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글 김수길| 이화동 梨花洞 서울의 4대 산 북악, 인왕, 남산과 함께 4대산중 하나인 낙산(駱山)의 아랫마을인 이화동 조선시대에는 쌍계동(雙溪洞)이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관사들이 들어 섯으며 해방 후 ‘이화장’이 들어서면서 국민주택단지로 조성되어 온 마을이다. 2006년부터 낙산프로젝트로 시작된 벽화마을로 유명 하지만 관광객의 증가와 주민들 간의 이해관계로 대표적 꽃계단, 잉어계단 벽화는 일부 주민과 그의 가족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우산을 기다리는 일 박주하 詩集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중에서 허공을 뚫고 날아가는 새 때를 봅니다 여기는 폭풍우 속, 등대처럼 서서 우산을 기다립니다 우중에 죽변 바다를 끼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우산을 들고 온다는 말만큼 경이롭습니다 어디선가 사람이 오고 있다니, 새를 따라가진 못했으나 우산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습니다 내 삶에 우산을 들고 나타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나는 언제나 우산을 들려주는 사람, 바람의 소식은 묻지 마세요 오늘의 소식은 더디게 흘러갈 겁니다 당신의 어깨를 바라보며 나는 때때로 새처럼 날고 싶습니다 누가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비를 맞으며 마음을 이어 붙으며 낯선 당신의 뒷모습을 이해합니다 풀잎처럼, 새 때처럼, 파도처럼, 앞에서 부르면 뒤에서 답하는 날입니다 수없이 부르면 수없이 답합니다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우리는 함께 날아갑니다 . . . . 김수길 사진 |
서소문별곡 西小門別曲 광화문에서 사라져 버린 서소문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천주교도들의 박해와 돈의문... 4.19의 경교장 총성들이 하늘의 먼지들로 흩어져 수많은 빌딩 사이의 철길과 고가도로는 모두 사라져 시간의 무한궤도에서 침묵만을 지킨다. . . 동양극장, 화양극장 속의 광대의 헛웃음처럼 그렇게 또 그렇게 김수길 사진 글 |
유진상가 무악재 넘어 홍제사거리에는 1970년에 세워진 주상복합 아파트 당시만 하여도 괴물같은 고층건물이였다. 153번 통학버스로 지날때마다 개천위에 세워진 건물이 언제 넘어질까? 늘 불안과 기대 속에서 눈을 감곤했지.. 결코 작지 않은 재래시장 인왕시장과 함께 새벽부터 부지런한 도매상인들의 시끄러운 삶이 있는 곳 백련산이나 안산에으로 짧은 산행 후 시장좌판에서의 막걸리 한 잔이 그리 시원했는데 이제는 그 맛이 도통 나지를 않는다. 정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내 입맛이 바뀌어 진 것일까? 근처 호텔 나이트에서 볼 일(?)을 마치고 2차로 해장술하던 그곳에 잠을 못이룰 때면 슬쩍 한 자리 차지하고 앉는다. 뿌연 새벽 안개를 안주 삼아 어제와 내일을 잇고 있다. 김수길 사진 글 |
사진, 글 김수길 | 서대문 사거리에서 무악재 방면으로 좌측에 위치한재래시장 ‘영천(靈川)시장‘은 1960년 정식 등록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요즈음 젊은 층들의 SNS 맛집 열풍으로 떡볶이, 꽈배기, 튀김, 떡갈비 등의 주전부리와 주막 ‘더 풍년’으로 활기를 찾아가고 있지만 그 역사는 조선시대 때로 올라간다. 조선시대에는 떡집으로 형성된 ‘떡전거리’가 있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서대문 형무소’ 재소자들의 사식으로 떡과 같은 먹거리를 책임지던 시장으로 역할을 하며 인근의 현)독립문 근처에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慕華館)’이 있어 ‘관동시장’(館洞場)이라 불리다 해방 후 안산의 위장병에 효험한 ‘영천(靈川)약수의 이름을 따오면서 지금까지 ’영천시장‘으로 불려온다. 최근에는 가까이 있는 ‘안산’(鞍山)과 ’인왕산’(仁旺山) 등산객들의 막걸리 한 잔 뒤풀이 자리로, 젊은이들의 맛집 순례코스로 거듭나고 있고 2021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정식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주변에 1916년 붉은 벽돌로 세워진 ‘석교감리교회’는 가을 단풍철 작지만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1910년에 세워진 ‘감리교신학대학‘은 최초의 남녀통합 교육기관(1925년)으로
김수길 글, 사진 사천(沙川)이라 불리던 홍제천 인근의 땅. ‘모래내‘라 불리는 곳. 한국전쟁 후 이촌동의 수재민과 용산 철거민 천막촌이 들어서며 서울의 꿈을 꾸는 각지의 사람들이 판자집을 지으며 살아왔다. 1973년에 세워진 모래내 서중시장... 이보다 10여년전 세워진 모래내시장과 함께 서북부 지역의 대표적 도,소매 시장으로 자리메김을 하였고,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 해왔다 1968년에 지어진 대중목욕탕과 선술집들, 길 건너의 모래내역 100여개의 작은 점포와 쪽방들, 포장마차 거기에 걸맞는 ‘성인 캬바레’와 일명 색시집 골목등 오래된 국산 3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시간이 멈추어 버린 ‘작은 천국’ 경의선 열차의 정취도 자판기 커피의 따스함도 함께 사라진 이곳의 모습을 지난 사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애잔한 가슴 속 오후의 긴 그림자를 다시 만나고 싶다. 2022년 지루한 여름에
김수길 작가 | 1973년에 세워진 모래내 서중시장, 이촌동 수재민, 용산 철거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지금 사라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