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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아픔은 내가 낫게 하겠소,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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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최석태 |

 

발에 피가 난다. 손에 피가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친 발을 돌보느라 온 정신을 모으고 있는 남자.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피가 날 정도로 발을 다쳤고 상처를 돌보고 있는 주인공의 손에 피가 묻었다는 것이다.

 

 

펜에 잉크를 묻혀서 남자의 얼굴, 몸, 다친 다리를 잡은 한쪽 손과 피가 묻은 발을 쥐려는 다른 쪽 손을 그렸다. 남자의 얼굴과 목 여자의 다리에 피부 빛깔을 칠하고, 나머지 배경에는 하늘 빛깔을 옅게 칠했다.

 

발을 치료하려는 남자는 머리 부분을 비롯하여 손과 하반신 일부까지 보인다. 머리 부분은 절반 정도만 보이게 잘라냈다. 이목구비는 곧게 그은 선으로 이루어졌다. 눈코입은 물론, 머리카락과 턱까지도 곧고 각진 모양이다.

 

화면의 위쪽에 잘리다시피 그려진 눈에서 발 치료에 열중하는 남자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그린이의 의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 잘리다시피 그려진 눈은, 직선으로 강하게 그려진 남자의 얼굴 모습과 함께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남자의 시선은 조명이라도 비추듯, 화면 중앙의 사건을 비추면서 지배하고 있다.

 

발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피가 흐르는 다친 발과 이어진 종아리만 보이므로, 우리는 이 발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짐작하기 힘들다. 치료하는 이가 남자이니, 치료받는 이는 여자이지 않을까? 그림의 뒷면을 보면 분명해진다. 뒷면에 적힌 주소와 이름은 일본 중심가에 사는 '이방자'로 중섭의 여자친구다.

 

받는 이 이름과 보낸이 이름 사이에 속달이라고 찍힌 붉은 색 도장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그림이 그려진 엽서가 우체통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중섭이 직접 우체국을 찾아가서 관제 엽서를 하고 이에 더하여 속달료도 냈음을 알 수 있다. 한 시라도 빨리 내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그림의 뒷면에 찍힌 속달 도장 말고도 눈여겨 볼 것이 또 있다. 보낸이 이름인 '중섭(仲燮)' 위에 적은 숫자 6.3.은 그림을 그린 날짜를 가리킨다. 중섭이 엽서에 그린 그림의 뒷면에는 거의 대부분 날짜가 적혀 있다. 그가 대여섯 살 무렵에 사과를 주면 먹지 않고 그린 뒤에, 그림에 날짜를 적었다는 전설 같은 전언은 아무래도 믿어야 할 것 같다.

 

이중섭이 이 엽서 뒷면에 그린 것에 얽힌 이야기는 얼마전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