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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나무의 쓴 맛을 즐길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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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북구 매곡동 마동마을 소태나무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음식의 간이 맞지 않아 매우 짜거나 쓴맛이 나면 흔히 ‘소태맛’이라고 한다.

 

쓴맛은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맛이라 안전을 위해서도 사용한다. 유아들이 삼키기 쉬운 크기가 작은 장난감이나 마시면 위험한 부동액이나 농약 등에는 강한 쓴맛을 느끼게 하는 비트렉스(Bitrex)라는 물질이 첨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이 쓴맛에 대해 거부반응이 커서 어른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아이들이 알칼로이드를 함유한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가 다 있다. 쓴맛 수용체가 어른보다 7배 정도 더 많아 알칼로이드 쓴맛이 약해도 아이들에게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쓴 약을 먹일 때는 한판 전쟁을 치르고, 사탕은 보상이다.

 

 

소태나무 껍질은 아주 쓴맛이 강하다. 소태나무는 한자로 고수(苦樹), 고목(苦木) 등이다. 그 맛을 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소의 태(胎)가 쓴맛이 강하다는 데에서 소태나무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소의 태반이나 탯줄은 그저 물컹하고 질기기만 할 뿐 별다른 맛이 나지 않는다. 혹 쓸개라면 모를까. 실제로 중국의 소태나무 별칭 가운데 하나가 웅담수(熊膽樹)다.

 

예전에는 따로 간식을 만들어 먹일 시간이 없으니 아이들이 젖을 오래 먹었다. 고집스런 나이가 되었을 때 아이 젖을 떼게 되니 소태나무를  발랐고 그것이 없으면 실제 동물 쓸개를 이용하곤 했다. 어릴 적 배신의 감정을 처음 느낀 생생한 기억이 그 쓴맛에 놀라 있을 때 옆에서 웃던 누이의 모습이었다.

 

전국적으로 소태나무 노거수는 많지 않다. 그나마 나이 수백 살 먹은 노거수로, 안동시 길안면 ‘송사동 소태나무’(천연기념물 제174호, 400년)와 울산시 북구 매곡동 마동마을 소태나무(350년) 정도다. 대구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에 수령 200년 정도의 소태나무가 있는 정도다.

 

이 나무들이 오늘날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성시 여기는 당산나무였기 때문이다. 매곡동 소태나무는 당산숲 앞쪽에 보호수지정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지정번호 12-33. 지정일자 2000년 12월30일. 수종 소태나무. 수고 12m. 수령 350년. 나무둘레 3.87m(흉고 1.28m). 소재지 북구 매곡동 209번지(마동마을)'로 돼 있다.
 

 

마동마을 소태나무는 이제 아파트단지에 둘러싸여 폐기물 처리 공장이 들어서는 쇠락해가는 전통마을 변방에 있다.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지 소태나무 주변은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오랜 풍상을 견뎌온 굴곡진 모습 자체가 위안과 감동을 준다. 마동마을 소태나무는 건강한 편이었다. 

 

 

매곡동(梅谷洞)은 매화가 가득한 골짜기란 뜻이니 운치가 뛰어난 이름이다. 본래 조선 때 풍수지리의 대가 성지(性智) 스님이 땅의 형상이 '매화가지를 드리운' 형국인 '매화낙지(梅花落枝)'의 명당이라고 하면서부터 매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괴목(槐木)인 회화나무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괴정(槐亭)과 신기(新基)와 매곡(梅谷)과 마동(麻洞) 등 네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동마을은 처음에는 인삼(人蔘)을 재배했기에 삼밭(蔘田)이라고 불리었다. 그 뒤 삼밭(麻田)으로 바뀌면서 삼(麻)이 마(麻)이므로, 마을 이름도 마동(麻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역사와 흔적은 이제 수령 350년의 소태나무만이 지켜갈 것 같다.

 

 

단방신편이라는 의서에는 산에서 독사에 물리면 곧바로 소태나무 껍질을 벗겨 물린 부위에 붙여 응급 처치를 하라는 처방이 나온다. 소태나무의 주요 효능 중 하나가 바로 해독이다. 우리 선조들은 짚신이나 미투리를 삼을 때 소태껍질을 흔히 썼다. 비상약을 일상용품으로 항상 구비하는 지혜로움이다.

 

 

‘달면 먹고 쓰면 뱉는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사람도 마지막에 원하는 맛은 단맛일 것이다. 노후에 그 단맛을 즐기기 위해 오랫동안 쓴맛을 견디고 가는지 모른다.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중년이 지나면 쓴맛에 대한 감수성이 차차 낮아지고 쓴 커피나 쓴 소주도 더 즐기게 된다.

 

인생의 참맛은 지난 역경을 돌이켜 보며 음미하는 그 쓴맛에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