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30년 삶의 터전 잃고 5년째 투쟁…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의 기습 철거의 상처를 보듬는 음악 연대

URL복사

쫓겨난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
거리의 음악가 장현호, 기타 하나로 상처 입은 마음들을 위로하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울려 퍼진 연대의 목소리,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

 

뉴스아트 편집부 | 2025년 9월 11일 저녁, 화려한 조명도, 푹신한 객석도 없는 동서울터미널 한편의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그 어떤 공연보다 뜨거운 무대가 펼쳐졌다. 밴드 '길가는밴드'의 싱어송라이터 장현호는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5년 넘게 거리에서 투쟁 중인 상인들을 위해 기타를 잡았다. 그의 노래는 쫓겨난 이들의 고단한 어깨를 감싸는 위로였고,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의 외침이었다.

 

이번 연대 공연은 수십 년간 터미널의 역사와 함께해 온 상인들이 거대 자본에 의해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힌 아픔에 공감하고,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에 힘을 보태기 위해 마련됐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연에는 상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함께 자리해 장현호의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거리의 음악가, 거리의 사람들을 만나다

 

장현호는 세월호 참사, KTX 해고 승무원 복직 투쟁 등 우리 사회의 아픔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로 연대해 온 음악가다. 그는 이날 공연에서 "이곳에 오기 전,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분들이 새벽에 기습적으로 쫓겨나야만 했던 이야기를 읽으며 분노했고 마음 아팠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음악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여러분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잊지 않고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상인들의 손을 잡았다.

 

불공정 계약서 한 장, 그리고 설날 새벽의 악몽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의 비극은 2019년, 당시 운영사였던 한진중공업이 터미널 재건축을 이유로 일방적인 계약 종료를 통보하며 시작됐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2018년 재계약 당시 상인들이 서명해야 했던 '제소전 화해조서'였다. '재건축 시 아무런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원상복구하여 퇴거한다'는 독소조항은 사실상 상인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는 족쇄였다. 재계약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 조항은 훗날 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

 

결국 2021년, 설 연휴를 코앞에 둔 차가운 새벽,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60여 개 점포를 기습적으로 강제 철거했다. 수십 년간 일궈온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상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터미널을 인수한 신세계프라퍼티 측은 "재건축 후 재입점"을 구두로 약속했지만, 구속력 있는 문서 형태의 협약은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신세계가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와 계약하고 상인들은 그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주로 들어오는 '전대차' 방식을 제시해, 상인들의 권리금을 무력화하고 종속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공연을 지켜본 고희동 동서울터미널 임차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년간 많은 분의 연대와 지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며 "사람들의 연대가 억울하고 지친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되찾는 것이다. 그날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현호의 노래는 저녁 공기를 타고 텅 빈 터미널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 앞에 스러져간 이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향한 희망의 선언이었다. 길 위에서 시작된 이들의 투쟁에 사회가 어떻게 응답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