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일 작가 | 두 살 때 소아마비 진단을 받고 평생을 소아마비 증후군을 안고 살았던 장애 연구가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 1953~2015) 교수는 저서 <장애 미학(Disability Aesthetics)>(2008)을 통해 “장애는 미래 발전에 작동하는 중요한 미적 가치”라고 하면서 “장애는 현대예술에서 결함이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는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며, 미학의 역사에서 기존의 가정들을 실험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장애는 현대미학에서 필수적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에게 장애는 무엇인가? 토빈 시버스에 따르면 장애는 미적 인식을 확장시키고 다양화하며,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예술적 아이디어와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은 장애미학을 끌어안고 근본적인 미적 전제 조건들에 물음표를 던질 필요가 있다. 장애는 신체적·정신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정체성이며, 장애미학은 손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럽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장애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이 만들어내는 장애예술(Disability Arts)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
전승일 작가 | 편집자주 : 2023년 1월 시작하여 28점의 그림을 연재한 <전승일의 생각그림>을 <전승일의 AI 아트>로 컨셉을 바꾸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예술은 인간의 생각과 감성, 사유와 사상의 반영이다. 그런데 플랫폼 자본주의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예술과 콘텐츠의 개념, 형태, 소통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전승일의 AI 아트>는 ‘생성 AI 시대의 대안적 예술담론’을 탐구하고자 한다. AI를 반대하는 시각예술가들 위 사진은 미국의 경제언론 포브스(Forbes)지에 게재된 롭 살코비츠(Rob Salkowitz)의 기고문 <AI Is Coming For Commercial Art Jobs. Can It Be Stopped?(AI상업예술, 멈출 수 있을까?)>에 실려 있는 이미지이다. 롭 살코비츠는 <Comic-Con and the Business of Pop Culture>의 저자로서 만화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아이스너 상(Eisner Awards) 후보에 오른 저널리스트이자 대학 교수이다. 롭 살코비츠는 “텍스트를 이미지(Text to Im
뉴스아트 전승일 작가 | 2024년 올해는 제주 4.3 76주년이 되는 해이다. 제주 4.3 사건은 해방 직후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건국과 한국전쟁 이후에 이르기까지 무려 7년 7개월 동안 지속된,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민간인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1947년 3만여 명이 모인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6살 아이가 치여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한다. 이들 가운데는 15세 국민학생과 젖먹이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피살된 여인도 있었다. 이 ‘3.1사건’은 제주 4.3의 도화선이 되어 대대적인 민·관 합동 총파업이 일어났고, 이에 미군정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지목하고, 경찰과 극우단체의 무차별 검속과 고문치사가 잇따랐다. 제주 4.3은 이러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군경 토벌대에 의해 ‘불태워 죽이고 때려 죽이고 굶겨 죽이는’ 소위
전승일 작가 | 1950년 7월초, 경찰과 국군은 청주 청원지역 보도연맹원 700여 명과 청주형무소 재소자 300여 명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한 후 충북 청원군 분터골 일대에 암매장했다. 분터골은 충북지역 최대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이다. 풀리지 않은 분터골의 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부터 2년 동안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유해발굴 사업을 실시하여 300여 구의 희생자 유해를 발굴했으며, 수십 점의 탄피, 옷, 단추, 고무신 등 540여 점의 유품들이 수습되었다. 충북 곳곳에서 발생한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는 5,000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굴 당시 청원 분터골 민간인집단희생유해발굴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교수)의 우종윤 책임연구원은 “출토 당시 유해는 30여 미터 정도로 줄을 지어 있었으며, 2~3겹씩 쌓여 흩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민간인들을 줄 지어 꿇어 앉힌 뒤 근접 사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림 속의 노인은 2007년 제1회 청주 청원 민간인 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 때 촬영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애절하게 흐느끼는 어느 유족의 모습이다.
