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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청, 이제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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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오랜 시간 준비하여 만들어진 민관 거버넌스 조직인 예술청의 민간위촉직 공동청장 2명과 운영위원 9명 중 7명이 계약만료로 임기(위촉기간)가 종료되었다. 계약서 상에는 평가를 통해 연임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평가절차 진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기존 위원의 임기가 종료되어 반발을 사고 있다.

 

수년 동안 준비하여 많은 예술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운영되던 예술청 운영이 시작된지 불과 2년만에 운영위원회가 매끄럽지 못하게 종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16년에 던져진 화두

 

예술청은 2016년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계획의 일환인 '서울예술인플랜' 5개년 정책으로 가시화되었다. 많은 해외사례를 참고한 뒤, 2019년에 예술인 거버넌스를 위해 민관협치라는 운영체계를 확정했다. 거버넌스는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업하는 방식을 말한다. 단순히 의견을 수렴하거나 논의하는 자문회의, 위원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협업 방식이다.

 

2019년에는 8인의 ‘예술청 기획단’을 구성하고 10차례에 걸쳐 예술인과 시민이 참여하는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했다. 2020년에는 재단직원과 예술인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운영준비단을 거쳐 2021년에 4월 1기 운영단을 발족했다. 이 과정에서 1만여명 이상의 예술인들이 소통하고 참여했다. 수십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의 일방적 소통을 경험했던 예술계에서는 꽤 신선한 경험이었고, 이에 언론에서도 주목했었다. 

 

신선하지만 제도화되지 않아 사상누각이었던 예술청

 

그러나 이렇게 합의된 예술청 민-관 거버넌스는 하나의 운영체계였을 뿐, 제도화되지는 않았다. 예술청은 조직적으로는 서울문화재단의 한 부서였고, 서울문화재단의 예산을 받아 집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조직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독립되어있지 않았기에 거버넌스는 서울문화재단의 '호의'에 의해서 유지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상태였다. 연약한 기반에  있던 거버넌스는 계속해서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그러던 중 서울문화재단에 이창기 대표이사가 취임한 직후인 2021년 11월,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예술청 민간위원의 인건비 지급과 관련한 지적이 있었다. 12월에는 이와 관련하여 특정감사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은 재단 평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시의회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신임 이창기 대표이사는 2022년 1월 ‘3대 전략, 10대 혁신안’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서울문화예술포럼' 구상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문화예술 분야(장르)별로 역량 있는 문화예술 전문단체, 각 장르별 협회, 오피니언 리더,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예술계 주요 이슈와 트렌드를 고민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로서 ‘예술인 新거버넌스’가 될 것이라 하였다.

 

예술청 내에 이미 거버넌스 체계가 구축되어 있는데 新거버넌스를 들고나옴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존의 거버넌스 체계를 무시하는 인상을 주었던 이대표는 2022년 6월에는 예술청 운영과 관련하여 연구 용역을 지시하고, 7월에는 자신의 경영전략을 관철하기 위해 조직개편과 정기인사이동을 하였다.

 

이때 예술청 운영단장이자 당연직 공동청장이었던 장재환씨는 안전관리실장으로 전보발령하고, 창작기반본부장 직무대리였던 남미진씨를 대학로센터실장으로 발령하여 당연직 예술청장을 겸임하게 하였다. 

 

서울문화재단 쪽에서는 어차피 재단 직원이 겸하던 예술청장을 대학로센터실장이 겸하게 했을 뿐이고 예술청 고유직무도 인원수도 변동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예술청에 집중하는 재단직원 1인을 다른 곳으로 발령내고. 공동청장 3인이 운영하던 예술청을 예술창작본부 산하 3개실 가운데 하나인 대학로센터실 아래에 편제해 일개 팀으로 격하시키면서 실제로는 청장급 인원 1명을 빼 낸 모양새였기 때문에 예술인들이 크게 반발했다.

 


203곳의 문화예술단체와 705명의 예술인들이 "예술청 정상화를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행동"이라는 이름하에 이 결정에 항의하며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예술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거버넌스 플랫폼으로서, 행정편의를 위해 형식적으로 서울문화재단에 속해 있었을 뿐 서울문화재단의 조직개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인들, 예술청을 격하시키고 민관 거버넌스 원칙을 깬 것이라 항의

 

하지만 이창기 대표의 입장은 확고했다.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은 재단 중장기전략에 따른 자신의 고유한 경영활동으로 사전에 협의할 수 없으며, 예술청팀원교체는 본인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며, 예술청의 지위는 변하지 않았고, 대표사업과 기반시설을 연계함으로써 오히려 통합확장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또한 거버넌스 체계 위반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더 많은 예술가 및 민간협단체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더 큰 거버넌스 모델을 갖춰갈 예정이라고 답변하였다. 

 

이 와중에 서울시의회는 2022년 11월 또 다시 예술청 민간위원들의 인건비 지급에 대하여 자극적인 말로 지적하였다. 이번에는 이창기 대표이사가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답변했다. 공공예술기관 운영 경험이 많은 이대표는 지난 해 행정감사에서 지적받은 이래로 경영전략발표, 조직개편, 공동운영지침 등 많은 방식으로 대비하여 왔기 때문이다.  

 

위원들의 임기종료는 서울시 의회 지적에 대한 이대표의 답변  

 

예술청 민간위원들의 임기종료는 취임 직후 서울시 의회의 행정감사 및 특정감사를 받은 이창기 대표의 답변이다. 이창기 대표가 취한 입장은 기존의 논의를 계승하고 예술청의 거버넌스 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는 유능한 행정가로서 주어진 지침대로 잘 실행할 것을 택하였다.

 

이를 위해 비교적 수평적으로 분포되어 있던 서울문화재단의 조직도는, 이창기 대표의 조직개편 이후 전형적인 피라미드 조직으로 바뀌었다. 

 

 

성과평가조차 못해 본 미완의 실험, 그냥 폐기해선 안돼

 

1기 운영진에게 보장되었던 2년이라는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인사 이동을 겪고, 남은 임기 동안에는 내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예술청의 거버넌스 시스템은 미완의 실험으로 남게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이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제대로 논의해 볼 기회가 없었다. 이는 서울문화재단 주도로 적어도 한번은 공개적으로 해야 할 토론이다. 

 

예술청 민간운영위원들이 '4월 5일 제 0회 서울예술인회의'를 통해 문화예술 거버넌스의 이상반응 진단과 처방을 시도했지만, 민간위원들이 모두 계약종료되었기 때문에 0회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예술청이 감행한 미완의 실험은, "견고한 토대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교훈만 남겼다.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청 소개 페이지에는 "예술청은 공동의 의사결정 및 수평적 구조를 기반으로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기반의 연결, 연대, 확장 플랫폼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예술청의 정체성 키워드는 매개, 창작기반조성, 권익, 공론화, 연구이며, 핵심가치는 평등과 안전, 시도와 모험, 자율과 책임, 공존과 상생이다. 

 

앞으로 서울문화재단이 어떤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제시할지는 알 수 없다. 예술청 소개 페이지에 나오는 말들이 립서비스로 끝나지 않고 잘 구현되려면, 거버넌스 속도를 행정이 기다려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민관 협치 프로그램들에서 겪은 수많은 갈등을 그냥 폐기처분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