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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이 주는 메시지, 포용과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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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9월 21일 국립중앙박물과 대강당에서 제 1회 장애예술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는 "고요할 때 낮은 음가도 제 소리를 가진다"는 말로 장애예술의 의미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이어서 한국은 물론 일본, 베트남, 영국의 장애예술 현황이 소개되었고, 장애예술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잠재력, 장애예술교육의 방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라운드테이블도 진행되었다. 

 

 

예술은 지연된 반응이다... 이미지는 드러내고 의미는 숨겨서 찾게 만든다. 관객은 이를 찾으면서 쾌감을 느낀다... 미의 기준은 변화하며... 바꿔갈 수 있다... 절대 침묵 공간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소음도가 너무 높다... 고요 속에 내부에서 폭발할 필요가 있다. 고요해야 어떤 낮은 소리도 자기 고유의 음가를 가진다.  - 박문호 박사

 

전직 변호사이자 현재 무용수인 김원영씨는 자신이 무용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14살이 될 때까지 장애로 인해 공교육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1990년대 말부터 급진적인 장애인권리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겁이 많았던" 김원영씨는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공연예술인을 꿈꾸었지만, 장애예술이 프릭쇼(freak show, 17~18세기에 남과 다른 몸을 구경거리로 제공하던 것)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장애예술에 전혀 무관심하던 사회가 최근 급격히 변하고 있는데, 너무 빨리 변해서 장애예술이라는 아젠다가 아예 잊혀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무용은 신체 자체가 주체가 되는 것... (장애를 가진 몸으로 춤을 춘다고 '감동'하는 차원의) 도덕적 감상이 아닌 (예술적 차원에서) 비평적 시선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 비평을 통해 (장애예술에서도) 정확한 탁월성을 추구해야 한다. 장애를 정체성으로 인정하는 정치적 신념이 확대되길... - 김원영 무용수

 

그에 따르면, 전통예술 분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것 중 하나가 '병신춤'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통예술 분야에서도 장애인을 거부한다. 김원영 무용수는 "장애인에게 학교 등 접근 가능한 예술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를 통해 장르별 "전형성이 교란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장애를 이유로 특정 학과 입학을 불허하는 사례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일본 에이블아트재팬의 시바자키 유미코씨는 일본의 장애인예술문화활동 사례를 소개했다. 1994년에 시작된 에이블아트운동은 현재 47개 지역 가운데 43개 지역에 '장애인예술문화활동지원센터'가 설치되었고, 2023년에만 118명의 작품 1만 2735점을 공개하였다. 이 작품들로 긴자패션쇼 등 대형 프로젝트, 기업의 화장품 디자인 등에 참여하고 여기서 발생한 작품 수익을 장애인올림픽 등에 기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치있다는 이미지 전략을 펴 왔고... 뮤지션, 예술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에이블아트에서) 적극적으로 고용... 학생들의 진로선택이나 전문가 직업의 경계 확장에 변화를 야기했다... 에이블아트운동과 관련된 복지시설이나 NPO에 유능한 학생과 예술가들이 자기탐구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모인다... 2018년에는 '장애인문화예술추진법'이 제정되어... 문화예술의 가치를 고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평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지역 공생  사회 구축하고 있다...  - 에이블아트재팬 시바자키 유미코

 

 

베트남에서는 사회적 기업 '토헤(Tohe)'를 통해 불우장애 아동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고 있다. 반 판 토헤 이사는 베트남 2세 이상 인구의 7%인 620만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장애인과 함께 사는 인구는 전체의 13%라고 소개하였다.

 

그는 토헤의 장애 아동들이 만든 작품 일부가 생활용품으로 디자인되어 상품으로 탄생한 사례를 보여주었는데, 사례들은 상당히 고급스럽고 다양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매출의 5%는 아동에게 지급된다고 한다. 토헤는 예술기초교육, 전문교육, 직업교육까지 연결함으로써 사회적 영향과 비즈니스 성과를 거두었다. 총 매출 규모는 연간 약 54만 달러이며, 수익률은 12%이다. 어린이들에게는 5만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미술가 문승현과 안무가 김명신, 영상감독 김경민이 협업한 작품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 상영도 있었다. 영상에서 문승현씨와 김명신씨는 장애인 출입이 힘든 아르코미술관을 무대로 서로 의지하면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건축가 김수근은 건물 로비를 앞뒤로 뚫어서 외부에 개방함으로써 아르코 미술관이 문화 예술의 집결지로서 상징화하고자 했다. 이 '개방'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걸까? 문승현씨는 퍼포먼스를 통해 경사로나 리프트 설치도 어려운 건물의 구조를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에게는 개방적이지도 포용적이지도 않음을 보여준다. 

 

 

2023 광주비엔날레에서 박서보 미술상을 수상한 엄정순 시각예술가는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1996년에 맹학교를 찾아가 미술수업을 하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직접 만져본 뒤 이를 표현하는 프로젝트인 코끼리 프로젝트를 10년간 진행했고,  "장애는 감각이 재배치된 것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시각 없이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보르헤스 도서관'을 시작해 점자 그림책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출판한 점자그림책은 교보문고에서 일반인들에게 더 잘 팔리면서 10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의 질문은 세계와 만나고 있다.

 

그의  예술적 질문은 여러가지 실험을 사건화했고,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오면서 스스로를 계속 확대 재생산해서 결국 전체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결핍이 부정적인가? 촉각이 시각보다 덜 정확한가? 시각없이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까?

 

 

영국의 신경다양성 아티스트 공동체 '프로젝트 아트웍스(PAW)'의 케이트 아담스와 팀 코리건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PAW는 장애를 다름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영국 예술위원회 산하 국립기관으로, 신경다양성이란 말은 자폐 스펙트럼과 학습장애 및 모든 인지적 차이를 배제하는 방식의 언어이다.

 

신경다양성 아티스트들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예술로 표현한 후 말로도 표현하기 시작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PAW는 개인화된 스튜디오에서 소통하며 작업하는데, 구성원들은 다수의 수상경력과 전시라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영상전문가인 팀 코리건은 이들의 활약을 영상화하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장애예술에 대하여 동정하는 문화가 아닌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이길 바란다, 20여년간 사회부 기자만 만났는데 장애예술은 봉사활동이 아니니 예술문화부 기자를 만나고싶다,  장애예술교육은 장애인전용으로 분리되어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되기보다는 통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일본의 에이블아트운동은 정착되기까지 20년 동안 7년간 라운드테이블을 70번이나 했다는 등 많은 유의미한 질의 응답이 오고갔다. 

 

특히 장애예술에 대하여 비평가들이 정말로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는 김원영 무용수의 질문에 현역 무용비평가인 김명현씨는 "명백히 예술적 가치가 있다"면서, 장애예술은 예술의 시각을 넓히고 새로운 사고와 논리를 가져온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특히 김원영씨의 '무용수되기' 프로젝트는 무용사적으로 중요하고 제도권 무용에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또한 '무용수되기'에서 김원영씨가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것이 이 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면서 장애인의 몸은 조건 자체로 일반의 상상과 창의를 넘어서는 강력한 표현도구라고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전병극 제 1차관이 축사를 했고, 국회의원이자 시작장애인피아니스트인 김예지가 기조발표를 했다. 

 

소수혐오는 투사된 혐오... 예술을 통한 감성과 상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장애와 장애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예술은 취미나 시혜가 아니다...  - 국회의원 김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