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구 사진전이 지난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가 강재구는 입영 전의 민간인에서부터 머리를 깎은 군인에 이르기까지, 징병제에 따른 군인 시리즈를 20여 년 동안 기록해 왔다. 이등병이라는 전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한구의 ‘군용’ 사진이 군에 갓 입대해 체험적 병영생활을 어렵사리 기록한 사진이라면, 강재구 사진은 군인으로서의 문제점을 다 각도로 형상화해 왔다는 점이 다르다. 강재구 작업은 직업군인보다 의무적 복무를 수행하는 이등병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등병은 막 입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욕구조차 자신의 의지 대로 행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때부터 사람이 아닌, 군바리 취급을 받는 안쓰러운 존재가 되어, 군대가 만들어 낸 틀 안에서 이등병이란 자아 상실을 경험하며 나약해 진다. 카메라 앞에선 긴장된 모습이 마치 박제화된 인간처럼, 모순된 상황을 재현한다 . 그가 징집병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군인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 끌려가 삶을 저당 잡혀 살아야 하는 청년 문화를 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청
기국서 연출의 ‘관객모독’이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지난 7월1일부터 오는 10월10일까지 대학로 아티스탄홀에서 100일 동안의 장기 공연에 들어갔다. 정부 지원금이나 자체 예산으로 마련한 무대가 아니라 기국서 연출의 팬이 기부한 후원금으로 올리는 작품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관객을 모독하는 연극이 관객의 후원으로 살아나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 셈이다. 새로운 후원 문화를 기대할 수 있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객모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스트리아 출생 페트 한트케가 1966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1978년 기국서 연출의 ‘극단76’에 의해 무대에 오른 후 꾸준히 재 공연되어 관객을 모아 온 대표적 레퍼토리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기국서를 일약 천재 연출가로 불리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관객모독’은 관객에게 욕설과 물세례를 퍼붓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인 연극으로, 공연 때마다 화제가 되어왔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중복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거나 목사님 설교 같은 어조나 약장수 같은 상황을 설정하는 등 언어만을 매개로 한 독특한 연극이다. 공연을 처음 접하는 관객은 불편하고 당혹스럽지만, 사람들은 이 작품을
박찬원의 ‘밤과 산, 길’ 사진전이 지난 8월23일부터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동물사진가 박찬원은 못 하는 게 없다. 사진가이자 수필가며 수채화가다. 모두 동물이 주제다.동물을 찍어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찍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동물에 매달려 심층적으로 파고든다.동물을 통해 생명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것이다. 그는 40년 가까이 대기업 임원으로 일했다. 퇴임한 후 8년 전부터 사진을 했으나 오랫동안 마케팅 전문가로 일한 덕인지 사진 접근방식이 치밀하다. 하나의 관심 가는 주제가 정해지면 2년간 100번의 촬영을 진행하여 책과 전시를 만들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동안 말, 돼지, 소 등 가축을 주제로 열두 차례의 전시를 열었는데, 이번에 보여 준 소 사진은 소의 초상과 일상을 보여 준 지난 전시와 달리 소의 형상을 통해 작가의 사유가 들어간 추상이다. 작업도 주로 야간에 진행했다는데, 어둠 속에서 드러난 역광의 선은 산이 되고 길이 되었다.소의 등은 산 능선이 어우러진 산수도를 연상시킨다. 젓소의 태반에 나타난 실핏줄은 마치 지구본 같았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지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김문호의 ‘豊裏眞景(풍리진경)’ 사진전이 지난 15일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인사아트6층)에서 개막되었으며, 전시와 함께 ‘풍리진경’ 사진집(눈빛출판사)도 나왔다. 사진집 제목으로 내 세운 ‘豊裏眞景’이란 뭘까? 사진집에 작가 노트는 물론 촬영장소나 일시 등 아무런 정보가 없다, 좋아하는 말로 꼴리는 대로 보라는 것이다. 