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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뫼 김구의 "아프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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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
반공과 통일이라는 모순 내재화한 세대의 아픔 봉합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분단의 현장인 경기도 김포 북단 갈산리에서 태어나 66년을 살아온 김구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그는 분단의 역사적 배경이 긴밀하게 잔존하는 공간에서 살아온 작가이다. 얼마 전까지도 북의 대남방송이 들리고, 삐라가 자주 발견되고, 또 군부대도 많은 곳 말이다.

 

그의 그림은 거의 모두가 분단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다. 그중에서 <황무지-1>과 <황무지-2>는 다음과 같은 작가 노트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전쟁으로 인한 분단은 상대에 대한 증오를 남겼다. 증오는 불신과 한 몸이다. 그 결과 증오를 이용하여 적을 생산하고 활용까지 하는 세력이 생겼다.”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독학으로 작업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미술 이론이나 흐름에서 출발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체험적 현실에 기반했다. 작가와 같이 한국전쟁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에겐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폭발적인 출생 증가, 부모세대의 교육열, 부와 성공에 대한 집착과 부담, 그리고 분단이데올로기다. 

 

 

분단이데올로기는 관용보다는 혐오와 증오와 배제, 파시즘적 흑백론을 강요했다. 자유보다는 위계에 의해 균형을 상실하고 강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 세대는 반공과 동시에 통일을 외치는 양가적 입장과 모순도 내재화했다. 그래서 단순히 보수/진보, 우/좌, 부자/가난 등의 개념으로는 그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다면적이고도 복합적인 개인적 심리와 집단적 무의식과 사회적 명분이 두루 얽힌 세대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려오면서 그림이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그릴 것인가? 늘 물었던 질문이다.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림은 사물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감싸고 있는 사실 중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식민지 시절을 겪은 나의 할아버지는 해방이 화두였고 결과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다시 전쟁이 나고 군대 간 아들, 나의 아버지에겐 통일이 화두가 되었다. 그 손주인 나는 분단 시대를 공기처럼 숨 쉬며 산다. 우리 모두를 통째로 덮고 있는 가장 아프고 슬픈 사실이다. 결국 분단을 모른 체 하고 산 너머 경치를 그릴 수는 없었다.” (김구 작가의 작가노트에서)

 

 

베이비붐 세대인 김구는, 동 세대들의 양면성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작품에서는 선명한 방향성을 가진다. "분단을 그리는 작업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통일 논의는 커녕 평화협정조차 실패한 상황에서 분단 극복이라는 화가의 꿈은 불가능하다. 화가는 시지프스처럼 아래로 굴러떨어진 통일의 바위를 산정으로 끌어올리는 걸 반복해서 시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반복적인 행위가 관객으로 하여금 분단 극본 의지를 생성시키는 단초라도 되기를, 미술은 그런 것이다. 작품을 만나는 타자로 인해 작가가 추구하는 지향성의 확장이 가능한 장르라는 거. 그 울림이 더 깊고 더 커지기 위해서 작가의 미적 형식과 기획전략의 치밀함이 필요한 그런 거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미술 행위의 종착점 아닌가. (나무아트 대표 김진하 미술평론가)

 

 

김포 북단 갈산리 출신의 화가 칡뫼 김구.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온 미술 비전공자라 작업기간에 비해 활동량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있어서 미술은 무엇이어야 하며, 또 자신이 지향할 작업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인식한 점은 여느 기성작가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다만, 20여 년 이상 매달려 온 양식에서 일탈해서 다양한 재료와 열린 형식실험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할 듯하다. 과거와는 다른 분단과 통일에 대한 논리와 담론이 필요한 지금, 작업 형식도 그에 비례하는 새로움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 여러모로 힘든 조건에서도 작업 주제를 놓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칡뫼 작가에게 작업의 실험적 변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나무아트 대표 김진하 미술평론가의 전시 서문을 토대로 뉴스아트에서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