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인디 록 씬을 빛내온 싱어송라이터 자이(JAI)가 7년간의 침묵을 깨고 정규 앨범 'Golden Hour'를 발매했다. 전설적인 여성 록밴드 '헤디마마'의 리더이자 보컬·베이시스트로 1990년대 말부터 25년간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자이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여정의 절정을 담아냈다.
'Golden Hour'라는 앨범명은 사진 용어에서 빌려온 것으로, 일출과 일몰 무렵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을 의미한다. "음악이란 결국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예요.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때로는 카타르시스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이는 말한다. 그녀에게 이 앨범은 음악적 경험과 기술, 예술적 영감이 모두 정점에 이른 시기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앨범이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프로젝트 관리 아래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75명의 후원자가 참여한 펀딩은 목표액의 115%인 8,101,000원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뮤지션과 리스너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상업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 환경에서 완성도 높은 앨범이 탄생할 수 있었다.
록과 재즈, 포크,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5곡의 트랙은 자이 특유의 허스키하면서도 표현력 풍부한 보컬로 하나의 일관된 서사를 형성한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너의 데이트'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깊이 있는 가사가 어우러진 포크 넘버로, 첫사랑의 설렘과 짝사랑의 아픔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어제 넌 분명 구멍 난 셔츠였는데/오늘은 새로 산 옷을 입고/새 구두도 신었구나"로 시작하는 가사는 타인의 설렘을 포착하는 관찰자의 시선과, 마음을 전하지 못한 화자의 후회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곡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이와 데이트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서운함과 자책감을 표현했어요. '아니 사실 내가 모지리였네'라는 마지막 가사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소심함을 탓하는 마음도 담겨 있죠"라고 자이는 곡에 담긴 이야기를 전했다.
두 번째 트랙 'Fever'는 자이가 가장 오래 품어온 곡으로, 부드러운 보사노바 리듬 위에 자이 특유의 폭발적인 보컬이 어우러진다. "가장 초창기에 만든 곡이고, 저에게는 새로운 실험 같은 음악이었어요. 록을 하다가 재즈 방향으로 간 첫 곡이었기 때문에 오래 품을 수밖에 없었고, 새롭게 접근하고 싶었어요"라고 자이는 설명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보컬의 열기가 곡의 제목처럼 청자들의 마음에 뜨거운 열병을 전한다.
'오늘 이 밤을'은 경쾌하면서도 깊은 사운드가 돋보이는 스윙 곡이다. "비싼 위스키를 남김없이 비운 난 그저 웃고 걸어갈 뿐"이라는 가사처럼, 한 밤의 은밀한 설렘과 망설임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했다. 피아노, 베이스, 기타로 구성된 재즈 트리오 사운드와 자이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만나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때늦은 옛 이야기'는 앨범의 정점을 찍는 자이의 자전적 발라드다. 25년간의 음악 여정에서 마주한 순간들, 잊지 못할 만남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다이내믹한 전개가 인상적인데, 특히 "이제와 사랑이라 말해봐야/때늦은 옛 이야기"라는 구절에서 폭발하는 자이의 보컬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때늦은 옛 이야기'는 제가 음악을 떠나고 싶었던 시기,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쓴 곡이에요. 그때는 음악이라는 사랑에게서 이별을 고하는 노래였는데, 지금 이렇게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 이 곡을 완성하게 되니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집니다"라고 자이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지막 트랙인 '너의 데이트(피아노 버전)'는 피아니스트 이보람의 섬세한 편곡으로 원곡과는 또 다른 쓸쓸한 정서를 담아내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특히 피아노 버전에서는 짝사랑의 아린 감정이 한층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Golden Hour'는 자이와 국내 음악계 정상급 연주자들의 시너지가 돋보이는 앨범이다.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 박찬울은 자이의 음악적 비전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섬세한 사운드 메이킹과 탄탄한 편곡으로 앨범 전반의 완성도를 높였다. 재즈 피아니스트 이보람의 감성적인 터치, 베이시스트 정수민의 그루비한 베이스 라인, 드러머 권낙주의 안정감 있는 드럼 연주는 자이의 보컬에 풍부한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저는 곡을 쓸 때 사람과 관련된 마음,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나의 무엇을 봤을 때 내가 느껴지는 것들, 그리고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마음들... 그런 것들이 느껴질 때 멜로디가 나오고, 그 마음을 내 것으로 흡수해서 만들어요"라고 자이는 자신의 작곡 과정을 설명했다.
