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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축제 취소 기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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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 마음 예측 불가, 관 주도 축제만?
조례 제정, 제도화 필요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서대문구에서 지역 대표 축제로 홍보하던 <신촌물총축제>가 지난 7월 축제를 불과 3주 남겨놓고 코로나를 이유로 취소되었다. 인터넷에 축제 취소로 검색해 보면 이처럼 많은 축제가 코로나를 이유로 취소되고 있다. 

 

 

하지만 물총축제가 취소된 직후인 7월 초에 장흥 물축제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8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서울 페스타축제, 무주 반디불 축제도 예정대로 열렸다. 9월 축제인 서울세계무용축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예정대로 진행된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는 13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에 따라 축제의 운명이 갈린 것이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장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에 따라서 축제의 성격과 운명이 달라지는 경향은 계속 있어 왔다.

 

문제는 이로 인해 축제에 관여하는 수많은 인력이 한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시와 합의 하에 물총축제를 준비하던 (주)헤이웨이는 사전에 집행된 준비 비용 5000만원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은 상태이다. 이런 사태를 유발한 지자체에서는 하지도 않은 행사에 예산을 낭비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민간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하고 있다.

 

지난 9월 14일에 열린 <지역축제 파행운영 대책마련을 위한 집담회(이하 집담회)>에서는 이런 경향이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장 입맛에 맞게 축제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서 축제의 명칭을 바꾸거나 아예 폐지하기도 한다.

 

 

<강릉국제영화제>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아예 폐지되었다. 최소 2만 명 이상이 찾는 12년 역사의 <서대문독립민주축제>는 <서대문독립페스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7월 26일 취소 통보를 받았지만 예산을 반액 삭감하는 조건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시민이 주도해 오던 축제가 한순간에 관주도로 바뀌기도 했다. <은평누리축제>는 느닷없이 연예인을 부르라는 지시가 떨어져 예산이 소진되는 바람에 일반 공연 참여자에게 식사조차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주도해 오던 인천 연수구 송도불빛축제와 연수구페스타는 시민들의 기획을 물리치고 지자체장 취향의 복고풍 축제로 진행된다고 한다. 과연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축제집담회 사회를 맡은 문화연대 이원재 집행위원장은 "대전 등에서는 지역문화재단을 없애겠다는 지자체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차라리 관광재단으로 바꾸라는 말이 나온다"고 개탄하였다. 지역문화재단에서 왔다는 한 참석자는, "8월에 지자체로부터 재단해산 사례가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 116개 중 공식적으로 15곳 대표가 바뀔 예정인데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고 했다.  

 

윤성진 한국축제감독회의 상임이사는 민선 8기 지자체장 선거 이후 지역축제가 더욱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컬러풀'이란 단어가 '파워풀'로 바뀌고, 축제에서 시민 참여나 주도 친환경 등이 다 삭제되며, 민간 축제 조직위원회가 해체되고, 담당자가 없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자체장의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집담회에 참여한 축제 관련자도, "시민, 참여, 혁신, 민주, 거버넌스 등의 단어가 모든 축제에서 빠지는 현상을 보이는데, 서울시와 세종시에서 특히 그런 일이 많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다보니 하루 아침에 수 년간 일해 온 축제감독과 실무진을 사전 통보도 없이 해촉하고 교체하는 일도 벌어진다. '전임자의 치적을 무(無)화하고 본인의 권위와 힘을 과시하는 데에 축제를 이용하는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축제집담회에 참여한 영등포 문화재단 강원재 대표는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축제의 주체가 많아져서 전국에 3000여개의 축제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축제는 지역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축제의 질적 저하 혹은 모든 축제가 비슷한 모습을 띄는 문제 등이 지적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흐름 속에 생겨난 관 주도 축제는 지자체장의 홍보수단이 되기가 더욱 쉽다.

 

따라서, 잘 진행되고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던 축제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성격변화를 강요받지 않으려면 이를 제도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시민에게 축제가 갖는 의미를 정리하고 그에 걸맞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성진 이사는 "축제는 공동체변화 캠페인, 지역생태계수호, 관계확장을 위한 대면문화 플랫폼이므로 꼭 지켜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박선영 문화연대문화정책센터소장은 축제는 중요 정책대상이라면서, "중장기 비전으로 축제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하였다. 

 

집담회에서 축제와 관련하여 주로 제기된 문제는 재정 및 운영의 독립성, 재정지원의 기반이 되는 평가기준, 축제의 운영방식, 축제 노하우 관리 등이었다. 

 

▲재정 및 운영의 독립성이 필요하다. 춘천마임축제의 경우 민간에 의해 자립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안정적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해 물총축제 측은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물총축제 티켓은 이미 1만 5000장이 판매되어 운영은 물론 재정에서도 독립한 축제였지만, 서대문구에서는 장소를 불허함으로써 축제를 무산시켰다. 

 

▲평가기준은 현재 방문객수, 경제효과, 홍보효과에만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예산에 종속되는 축제가 확대되면서 모든  축제가 비슷해지고 주민 삶과 괴리되는 경향이 있다. 축제가 예산이 들어가는 대민 서비스가 아니라 주민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평가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제기되는 환경 문제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축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지역의 축제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이들이 축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교육과 경험을 통해 전문가로 성장하여 축제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지위를 보장하여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게 해야 공공예산이 들어와도 시민이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

 

▲축제 노하우를 잘 관리하려면 축제 지원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축제지원센터 등에서 노하우를 관리하고 이를 플랫폼화하면 전문인력 양성이나 일자리 축제 관련 일자리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김미소 감독은, 성공적으로 진행된 축제였음에도 "축제 성과를 정리한 자료나 이를 입증할 근거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앞으로 성과자료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모델링을 하겠다고 했다.

 

한편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2022 한국문화축제’가 열린다. 서울 경복궁, 광화문광장, 잠실종합운동장 일원 등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주관하는 전형적인 관 주도 축제이다. 

 

영등포문화재단 강원재 대표는 "축제를 권력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할 장치를 만들려면 특정 세력 중심의 거버넌스가 아니라, 다양한 시민에 의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축제 민주주의일 것이다.

 

집담회는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축제의 성격과 운영방식을 규정하는 것을 목표로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하였다. 자치단체장에 의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겪지 않으려면 확고한 법적 지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길지 않은 축제 역사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집담회는, 축제의 쓸모가 재미와 활력에도 있지만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실현하는 데에도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