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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 관계, 이중섭 <두 마리의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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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최석태 |

 

산밑까지 나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우에 흘린 따뜻한 핏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러 내리며

넓은 언덕에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 짐승들이 등뒤를 쫓어

며칠씩 산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그는

어두운 골짝에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소리 울린다.

죽은 이로 하여금

죽은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사슴의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나리고

눈 우엔 아직도 따뜻한 핏방울…

 

 -  오장환, 성탄제, 조선일보, 1939. 10. 24

 

이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이중섭이 자신의 친구였던 오장환의 이 시를 염두에 두고 그렸다 싶은 그림이 하나 있다. 여기서 쫓기는 숫사슴과 멋 모르는 아기 사슴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

 

 

 

두 마리의 사슴이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은, 1941년 4월 24일에 그려졌다. 필자가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라고 이름 붙인 엽서 그림(관련기사 나무와 하나 되어 여자를 기다리는, 이중섭)과 같은 해, 같은 달에 그려졌다.

 

당시 이중섭이 아르누보 양식에 심취해 있었던지, 이 그림에도 아르누보 양식을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에 있는 숫사슴의 몸을 표현한 방식과, 숫사슴의 몸 뒤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넝쿨의 처리 방식을 겹쳐보면 더욱 뚜렷하다. 하지만 이 그림이 아르누보 양식으로 그려졌느냐 아니냐는 실상 거의 의미 없고, 그리 눈에 띄는 요소도 아니다.

 

화면의 중심을 벗어나 위쪽에 그려진 숫사슴은 어떤 위협을 경계하듯 고개를 돌려 화면에 들어오지 않은 자신의 뒤에 있는 무엇인가를 의식하면서, 한 쪽 앞발로는 작은 사슴을 보호하려는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오장환의 시에서 말한 포수와 사냥개 그리고 몰이꾼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시에서는 어린 사슴이 상처입은 어미 사슴을 입으로 핥아주지만 마침내 죽는다 했다. 이중섭의 그림에서는 어른 사슴이 위험으로부터 어린 사슴을 보호하려는 장면을 구현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을 더욱 실감나게 하는 장치가 채색이다.

 

두 마리 사슴이 딛고 선 산봉오리가 아니라 하늘을 오히려 짙은 풀빛 물감으로 칠했다. 그 결과 큰 사슴은 더욱 도드라져보이고, 발 딛고 선 땅보다는 두 마리 사슴의 움직임과 큰 사슴의 시선이 향하는 위쪽에 무게 중심이 쏠려서 더욱 위급한 상황인 듯한 느낌을 준다.

 

이중섭의 엽서그림에 계속 등장하는 바로 그 여인이 이번에는 어린 사슴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그림 속 어린 사슴은 역시나 암사슴으로 보인다.

 

이 그림도 청먹지를 대고 베껴 그렸다. 거듭될수록 선이 세련되어져 처음에 그렸던 엽서그림의 서투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은 여러 차례에 걸쳐 스케치를 거듭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숫사슴이 머리를 틀고 다리를 굽혀서 위급함에 대응하도록 하기 위해 많은 궁리를 했으리라. 물론, 첫 엽서그림에서 가장 많은 궁리를 했을 것이지만! 

 

참고문헌

최두석 엮음, 오장환전비1; 시, 창작과비평사, 1989

김학동, 오장환 연구, 시문학사, 1990

최석태, 이중섭 평전, 돌베개,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