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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와 텃밭킬러, 서울연극센터축제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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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서울연극센터축제가 시작됐다. 서울연극축제와 별개로, 대학로의 '서울연극센터'라는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의미의 축제이다. 8월 1일 오후 3시 첫 번째 시크릿 공연을 시작으로 4일간 축제가 열린다. 시크릿 공연은 직접 와서 봐야만 알 수 있는 랜덤박스와 같은 공연이다. 누가 무엇을 보여줄 지 아무도 모른다. 시크릿 공연만큼은 사전 예약도 필요 없다.

 

 

 

첫 번째  시크릿 공연의 주인공은 유한솔 안무가였다. 그는 서울 찍! 연극 찍! 센터 찍!이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한솔씨에 의하면 찍(영어로 표기하자면, Jjig)은, 줄이나 획을 세게 한 번 긋는 소리, 종이나 천 따위를 세게 찢는 소리, 액체가 가는 줄기로 세게 뻗치는 소리, 물체가 세게 문질리며 미끄러지는 소리, 새 따위가 우는 소리를 말한다고 한다. 

 

 

 

 

실내에서 줄을 긋고 천을 찢는 퍼포먼스가 벌어진 뒤에 퍼포머는 실외로 나가버린다. 한솔씨는 도로 갓길의 노란 선을 따라가는 듯 하더니 차선을 가로질러 중앙선으로 옮겨갔고 빨간 바지의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이 퍼포머는 중앙선을 따라가며 계속 기웃거린다.

 

관객과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이 모두 당황했지만, 그 천연덕스러움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찍-찍-찍-찍거리는 소리는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계속 뛰어다니는 퍼포머를 지켜보던 관객은, 마치 도시에 나타난 고라니같다고 한다. 그렇다 정말 비슷한 경험이다. 의외성이 주는 자유와 호기심.

 

이 퍼포먼스가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즐거운 마음일 수 있었던 것은, 도심 속에 나타난 이 고라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교통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뛰었다는 것. 

 

 

돌아온 고라니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고라니가 다시 둘러맨 배낭에는 초고추장이 수줍게 꽂혀 있다. 오늘 이것도 찍찍 뿌려보려 했다는데, 고라니가 너무 잘 뛰어 관객과 멀어졌고 날도 무더워 깜빡한 것일까? 혹은 정말 수줍었을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이 더위에 고추장 세례를 받았다면, 신고가 세게 들어갔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고라니가 도로로 뛰어들던, 신호를 기다리던 트럭위에 올라타던. (신기하게도) 중앙선을 따라 달리던, 혹은 도로를 가로지르던, 고라니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솔씨는 무대위에서는 현실처럼 하는 연기지만, 무대 밖으로 나가면 연기가 곧 현실인 상황을 보여주고자 하였다고 한다. 

 

 

 

 

잠시 휴식 뒤 오후 4시에는, 사전 예매자들을 대상으로 낭독극 <텃밭 킬러>가 공연되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라니와 텃밭킬러라니, 오늘 공연이 묘하게 연결된다.

 

할머니(골륨)가 이웃들의 텃밭을 서리하여 가족을 먹여살리지만 가족들은 각각의 이유로 할머니 금니 세 개를 노린다. 할머니 역을 맡은 황미영 배우의 맛깔진 연기가 그저 우연히 방문했을 뿐인 사람들의 발길도 잡을 정도다. 말이 낭독극이지 한 편을 모두 야무지게 관람할 수 있었다. 

 

 

 


아쉬움도 있다. 관객의 몰입을 필요로 하는 연극공연이 개방공간에서 행해지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낮 공연의 경우 빛이 전혀 차단되지 않고. 병행 공연 준비 데스크가 무대 옆에 있어서 여기서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음까지 섞이면서 객석 주변이 너무 산만했다는 것. 관객은 물론, 연기자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다른 배치와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싶다. 


이날 병행 공연은 5시부터 30분 간격으로 행해진 ‘(먼)미래무용’이 있었다. 헤드셋을 통해 무용을 ‘듣는’ 경험으로 관객의 상상을 확장하는 공연이었다. 비장애인은 물론 시각장애인 무용가도 참여하여 서울연극센터 곳곳에 자리잡고 듣는 무용에 몰입했다. 

 

 

그밖에 5시 이상한 나라의 홈리스, 6시 놀이터에서, 7시 낙타, 8시 반 태양관측 등의 공연과 워크숍들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많고 동시에 진행되는 것도 있으니 방문해서 문의해도 좋다.

 

나흘간 계속되는 서울연극축제 티켓은 시작 전부터 전석 매진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입석 혹은 빈 좌석을 이용해 즐길 수 있다. 개방 공간에서 자유와 즐거움. 그리고 사소한 모험을 맛보며 여름을 잘 견뎌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