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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성 과정은 적절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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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서류로 선정된 위원들, 다양성도 부족 신뢰도 부족
정치인 출신 위원장, 예술검열 블랙리스트 재발 막아줄까?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신임 8기 위원 임명이 완료되었다. 이는 6개월 이상 지연된 것으로, 7기 위원의 임기는 지난 해 5월 만료되었어야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신중하게 구성된 것처럼 보이는 8기는 출범 첫 날부터 구설에 휘말렸다. 70개 문화예술단체가 연명하여 정치인 출신인 정병국 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8기 위원회에 불안의 눈길을 보내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치인 출신 위원장이 말하는 '효율적 배분', 블랙리스트 사건 연상시켜

 

이들은 신임 정병국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진흥기금) 확충과 기금의 효율적 배분·활용을 통한 모든 국민의 문화향유"라는 정책 목표에 대하여 큰 우려를 표했다. '효율적 배분·활용’이라는 말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명분으로 사용되었던 바, 그의 정치적 배경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대하여 예술인들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예진흥기금 확충은 문화예술인들이 요구해 온 것이다. 법제도 보완과 시스템을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되길 원했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인 정병국 위원장이 배분과 활용을 말하는 순간, 기금 확충은 정치적 행위가 된다.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배분활용'된다는 의미가 내포되는 것으로 들린다. 블랙리스트 사건처럼 말이다.

 

이들은 기존 3명의 위원과 함께 할 9명의 위원들을 위촉하는 과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일주일만에 서류로만 선정된 위원들과 위원장

 

7기 추천위원들은 위원 후보들을 미리 인터뷰하고 파악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이후 성별은 물론, 나이, 분야까지 고려하여 문화예술위원회가 다양한 예술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들여 위원들을 선발하여 위촉하였다. 

 

하지만 8기 위원회는 무려 6개월 동안 위원 후보를 내지 못하다가 1월 3일에야 위원 후보자 및 추천위원회를 공개하였다. 7기 때와 달리 추천위원과의 인터뷰 등 별도 과정은 없었고 1월 8일에 위원 확정, 10일에 위촉했다. 6개월을  표류하던 위원회 구성이, 후보군 공지로부터 위촉까지 불과 일주일만에 끝난 것이다.

 

8기부터는 위원장을 위원들 안에서 호선한다. 위원은 곧 위원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터뷰나 면접도 없이 정견발표나 토론도 없이 서면 심의로만 선발된 위원이 어떻게 예술현장의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절차를 지켜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현장으로부터 추천받아 위원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를 구성하고, 추천위는 공개모집에 지원한 후보자 137명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다. 그 중 분야별 복수의 후보자를 문체부 장관에게 추천했으며, 문체부는 지난 1월 3일 최종후보자 명단을 공개하였다. 대면 인터뷰나 토론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다.

 

7기 추천위원회의 다양성 향한 노력을 저버린 8기 추천위원회

 

게다가 7기와 달리 8기는 50대를 중심으로 오직 성별 비중만 준수하였다. 그 결과 최연소 위원도 50대(73년생)로, 젊은 층이 완전히 소외되었다. 2배수로 추천된 후보군에서조차 50대 이상이 아닌 사람은 89년생, 82년생, 75년생 단 3명이다. 또한 위촉된 위원 중에는 문학이나, 최근 중요시되는 다원분야의 위원도 없었다. 

 

7기를 구성할 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후보군이 50대 남성 중심인 것으로 밝혀지자 3차례에 걸쳐 공청회를 열면서 성별, 연령, 지역, 분야를 모두 고려하여 예술위원회를 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데 8기에서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노력을 유지 발전하기는 커녕 오히려 후퇴시킨 꼴이다.

 

위원 다양성 부족해 빛 바랜, 합의제와 위원장 호선제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연간 5,000억원 가량의 국가 예산을 집행한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집행하는 문화예술 예산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흐름을 좌우할만한 영향력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문화예술위원회는 현장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합의제로 의사결정을 한다. 민간이 공공영역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기초예술 분야와 문화산업의 비영리적 실험영역을 대상으로 창조와 매개, 향유의 선순환 구조 확립과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책을 유도하는 장치이다.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해 8기부터는 위원장을 임명이 아닌 "호선제'로 뽑기로 한 것도, 문화예술위원회의 본래 목적을 살리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위원 구성이 다양하지 않다면, 합의제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음은 70개 문화예술단체의 입장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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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위원장과 8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에 대한 우리의 입장”

