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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발견된, 이내창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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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공권력에 의한 죽음

 

전승일 작가 |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제정 2000년, 폐지 2009년)에는, "의문사(疑問死)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의문의 죽음으로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위법한 공권력의 직접·간접적인 행사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죽음을 말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의문사'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경찰·군·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의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죽음을 가리킨다.

 

1989년 8월 15일, 전남 거문도 외딴 바닷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이내창 의문사 사건'은 80년대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내창이 혼자 바람을 쐬러 거문도에 내려가 유림해수욕장 해변가 암석지대에서 미끄러져 실족한 후 익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유가족 및 중앙대 교수들과 학생 등으로 구성된 '고 이내창 학생 사인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내창(당시 예술대학 조소과 재학 중)씨가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으로 바쁜 일정 중에 300km나 멀리 떨어진 거문도에 혼자서 갈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고 하기에는 사체 상태와 현장 지형 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편 대통령 직속 기구였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활동기간:2000년~2004년) 조사에 따르면, 이내창 사망 사건의 "사인 감정을 의뢰한 대한외상학회 홍윤식 박사 및 일본 법의학 카미야마 박사의 감정 소견을 종합하면, 사인은 익사이지만 두부와 안면에 집중적인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타자의 외력에 의한 뇌진탕 또는 좌상(외부로부터 둔중한 충격을 받아 신체 내부의 조직이나 내장이 다치는 것)으로 의식 소실 상태에서 익수되어 익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토양감정 분석결과를 보면 사망 당시 이내창이 신고 있던 신발 밑에서 적출된 토양과 경찰에서 지적한 이내창의 실족 지점(유림해수욕장 남쪽 220m 지점)의 토양이 서로 상이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직원과 서울시경 및 대전시경 경찰관 다수가 이내창씨와 함께 거문도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내창은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통일운동·민족미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 과정에서 국가안전기획부의 내사공작과정에서 거문도로 유인 및 납치되어 사망하였을 개연성이 높기에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안기부의 비협조로 직접적인 관련자를 확보하지 못했고, 또한 당시 동행자 및 감시자들로 추정되는 자들이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부인진술로만 일관하고 있어 이내창의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하였다"고 밝히면서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다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에는 "이내창의 죽음은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라는 '소수의견'이 남아 있다.

 

이내창 열사가 통한의 죽임을 당한지 34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죽음은 정확한 사망 경위와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사'로 남아 있고,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현재 이내창 열사의 묘지는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