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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자녀 돌봄센터 일방적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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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자녀를 둔 예술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대학로와 망원동의 예술인자녀 돌봄센터가 올해 말로  문을 닫는다. 돌봄센터에 지원되던 예산 5억 8000만원이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대학로의 반디돌봄센터는 2014년에, 망원동의 예봄돌봄센터는 2017년에 각각 개소하여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예술인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왔다.

 

올해 정부는 각 지역의 돌봄센터가 충분히 확충되었다는 판단 하에, 특정 직업군 자녀에 대한 돌봄지원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이제 모두 국가의 돌봄시스템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예술인들의 자녀양육 계획이 혼란에 빠졌다. 다니던 돌봄센터를 갑자기 폐쇄하고 알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말도 황당하지만, 예술인 자녀들이 들어갈만한 공공돌봄센터를 찾는 일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대학로 반디돌봄센터의 경우 연극인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타 돌봄센터와 달리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우선, 공연할 때만 아이를 맡기면 되는 연극인들을 위해 운영 시간이 연극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여는 시간이 주중에는 오후 1시, 주말에는 오전 11시인 대신, 닫는 시간이 저녁 8시~10시로 공연을 마칠 때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다.

 

 

게다가 공연장과 가깝고 시간제 돌봄이고 비용도 저렴하다. 또한 연령통합 돌봄센터이기 때문에 다자녀의 경우 아이들의 안정감이 높고, 학부모는 여기저기 맡긴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한 밤중에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연극인들이 반디돌봄센터에 의지해 예술인 커리어와 양육을 병행했다. 앞으로 이곳을 이용할 계획에 있는 후배 연극인들에게 돌봄센터 폐쇄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현재 반디돌봄센터 등록인원은 300명이며, 주말에는 돌봄 정원 25명을 꽉 채운다.

 

정부에서 이 돌봄센터 폐쇄 결정을 한 이유는 주중 이용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주중 이용 수는 1~2명부터 10여명까지 매우 불규칙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고없이 돌봄센터를 폐지하는 것이 온당할까? 특히나 초저출산 국가에서 말이다.

 

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복)에 의하면, 예술인자녀 돌봄센터 폐쇄는 2020년부터 중복 사업으로 계속 지적받아왔다고 한다. 2020년 3월부터 예술활동증명이 재직증명서처럼 사용되었다. 예술인들도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리랜서들은 아직도 불가능하다.) 예술인들이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공공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으니 중복사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복은 직업적 특수성과 수요를 강조하면서 여러 차례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설득에 실패했다고 한다.  

 

돌봄센터를 이용해 온 학부모들은 단톡방을 만들어서 대응 중이다. 오늘(11월 8일)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김예지 국회의원과도 면담 예정이다. 학부모들은 당사자와의 소통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돌봄센터 덕분에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는 연극인 황재희 씨는 직업군에 특화된 돌봄센터의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소통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였다. 그가 반디돌봄센터를 선택한 것도, 자신의 일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일은 정말 불규칙하고 예측하기가 어려워요. 이런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돌봄이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 반디돌봄센터에 왔을 때, 24개월 아이보다는 5세 정도 아이에게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 일에 맞춰 돌봄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어요. 좋은 제도를 없애지 말고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연극인 황재희

 

중복사업이라 불가피하게 중단해야 한다면 현재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부터 했어야 한다.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현재 국가의 돌봄 시스템이 충분할까? 뉴스아트에서 연극인의 입장에서 대안을 찾아보았다.

 

다산콜센터에 전화하니, 직접적인 안내는 어렵다고 하면서 서울시 보육포털 서비스를 검색해보라고 하였다. 종로구에 야간 및 주말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 법한 어린이집을 찾기 위해 24시간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하고 검색하니 결과값이 없었다. 거점형 야간을 추가하니 5개가 나왔는데, 대학로에서 심야에 접근  가능한 곳은 하나였다. 하지만 이곳은 시간제도 주말돌봄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성북구로 검색해보니 두 군데가 나왔다. 4호선 혜화역에서 한 두 정거장 거리라 접근성이 좋지만, 이곳 역시 시간제나 주말 돌봄을 하려면 구청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공연이 있을 때만 불규칙하게 맡긴다고 하니, 솔직히 말해주었다. "어린이집에서 환영하지는 않겠네요..." 현재의 보육 시스템은 규칙적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지난 해에 야간 주말도 이용하는 긴급 돌봄 시설을 1226개로 확충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로 인근에 시간제이면서 주말에도 맡길 수 있는 곳은 혜화역에서 대중교통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딱 한 군데였다. 

 

예복에서는, 설득에 실패한 후 학부모와 소통하면서 대안을 찾을 계획이었는데 돌봄센터에서 먼저 공지하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돌봄센터에서는 학부모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먼저 공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돌봄센터에 통지하기 전에 학부모와 소통했어야 한다. 

 

게다가 대학로 반디돌봄센터는 2017년에 이미 한 차례 폐쇄 위기를 겪은 터라 이번 결정은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 2017년 5월 2일 종로구청은 반디돌봄센터가 있는 상가건물이 무인가이며 공동주택관리법 위반이라며 과태료 160만원을 부과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큰 비용이 필요했고, 돌봄센터는 폐쇄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YMCA서울아가야에서 돌봄센터를 맡아 인근으로 이전하여 운영하면서 문제가 해결돼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이미 한 차례 트라우마를 겪은 학부모들에게 미칠 충격과, 갑자기 친구들 동기간과 헤어져 다른 어린이집에 가서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을 생각한다면 이런 결정은, 설사 '불가피한 것'이라 해도, '통보' 형식이어서는 안된다.

 

일방적 통보에 마음이 상한 학부모들은, 예복은 거금 들여 서울역 호화청사로 이사가면서 고작 5억 8000만원 때문에 돌봄센터를 폐쇄하냐고 물었다. 이에 예복에서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에 따라 예술인권리보장센터를 만들기 위해  이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사무실에는 더 이상 공간이 없는 데다가 교통도 불편해서 오는 12월 서울역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며, 전체 사무공간은 오히려 협소해 진다고  해명했다.

 

현장 사정 모르는 일방적 예산 감축과, 실행부서인 예복의 허술한 대응은 서로 협력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 오해와 불신을 키우고 있다. 

 

당사자들과 충분히 이야기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함께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통, 대안마련, 일몰제 이 세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안을 시행할 때도 시행 예고를 하고 공청회를 하는데, 법안 마련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양육에 대한 일을 이렇게 처리하니까 초저출산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