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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미가 돋보이는 유영국의 기하학적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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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 작고 20주년을 기념하는 'Colors of Yoo Youngkuk'이 삼청로 ‘국제갤러리’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산과 자연을 모티브로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구도의 유영국 작품들은

조형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추상화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작가의 말처럼 유영국 추상화의 근간은 산에 있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아마 주변에 둘러 쌓인 산에서 영향받은 것 같다.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산에서 차용하여, 자연적 심상을 화폭에 담아왔다.

 

 

이 작품은 강렬한 태양이 화면 전체를 집어삼킬 듯 아른거린다.

농도를 달리한 붉은 색이 면과 면으로 이어진 가운데, 푸른빛 삼각뿔이 중심을 잡는다.

석양 풍경을 추상으로 변환시키며 본질에 다가간다.

 

 

그의 그림들은 강렬한 색을 바라보다 잠시 눈을 감으면 일어나는 색채의 잔상처럼 느껴진다.

유영국만의 창발적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이 압권이다.

보색의 조화와 색채의 깊이감을 동시에 부여하며 색을 통한 추상 미학의 절정에 다다르게 한다.

 

 

그리고 유영국 작품 제목은 모두 일(Work)로 통일되어 있다.

이는 전업 작가로서 절제의 삶을 지향하던 작가의 개인적 철학이 아닌가 생각된다.

집요한 의지와 부단한 조형 실험으로 추상의 정수를 탐구하려는 구도자적 자세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단청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격자 무늬 가 등장하기도 하고,

한 때는 경주 남산 불상을 소재로 한 사진 콜라주 작업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을 차용하여 표현적 다변화를 고심한 것이다.

 

 

유영국은 지금도 우리에게 풍경 없이 풍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마치 마음으로 본 것 같은 추상 현실의 풍경이 따스한 색채의 잔상으로 남는다.

 

 

 K1 관에서는 색채 실험과 조형 언어를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작가의 대표작과 초창기 작품을 보여준다. 독자적 미학을 구축하기 시작한 1950년대 및 1960년대 초중반 작품으로 자연의 요소를 추상적 형태로 변환해 마티에르를 살린 유화 작품들이다.

 

 

K2 관에서는 점, 선, 면, 형, 색이라는 기본적인 조형 요소를 살린 1970~1990년대 작품을 보여준다. 강렬하고 원초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후기 작품들이다. 2층에서는 1942년 경주 사진 연작과 드로잉, 그리고 작가의 활동을 보여주는 사료를 보여준다.

 

 

K3 관에서는 기하학적 추상과 조형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후반~1970년대 초기에 제작한 작품들로 다양한 색채를 활용해 거침없이 자연을 묘사하고 있다.

 

 

유영국의 주요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추상미술과 조형 실험의 궤적을 중심으로 시기별 대표 작품 68점, 드로잉 21점, 그리고 추상 작업의 일환이자 새로운 기법과 시도를 보여주는 1942년 사진 작품 및 작가의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가 총 망라되었다. 

 

이 전시는 8월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