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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가 예술인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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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과 절차에 맞춰 준비한 행사 일방적 취소,
예술과 축제의 본질 이해하고 예술인 존중해주길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준비된 축제는 100만명이 모이더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축제기획자 윤성진씨가 지난 11월 14일 문화연대 긴급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10·29 참사 직후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공문을 배포하여 '안전' 문제를 이유로 공연문화 행사의 취소나 축소를 요청했다.

 

안전 관리에 만반의 준비가 된 경우에 한해서만 일정대로 추진하고 안전 대책이 미흡할 경우 추가 조치 보완과 현장 점검을 통해 완벽한 조치가 이뤄진 다음 행사를 열 것
 - 문체부가 30일 배포한 공문  (관련기사 이태원 참사 후 하소연 할 곳 없는 예술인을 위해 )

 

공무원의 긴급지침도 강경했다. 휴가나 연가 사용 금지, 당일 휴가자는 사무실 복귀, 복귀 어려운 경우에는 사유서 작성, 애도 리본 패용, 부서장 합동분양소 조문 등의 상세한 추모 지침을 내렸다. 군 간부들의 휴가도 제한했다. 

 

 

희생자를 애도하고 안전을 챙기는 자세는 중요하다. 하지만 타인의 '밥그릇'을 존중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문체부는 저 공문을 보내면서, 하루하루 공연과 행사로 먹고사는 예술인들에 대한 걱정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문체부는 무엇을 위해 안전을 챙긴 것일까. 관성과 면피는 아니었을까?

 

윤성진씨의 말대로 주최측이 명확하게 규정에 맞추어 준비하고 진행하는 행사에서는 사고의 확률도 사례도 적다. 사회 여기저기에서 크고작은 사고가 날 때마다 수백번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온 매뉴얼과 프로토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을 무시하는 행정, 그리고 사고 후 자행되는 무리한 행정 조치는 무력감을 불러온다.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이번 국가애도기간은 "국가에게 책임은 없지만 애도한다"는 통치행위로서, 또 다른 통치술의 시작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월호나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하지 않았던 신속한 국가애도기간 지정은 "국가가 신속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세월호 사태의 학습효과에 따른 방어기제"라고 보았다.  

 

 

성공회대 진태원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하는 애도의 방식은 진실을 밝히고 바로잡는 과정이 아닌, 망각의 애도이자 은폐하기 위한 애도"라고 비판하였다. 

애도 방식에 대한 통제는 애도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일 수 있다. 그렇게 고립 분열시킴으로써 무력화하는 것, 그러한 통치방식일 수 있다.

 

예술과 축제의 본질에 대하여 이해한다면, 정서적 경험, 공동체의 관계망을 채워주는 예술적 효과를 통해 오히려 사회적 참사를 위로하는 기능으로 작동하도록 할 수 있다.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에 변화를 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수동적이거나 주저하던 추모의 마음을 능동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아, 그러나 그것은 집권층에 두려운 일일 수 있겠다.

 

윤성진씨는 "지금 문체부에서 취소를 강요하고 있는 행사들은 수십명 수백명이 수개월 이상 긴 시간 철저히 준비하고,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심사를 받고 준비해 온 축제들이다. 그런 축제들이 행정의 준비 부족으로 인한 참사의 책임을 대신하여 무조건 취소되어야 하는 상황은 본질을 흐리는 잘못된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토론에서 뮤지션 이호는 "예술인들은 이번 참사를 통한 슬픔과 함께, 자신의 활동에 대해 주변의 눈치를 보고 검열하게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으며, 예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누구보다도 사회적 참사에 공감하고 슬퍼하는 예술인들이 가장 눈치를 보며 소외되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제발 문체부만이라도 본인들의 업무인 예술과 축제의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것을 구성하며 가능하게 하는 필수 인력들을 존중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