때 해안마을 사람들이 다랑쉬굴 속에 피신해 있다가 토벌대에게 발각되어 굴속에서 모두 질식사하였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1992년, 당시 같이 피신했다 살아난 마을분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국은 이 때 발견된 유골을 모두 화장해 유족들이 배를 타고 나가 직접 바다에 뿌리도록 압박했다. 제주 4·3평화공원에는 당시 굴속에서 발견된 엄마와 아이들 등 십여구의 백골이 '재현'되어 있다. 나중에 유족들은, 뼈조각 하나라도 남겨두었으면 무덤이라도 만들어주었을텐데 수십 년 굴속에 갇혀있다가 햇볕을 보자마자 다시 수장되었다고 안타까와했다. 마지막 사진은, 올해 4월 다랑쉬굴 30주기를 맞아 원혼을 위무하기 위해 위령제와 위령돌탑을 쌓는 행사를 했고 이를 위해 다랑쉬굴 가는길에 걸린 만장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김수오 작가 | 예상치 못한 비극에 힘든 주말이었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피우지도 못하고 져버린 젊음을 또 이렇게나 많이 보태고 말았습니다. 제주 일만 팔천여 신 가운데 동쪽 신들의 본향인 송당 당오름에서,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수오 작가 |
김수오 작가 | 굼부리 안 삼나무숲 품은 아부오름 (편집자주) 굼부리는 구멍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분화구를 말한다.
김수오 사진 | 별이 빛나는 밤, 아부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과 오름.
김수오 사진, 영상 | 비가 온다. 바람이 분다. 태풍이 온다. 가느다란 다리로 우뚝 서고 여윈 몸으로 버틴다. 난생 처음 보는 혼돈 속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건 엄마들이 지켜주니까 방패처럼 기둥처럼, 엄마들이 지켜주니까
김수오 사진, 영상 | 여러 해 지켜보았다. 들판의 삶은 어떠한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혹독한 추위에 눈보라까지 휘몰아쳐도 꿋꿋하게 서서 새끼를 낳아 키우고 다시 새끼를 낳아 종족을 번식하고 삶을 유지한다. 병들고 늙고, 그제야 바닥에 몸을 누인다. 한여름에, 혹은 한겨울에 쓰러진 말은 속도만 다를 뿐 서서히 자연에 몸을 내주고 쓰러진 그 몸 위에 다른 생명이 잉태된다. 신들의 땅, 혹독하지만 아름답고 빈 몸이지만 강인한 삶. 그렇게 삶이 계속된다.
김수오 사진, 영상 | 해가 뜨는 걸까 지는 걸까. 지형으로만 구분할 수 있다. 지금은 해가 뜨는 중, 하루 중 가장 시원한 시간. 한라산에서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붉은 햇살을 배경으로 말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느리지만 탄력있는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그렇게 밤새 한 자세로 있던 몸을 푼다. 서로의 등을 만져준다.
김수오 사진, 영상 | 태어난 지 한 달 된 망아지, 엄마가 밥 먹는 동안 엄마 곁을 지킵니다. 실컷 뛰어논 뒤라 잠이 쏟아지지만, 한라산 배경으로 엄마처럼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아이고 안되겄네... 결국 누워버렸어요. 죽은 듯이 잠든 아기 망아지. 엄마 곁이라 맘 놓고 깊은 잠이 들었어요. 푹 쉬고 실컷 놀고, 그렇게 어른이 될 준비를 합니다. 내가 어른이 될 무렵에도 제주가 제주답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