특히 이번 앨범은 연주자들 간의 직접적인 대면 세션보다는 현대적 방식의 분업과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정말 요즘 스타일로 작업했어요. 함께 모여서 합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파트를 녹음하고 취합하는 방식으로요. 사이버상에서 주고받다가 합주할 때 오랜만에 만났는데, 역시 얼굴 보며 연주할 때 오는 시너지가 훨씬 좋았어요"라고 자이는 녹음 과정을 회상했다.
1990년대 말 '헤디마마'로 데뷔한 자이는 독보적인 음색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인디 록 신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장필순의 "어느새"를 밴드만의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재해석해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홍대 인디 씬에서 여성 록 밴드는 드물었고, 그 중에서도 헤디마마는 강렬한 에너지와 음악적 완성도로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다.
"흥분됐죠.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넘쳤어요. 그때는 음악도, 세상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라고 자이는 밴드 활동 초기를 회상했다.
헤디마마 시절과 지금의 음악적 차이에 대해 자이는 "헤디마마 활동 당시에는 '이것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음악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 이제 그만하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다른 친구들은 모바일트랩을 하거나 아예 음악을 그만두기도 했죠. 저는 솔로로 조이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자이라는 이름으로 그 연장선을 이어가면서 조금 더 정적인 음악을 하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밴드 리더로서의 경험이 자이의 음악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가 리더였고, 초반에는 매니저도 되고 기획자도 되어야 했어요. 세 명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하는 일은 결혼 생활과도 같았죠. 중재자도 돼야 하고, 때로는 고집도 부려야 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강렬하고 직설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표현 방식은 세월이 흐르며 더욱 절제되고 감성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직설적이었어요. 둘러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바로 '너 왜 나 때렸어?'라고 하는 식이었죠. 리프도 직선적으로 '징'하고 내질렀어요. '네가 틀렸어'라고 단정하던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생각할 때는 네가 틀린 것 같지만, 너한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식으로 표현이 바뀐 것 같아요"라고 자이는 자신의 음악적 성숙 과정을 설명했다.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이는 한 번도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저버린 적이 없다. 상업적 성공보다는 진정성 있는 음악을 추구했고, 그 결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앨범은 정리와 시작을 동시에 가능하게 해주는 작업이에요. 늘 정리가 안 됐던 것들, 버릴 것은 버리고 가질 것은 가지면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계기를 만들어준 앨범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그녀는 'Golden Hour'의 의미를 설명했다.
딥그린과 골드 컬러를 기조로 한 스페셜 패키지로 제작된 앨범은 오와오와스튜디오의 김한샘 디자이너의 작업으로, 앨범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한정판으로 제작된 CD는 12페이지 가사집을 포함하여 500장 한정으로 제작되었다.
자이의 'Golden Hour'는 3월 10일 정오, 멜론, 지니, 플로,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주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완성된 이 앨범은 뮤지션과 리스너가 함께 만들어낸 의미 있는 결실로, 상업적 성공보다 음악적 진정성을 추구해온 자이의 25년 여정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간을 담아냈다.
자이는 오는 4월부터는 전국 투어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전국 투어 공연에서는 앨범 수록곡 전곡 라이브 연주는 물론, 헤디마마 시절의 명곡들과 솔로 활동 중 발표한 곡들을 재해석한 특별한 무대도 준비되어 있다.
"저에게 황금빛 시간은 지금이에요.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때로는 상처받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저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어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연결되는 이 순간이 제게는 가장 빛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 앨범에 담았어요"라고 자이는 말했다.
자이의 새 앨범은 장르적 분류보다는 이야기에 중점을 둔 앨범이다. "이 앨범은 어떤 장르의 시선이라기보다 이야기에 중점을 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듣는 분들이 자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에 집중해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그녀의 바람처럼, 'Golden Hour'는 25년간의 음악 여정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 자이의 목소리를 담은 앨범으로, 한국 인디 음악사의 귀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