나름의 독해력을 요구하는 불친절함은 있지만, 고주알 메주알 변명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백배 낮다. 풍리진경이란 풍요로움 속의 이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으나, 풍요로운 현대 문명을 누리는 감춰진 그 속에 진짜 경치가 있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다가가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가 채집한 잿빛 살풍경은 생각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묘미가 있다. 시멘트로 뒤덮인 아파트나 산업현장의 침울한 이미지가 마치 멸망의 묵시록으로 다가온다. 아파트 건물 사이로 내려앉는 태양은 종말을 예고하는 장엄한 서사같았다 편한 것만 좋아하는 인간의 욕망이 불러낸 눈앞의 현실이다. 그동안 작가는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로 황폐화하는 환경을 추적하며 인간들의 각성을 요구했다. ‘밥 팔아 똥 사 먹는 짓’ 한다는 손가락질에도 일편단심 민들레였다. 그런데, 이번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 작고 20주년을 기념하는 'Colors of Yoo Youngkuk'이 삼청로 ‘국제갤러리’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산과 자연을 모티브로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구도의 유영국 작품들은 조형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추상화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작가의 말처럼 유영국 추상화의 근간은 산에 있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아마 주변에 둘러 쌓인 산에서 영향받은 것 같다.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산에서 차용하여, 자연적 심상을 화폭에 담아왔다. 이 작품은 강렬한 태양이 화면 전체를 집어삼킬 듯 아른거린다. 농도를 달리한 붉은 색이 면과 면으로 이어진 가운데, 푸른빛 삼각뿔이 중심을 잡는다. 석양 풍경을 추상으로 변환시키며 본질에 다가간다. 그의 그림들은 강렬한 색을 바라보다 잠시 눈을 감으면 일어나는 색채의 잔상처럼 느껴진다. 유영국만의 창발적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이 압권이다. 보색의 조화와 색채의 깊이감을 동시에 부여하며 색을 통한 추상 미학의 절정에 다다르게 한다. 그리고 유영국 작품 제목은 모두 일(Wo
생각나는 대로 만들고 그리며, 작품이란 틀 자체를 깨부수는 김을의 ‘김을파손죄’전이 서울 조계사 옆 ‘OCI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김을은 기존의 타성을 깨기 위해 늘 새롭게 생각하며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는 작가다.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작업실에는 수많은 망치가 벽에 걸려있다. 붓이 있어야 할 곳에 망치가 있다는 것은 자신의 창작이란 망치로 깨부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난감 같은 다양한 오브제를 비롯한 수많은 드로잉 작품이 삼 개 층에 나누어 빽빽이 전시되었는데, 누구처럼 특정한 주제도 없고 일관된 방식도 없다. 닥치는 대로 만들거나 그리고, 아니면 사정없이 파손한다. 작업을 일로 보지 않고, 즐기는 놀이에 가깝다. 전시장 곳곳에 갖가지 인형 형상이나 머리가 어지럽게 늘려 있고, 목마나 수레가 놓여있기도 해, 마치 어린이집이나 놀이터에 온 기분이다. 인형의 신체를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다양한 행위들이 어린이처럼 자유롭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심각한 척 그렸으나 능청스러운 익살이 있고, 세상을 향한 야유도 엿보인다. 이러한 것들을 적절히 버무린 균형감이 김을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일본 도예가 이시야마 토시키와 판화가 노다 테츠야, 그리고 도예가 이영재의 작품이 어울린 세 거장 초대전이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민예사랑’에서 열리고 있다. ‘민예사랑’ [김포시 월곶면 문수산로434]은 북한의 개풍군을 눈앞에 둔 서해안 최북단의 살림집에 들어앉은 갤러리로 (고) 문영태화백 미망인 장재순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민예사랑'의 개방 전시는 꽃 피는 오월 한 차례만 열린다. 그곳은 정원이 아름다운데다 고가구들이 적절히 배치된 공간의 아늑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정원에는 돌확과 장대석, 동자석 등 몇백 년은 됨직한 갖가지 골동들이 나무들과 어울려 있고, 전시된 작품이나 생활용품 모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그런 전시 분위기가 작품의 격조를 높이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 놓인 작품 역시 격조가 높아야 차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초대된 일본 판화가 노다 테츠야는 도쿄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도예가 이시야마 토시키는 후나기 켄지에게 사사 받아 염유석탄가마를 축조하는 등 독보적인 도예 작업을 펼쳐 온 작가다. 그리고 이영재는 카셀 미술대학 도예과 연구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 독일에서 도
