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미술에 장소특정미술이 있다면 공연에도 장소특정공연, 인시추(In-Situ)라는 것이 있다. 작품이 창작된 특정 위치에서만 완전한 의미를 가지며, 그곳과의 상호작용에서 예술 작품이나 예술적 표현이 더 깊은 의미를 얻는 종류의 작품을 말한다. 공연의 경우 출연자의 상황이나 경험, 내면 상태 또한 환경의 일부로서 작품에 포함된다.
지난 10월 24일 개관한 장애인 표준 극장인 모두예술극장에서 이런 장소 특정 예술인 <제자리>가 막을 올린다. 짐작하듯 이 공연은, 출연자들의 상황과 내면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정식 공연 하루 전 드레스 리허설을 언론에 공개했는데, 기대 이상의 감동과 완성도로 장애예술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리허설 뒤 기자간담회 중이다. 왼쪽부터 프로덕션 매니저 엠마뉴엘 파올레티, 예술 감독 및 연출 미셸 슈와이저, 통역 장유경, 협력 연출 지아니 그레고리 포네, 그리고 이 공연의 실질적 진행을 총괄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오세형 단장.](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133196_90d2cc.jpg)
공연은 지난해부터 준비되었다. 장애를 가진 출연자가 필요했다. 출연자 공모에 30명 정도가 지원했는데, 응모한 사람 대다수는 비장애인이었다. 결국 장애를 가진 지원자는 거의 다 발탁됐다. 그렇게 장애인 5명 비장애인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만들어졌다.
![공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자 마지막 장면.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이 외치거나 읖조린 대사와 몸짓은 모두 여기로 향한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177862_76b3b1.jpg)
출연자들은 프랑스에서 날아온 연출팀과 총 4번의 워크숍을 통해 팀웍을 다지고 공연의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미셸감독은 순간의 경험과 이를 통해 삶의 강력함을 느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이번 공연에 참석한 배우들이 인간적, 문화적, 예술적 경험을 하면서 서로 '관계맺기'를 기대했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자신과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고, 이를 바탕으로 협업했다.
![무대의 시작. 가운데 서 있는 이승규 배우의 비밀(?)이 마지막에 밝혀져 모두를 놀라게 한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943426_edb86c.jpg)
![뜬금없는 방식으로 등장한 류원선 배우. 20대에 연극을 하다가 몸이 아파 그만두어야 했다고 한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916603_d257a3.jpg)
![그의 등장은 극에 위트를 더하면서 몽글몽글 커지는 궁금증과 함께 관객을 공연 속으로 완전히 끌어들인다.](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897406_8e8350.jpg)
![예술 전공 대학생 박채린 배우와 드림온아트센터에서 발달장애인 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박기자 배우의 듀엣이 활기를 불어넣는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878567_7f9f33.jpg)
![사진작가인 이민희 배우는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무대 뒤 배경을 생산하여 역동성을 더해준다.](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861371_2cab47.jpg)
!["별들은 서로 닿지 않지만 서로를 끌어당겨. 중력때문에. 나는 여기서도 그랬으면 했어. 어린아이가 아무 근심 없이 앞에 있는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 채린의 대사 중에서](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774038_23a2a1.jpg)
![드림온아트센터의 무용수 이정민 배우. 그는 '그들의 정원'을 향해 팔을 벌리고 다가서고 있다. "내가 팔을 벌리면 내 손은 더 이상 고아가 아니야. 너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지... 지금 난... 자리를 잡을 거야 이곳에 자리잡을 거야...너희가 여기 있으니까." - 정민의 대사 중에서.](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685198_c62079.jpg)
![판소리에 관심이 많은 연극배우 김혜린 배우. 판소리를 가미하여 자장가인듯 아니리인 듯 때론 진지하게 때론 코믹하게 독특한 가락의 대사를 선보였다. 세뇌라도 하듯이 "처음 보는 그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마... 그들은 거기 네 앞에 있어... 너에 대해 고요히 생각하는 친구들로서..."를 여러 번 반복했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663076_7ac0cd.jpg)
![이들의 듀엣으로 공연은 절정을 향해 간다. 경쾌하게 발맞춰 달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마이크를 가져다 준다.](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580595_7d414a.jpg)
![프리랜서 비보이 김완혁의 등장. 사고로 다리를 잃었고 이를 계기로 고등학생 때 포기한 비보잉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한발 비보이 또는 곰이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져 있는 유튜버이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50093_328941.jpg)
![캐스트를 베고 누워있던 완혁은 아쟁 연주자 정지윤 배우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난 은하수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지, 하지만 은하수의 움직임이 특별하다는 건 알아." --- 지윤의 대사 중에서](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338728_de5ae2.jpg)
![완혁의 격렬한 춤이 끝났다. "완혁, 넌 제대로 숨쉬는 걸 잊었어. 네 호흡을 무시했어." --- 기자의 대사 중에서](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242383_19f306.jpg)
![공연은 완혁의 몸에 새긴 문구를 보여주면서 끝난다. "살아있어 소중하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220297_232ef1.jpg)
!['In-Suit'를 우리말 '제자리'로 번역한 것이 곧 이번 공연의 제목이다. 제자리의 사전적 정의는 본래 있던 자리, 위치 변화가 없는 같은 자리,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이다.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개인의 취향에서부터 '나'라는 사람의 기원, 즉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http://www.news-art.co.kr/data/photos/20231147/art_17007905157403_540914.jpg)
이제 기사 처음에 언급한 이승규 배우의 비밀(?)을 밝힐 때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공연 뒤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승규 배우가 시각장애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내용 이해가 쉽지 않았겠냐는 질문이 나왔다. 연출은 맞는 지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기자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볼 수 있었고, 시각장애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놀랍고 감동적이었다고 하였다.
장애예술은 장애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대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처럼 연기할 수 있는 곳이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이번 무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런 구분이 필요없을 정도로 모두가 섞이고 모든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In-Suit', 모두 제자리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무대는 세상에서 벗어난 공간입니다. 모두가 잘 보이고 서로를 잘 들을 수 있어요. 우리는 오디션에 실패하지 않은 것 같네요. 저는 배우 하나하나의 빛남을,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고자 했어요. 배우들은 연령, 장애여부, 예술적 경험 면에서도 모두 매우 다르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우리 제안을 신뢰하고 받아들였어요. --- 미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