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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의, 색으로 노래하는 유치찬란한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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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9일까지 사진 대안공간 ‘space22’에서
이게 사진? 60여 년의 매체 실험, 새로운 시각 언어 확립

[기고] 조문호 작가 |

 

사진가 황규태선생의 ‘짝사랑 PiXEL ai PixY’ 전이 4월 29일까지 사진 대안공간 ‘space22’에서 열리고 있다.

 

 

색의 물결로 이루어진 ‘짝사랑’ 픽셀 작품들을 돌아보며 선생의 끊임없는 매체 실험이나 치열한 작가정신에 존경심이 일었다. 사실 생존한 원로사진가 중 선생만큼 열심히 하는 분이 있던가? 다들 기존 작품으로 회고전이나 여는 처지에 따끈따끈한 신작을 펼쳐 보이며 새로운 시각언어를 토해내고 있으니, 분명 아직도 청춘임이 틀림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작업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선생의 자유로운 생활처럼 놀이로 즐긴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렵게 생각하고 힘들게 작업하는 것보다 더 무모한 짓은 없기 때문이다.

 

 

황규태선생의 작가적 역량을 모르는 분이야 없겠지만, 몇 마디 부언할까 한다. 그는 60년대 초반, '경향신문'기자로 시작했으니, 첫 사진은 분명 보도사진인 셈이다. 그러나 신문사특파원으로 미국에 건너가며 실험에 의한 초현실주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머리를 관통하는 총알을 형상화 하는 등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확립한 것이다. 그때부터 필름을 태우거나 합성하거나, 이중 노출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활용하여 메시지에 힘을 보태었다.

 

 

70년대에 보여 준 생태적, 환경적, 문명적인 것에 대한 비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원 풍경’은 생태환경의 변화를 예견한 일종의 경종이었고, 통렬한 비판이었다. 기록성과 고발성에 더해 조형적 회화의 속성까지 띄고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작품 경황은 당시 리얼리즘 사진이나 살롱사진에 한정된 한국사진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비 사진적이란 생각도 들었으나, 마음을 당기는 흡인력은 대단했다. 지구환경과 문명의 위기를 경고하며, 종말적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요즘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런 실험정신 덕에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사진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황선생의 자유롭고 은유적인 작품들을 보면 80년도 ‘현실과 발언’에 참여하며 민중미술의 길을 걸어온 원로 화가 주재환 선생이 연상된다. 패러디의 거장답게 삶의 곳곳을 직시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넘치는 재치도 닮았지만, 그 장난스러운 기발함이 유치찬란한 예술로 승화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개의 작가들이 한 가지 방법에 빠져 작업하다 보면 생소한 옆길로 잘 새지 않지만, 황선생은 달랐다. 60여 년 동안 끊임없는 매체 실험으로 터득한 새로운 기술을 작업 방식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예술적 관심사가 자신의 삶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흔한 주변 삶 속에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노익장의 여유가 만들어 낸 놀이 세계이자 색으로 전달하는 언어인 셈이다.

 

 

색의 물결로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황선생의 '픽셀'작업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으니 20년은 족히 넘었다. '픽셀'은 이미지를 계속 확대하다 보면 이미지가 깨지거나 흐려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선생의 '픽셀'은 선명하고 현란했다. 지난 픽셀 작업이 직선과 사각으로 이뤄진 단순한 형태로 구성되었다면, 이번에 보여주는 픽셀 작업은 구불구불한 곡선과 일렁이는 듯한 파장이 느껴지는 독특한 형태로 진일보했다. 이는 픽셀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작가의 감성을 표출하려는 노력의 결실로 평가된다. ‘짝사랑’이란 제목처럼 유치찬란한 색의 변주 너머에 있는 진지한 사유를 끌어내고 있다. 색과 면의 경계를 파괴하거나 확장해 가며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까지 꿈틀거리게 한다.

 

 

어쩌면 짝사랑이란 제목처럼, 사랑이란 말조차 점차 멀어져 갈 시대 상황을 예견하며 보내는 작가의 안타까운 연애편지인지도 모른다. 마치 체음제처럼 보는 이의 느낌이 포근해지고 뜨거운 연정이 일어나니 이 얼마나 신통한 일이더냐? 비록 짝사랑에 그칠지라도 아름다운 사랑의 꿈에 젖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살맛 나는 세상인가? 기존상식을 희롱하고, 무거운 예술에 야유를 던지는 선생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정신에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이 전시는 강남역 1번 출구에 있는 ‘미진프라자’ 22층의 ‘SPACE22’에서 4월29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