이 세상에 어머니란 말보다 더 편하고 정겨운 말은 없을 것이다. 어깨를 토닥이며 불러주던 자장가로 꿈꾸던 행복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말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지는 엄마를 형상화한 이명복의 ‘어멍’전이 어버이날에 맞춘 지난 5월4일부터 17일까지 열렸다. 몇 달 전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사진전이 열렸던 ‘나무화랑’에서 다시 그 감회에 빠져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부터 생각난다. 낙동강 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내 나이 세 살 때였으나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다. 포화가 잠잠할 즈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유엔군이 진을 친 남산 아래 미나리꽝 뚝길로 지나칠 무렵, 피 흘리며 쓰러진 군인이 ‘물, 물, 물”이라 외치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선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했다. 겁에 질린 어머니가 간신히 군인의 손을 뿌리치기는 했으나 뒤에서 총을 쏠까 염려되어 등에 업힌 나를 가슴에 끌어안고 뛰셨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흘렀다. 그때 느꼈던 어머니의 거친 숨결 속의
박옥수의 ‘시간여행’ 사진전이 지난 5월4일부터 9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사진가 박옥수의 초창기 사진으로 1965년부터 80년까지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 뿐 아니라, 중요한 근현대 사료로서의 가치도 지녔다. 박옥수는 고교시절부터 사진가로 두각을 드러냈고, 대학 시절에는 고(故) 이형록 선생이 이끄는 '현대사진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사진사에서 '신선회', '살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로 이어지는 사진 그룹 활동은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사진 이념이 생성된 중요한 시기였다.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전몽각, 황규태, 박영숙 등 기라성 같은 사진가들이 활동한 '현대사진연구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고(故) 이경모선생의 추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대학을 졸업한 후, 사진가 문선호 선생 휘하에 들어가며 광고사진가로 변신한 후 현대자동차 홍보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전은 하지 않았다. 가끔 단체전에 내놓은 작품도 리얼리즘 사진보다 서정적인 풍경이 주를 이루었다. 초창기 작품을 본 것은 83년 고(故) 문선호씨가 주도한 ‘한국현대사진대표작'
[기고] 조문호 작가 | 사진가 황규태선생의 ‘짝사랑 PiXEL ai PixY’ 전이 4월 29일까지 사진 대안공간 ‘space22’에서 열리고 있다. 색의 물결로 이루어진 ‘짝사랑’ 픽셀 작품들을 돌아보며 선생의 끊임없는 매체 실험이나 치열한 작가정신에 존경심이 일었다. 사실 생존한 원로사진가 중 선생만큼 열심히 하는 분이 있던가? 다들 기존 작품으로 회고전이나 여는 처지에 따끈따끈한 신작을 펼쳐 보이며 새로운 시각언어를 토해내고 있으니, 분명 아직도 청춘임이 틀림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작업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선생의 자유로운 생활처럼 놀이로 즐긴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렵게 생각하고 힘들게 작업하는 것보다 더 무모한 짓은 없기 때문이다. 황규태선생의 작가적 역량을 모르는 분이야 없겠지만, 몇 마디 부언할까 한다. 그는 60년대 초반, '경향신문'기자로 시작했으니, 첫 사진은 분명 보도사진인 셈이다. 그러나 신문사특파원으로 미국에 건너가며 실험에 의한 초현실주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머리를 관통하는 총알을 형상화 하는 등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확립한 것이다. 그때부터 필름을 태우거나 합성하거나, 이중 노출을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