 

지난 1월 3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8기 예술위원 후보자 및 추천위원을 공개했다. 7일의 검증이 끝난 1월 10일 문체부는 8기 위원을 임명했고, 같은 날 예술위는 8기 위원들과 함께 임시회의를 개최해 호선으로 정병국 前 문체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새해 벽두에 들려온 예술위 위원장 선출 소식은 문화예술인들을 경악하게 하는 것이었다.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인 예술위의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과제의 하나로 ‘호선제’ 복원이 선행된 것은 예술위가 민간 자율 합의 기구로 정치 권력과 상급기관으로부터 독립성·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함이다. 그런데 소위 문화예술계를 대표하여 예술위원이 된 사람들이 전직 장관에 5선의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을 기관의 수장으로 선출하였다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다. 

 

위원장으로 호선된 정병국과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유인촌은 블랙리스트가 실행된 것으로 확인된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지냈던 사람들이다. 문체부가 유인촌 전 장관을 추천위원으로 위촉한 것이나, 추천위원들이 정병국 전 장관을 예술위원 2배수 후보로 추천한 것이나, 8기 예술위원들이 정병국을 예술위원장으로 호선한 것이나 모두 시대를 역행하는 부적절한 처사다. 

 

아니나 다를까 정병국 신임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말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진흥기금) 확충과 기금의 효율적 배분·활용을 통한 모든 국민의 문화향유였다. 아마도 추천위원들이나 8기 위원들이 정병국 위원장을 추천하며 기대하였을 법한 사유일 것이다. 문예진흥기금 재원의 안정화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후속 조치 중 가장 중요하게 권고되었던 사항 중 하나였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법제화는 전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했으니 정병국 위원장에게라도 그러한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예진흥기금 확충은 기금 전입금 법정화를 통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힘 있는 정치인 출신을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방법을 허용하는 것은 독립적 민간 자율 합의 기구로 운영되어야 할 예술위를 문체부는 물론 정치권력에 직접 예속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예술위가 블랙리스트 실행을 거부하지 못했던 커다란 이유가 정부에서 임의로 배정하는 예산 때문이었던 사실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예술위 예산 확보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 출신 실세 장관의 힘과 의지에 따른 문예진흥기금 확충이 아니라, 법률의 개정을 통한 법정 예산 확충의 보장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지적한다. 우리는 8기 예술위가 정치위원회가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결과는 문학 분야나 다원 분야 위원은 아예 뽑지도 않았고, 청년 위원도 뽑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당황스럽다. 7기 위원회를 구성할 당시 50대 남성 중심의 위원 후보자 일색이었다는 점이 크게 논란이 일어났었다. 이에 문체부는 문예위 위원 선임 공청회를 세 차례 열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재공모까지 진행하여 성별, 연령 등 비교적 균형 있는 예술위원회를 구성하였던 데 비하여 크게 후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책임 있는 정당에서 5선의 국회의원까지 지낸 정병국 위원장이 언급한 기금의 ‘효율적 배분·활용’이라는 말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블랙리스트가 실행되던 시기였던 2015년 하반기 ~ 2016년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모든 국민의 문화향유’는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을 배제하기 위한 명분으로서의 언어였다. 2015년 공모사업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의 어려움을 겪었던 정부가 블랙리스트 실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업구조 개편을 하면서 사용한 방법이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을 많이 지원하는 공모사업을 폐지·축소하는 한편, ‘문화향유’ 분야 예산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새 정부 인수위부터 지금까지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대책과 피해자 회복에 대한 입장과 계획을 지속적으로 물어왔고 답을 기다려왔으나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 결국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체부가 실행한 ‘윤석열차’ 예술검열 사건이 터졌고 우리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에게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문체부는 자신들이 지속하기로 약속한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제도개선 공고화와 주관하는 표현의 자유 주간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박보균 장관이 약속한 블랙리스트 사건 피해자를 위한 체계적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되지 않았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정병국 위원장과 8기 위원회에 묻는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8기 위원회의 입장이 무엇인지, ‘윤석열차 사건’을 비롯하여 문화예술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는 예술검열 사건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밝혀라. 그리고 블랙리스트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예술위가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답하라! 

 

우리는 새로 출범한 8기 위원회에 블랙리스트 사건의 재발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정병국 위원장과 8기 예술위의 행보를 엄중히 지켜볼 것이다. 

 

2023. 1. 18.  

 

70개 문화예술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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