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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예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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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수많은 사건사고들 속에서 혹시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이태원 참사 133일째이다. 132일째였던 어제 3월 9일에 서울시청앞 시민분향소 앞에서 '예술행동' 토론회가 열렸다. 사회적 참사를 가장 먼저 느끼고 가장 늦게까지 기억하는 예술인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그동안의 예술행동을 돌아보는 자리였다.

 

예술인들이 이태원 참사에 나서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던 이유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상황실 김지호 행사기획팀장은,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 대응을 복기했다. 시신을 원효로 다목적실내체육시설에 안치하겠다는 당초 결정을 뒤집어 경기도 등지로 분산하고, 추모계획 등을 세우기도 전에 공무원들이 유족에게 장례를 종용하고,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를 압수수색하고 명단유출자를 적발하는 분위기에서 예술인들이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최성범 서울용산소방서장은 30일 오전 2시 45분 진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현장에 안치된 사망자는 원효로 다목적실내체육시설로 옮겨서 신원확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전 3시에 체육관에 안치됐던 시신은 그날 새벽 6시경부터 수도권 각지의 병원 영안실로 무작위로 분산 이송되었다. 신원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산 이동되면서 유족들은 더욱 혼란을 겪었다. 

 

사고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사고 수습 과정은 지나치게 미흡했다. 분산 이송이나 장례 종용 등에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기 위해 희생자 명단 공개를 추진하였고, 추진 과정에서 희생 당사자인 유족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소홀했다. 이로 인해 명단 공개를 놓고 여론이 대립하자 정부는 언론사를 고발하고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온 국민이 함께 침몰 과정을 지켜보고 애도했던 세월호 참사와 큰 차이를 만들었다. 국민은 물론 예술인에게도 혼란을 주었고 '예술행동'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49재를 계기로 시작된 민간주도 추모

 

49재를 앞두고 피해자 158명 중 97명의 유가족이 모여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49재를 이틀 앞둔 12월 14일, 이태원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국가애도기간 등 국가주도로 진행됐던 추모가 끝나갈 무렵, 민간주도의 추모가 처음으로 '조직화'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를 쓰고 소규모로 추모전시회와 음악회를 하던 예술인들도 연대했다. 39명의 화가, 문인들이 모여 2월 1일부터 16일까지 <못다 핀 청춘 10.29 이태원 참사 넋기림전>를 열었다. 참사 100일이 되던 2월 5일에는 한국무용가 김서정씨가 전시장 각 층을 돌며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넋기림춤으로 유족과 만났다.  

 

토론자로 참여한 전비담 시인은, 전시를 지켜본 유족들의 말을 전했다. 살아남은 딸아이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이 아니라 '너라도 살아남아줘서 고마워'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159명의 청년 옆에는 슬퍼하는 가족들이 318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던, 희생된 아이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기억할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던, 그 말들이다. 

 

전시는 유족과 관람객에게 위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엄청난 충격과 아픔과 울음을 홀로 직면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동료 작가들과 함께함으로써 위무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작품은 작품의 색과 형상, 상징을 통해 기록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기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넋기림 전을 시작으로, 예술행동도 다양화 조직화 예정

 

넋기림전을 기획한 아르떼 예술숲 정요섭 대표는 참사를 이용해 개인이나 단체의 공명심을 채우려는 것과 정부의 탄압을 가장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몇몇 작품은 반려해야 했고, 다행히 정부의 간섭은 없었다. 그는 이 전시가 "이태원 참사 추념과 문제제기의 발원지가 되고 마중물이 되어 또 다른 예술운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전시 이후에는 100여명의 필진으로 구성된 공동시집 발간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장르화되면서 교류가 없어진 장르간 소통을 위해 동일한 사회적 의제를 놓고 서로 묻고 답하는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참사에 대하여 같은 입장을 가진 장르간 연대, 의식의 연대를 위해서다. 또한 억눌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담아 실제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보이스볼>이라는 설치미술도 구상중이다. 

 

김태현 컬처75 이사장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충격적인 대응으로 인한 무력감과 패배감에서 (예술인들이) 벗어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더 많은 행동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다짐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그 시작점이 넋기림전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제 참사로 희생된 사람 한 명 한 명을 시민들이 알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159명의 희생자 기리는 릴레이 콘서트와 추모예술행동 준비

 

2월 4일 시청앞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가 만들어졌다. 이틀 뒤인 2월 6일부터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이곳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려 왔다. 참사대책위원회는 참사 159일이 되는 4월 5일에 추모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예술인 159명이 희생자 159명 하나하나를 기억하도록 하는 릴레이콘서트로 진행될 수 있게 추진 중이다. 

 

이에 앞서 3월 29일 문화예술인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예술행동(가칭)>을 출범할 예정이다.  이번 토론도 이들이 주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