뉴스아트 전승일 작가 |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1951년 1.4 후퇴를 전후한 한겨울 속에서 강화도 전 지역에서는 국군과 미군, 강화경찰서 등의 지원을 받은 ‘강화향토방위특공대’에 의해 한 살배기 아기부터 여성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최소 600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학살되어 희생당했다.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139명을 포함한 430명 이상의 강화지역 민간인들이 ‘강화향토방위특공대’에 의해 강화경찰서와 면지서 등으로 연행·구금돼 고문을 당한 뒤, 갑곶나루, 옥림리갯벌, 월곶포구, 돌모루포구, 철산포구, 온수리 사슬재 등지로 끌려가 집단 학살됐다”고 진실규명 했다. 또한 진화위는 “강화지역 민간인 183명이 우리 국군과 미군의 통제 하에 있던 교동도 주둔 유엔군 유격대(UN Partisan Forces)에 의해 ‘내응행위자(몰래 적군과 통한 자)’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상룡리 안개산, 고구리, 난정리, 지석리 해안 등지로 끌려가 집단 학살됐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림 속의 소녀는 2007년에 강화도 합동위령제를 촬영하러 갔을 때, 우연히 카메라에 포착된 묘비 앞에서 꽃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다. 어느 희생자의
뉴스아트 전승일 작가 | 2023년 나의 연재 그림 마지막 주제를 어떻게 할지 여러 날 고민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 새장르공공예술"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진행했던 <코리안 제노사이드>展(2007년)의 방대한 사진 자료들을 다시 꼼꼼히 찾아봤다. 어느 지역 희생자 합동위령제의 진혼굿 사진 중 한 컷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그림은 그리는 작업보다 만드는 작업에 더 힘을 쏟았다. 그림에는 한국전쟁전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100만 민간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담았다. 지금도 구천을 떠돌고 있는 영혼을 그림으로 위무(慰撫)해본다.
뉴스아트 전승일 작가 | 80년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의 내막이 드러난 지 36년 만에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이 지난 21일 처음으로 인정되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9부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203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45억 8천만 원을 인정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된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인 수용시설로서, 특히 전두환 정권의 묵인, 방조, 협력 하에 최소 513명이 사망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악의 학살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힌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2022년에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했으며, 수용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림 <살아남은 아이>는 9살 때(1984) 누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서 지옥이나 다름없는 가혹한 폭력과 고문, 그리고 온갖 인권유린을 경험한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한종선씨의 그림을 전승일 작가가 다시 그린 그림이다. 원본 그림은 2014년 출
전승일 작가 | 대학 시절 1989년 8월말 서울대학교 신림동 근처 노상에서 신원 미상의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관 6~7명에게 집단 구타당한 후, 수사관들이 가져온 차에 강제로 실려 불법적으로 안기부 남산 지하밀실에 연행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사건: 화가 홍성담 간첩 조작 사건) 혐의로 약 2주일 동안 남산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 온 몸을 발가벗겨진 후, 군복만 입은 채 감금된 상태에서 구타와 욕설 등 온갖 신체적, 정신적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 1989년 서울구치소 수감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실형을 선고(검사: 김학의, 판사: 여상규) 받았다. 그러나 나는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89년 사건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실형 선고의 효력을 상실케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면 복권장’을 받았고,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증서를 받았다. 그리고 2012년 경희대병원 정신과 진단 결과, 89년 안기부의 불법적인 고문 수사와 가혹 행위로 인하여 정신과적 질환이 발생하였음을 확인했다. 진단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뉴스아트 전승일 작자 | 1986년 10월 28일, 전국 각 대학에서 모인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건국대학교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을 결성하는 연합 집회를 가졌다. 당시 서슬 퍼런 전두환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2천여 명이 모여 전국 조직을 결성하는 집회를 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당시 경찰은 대학 간 연합 집회를 대부분 원천봉쇄 하였는데, 이 날 아침부터 건국대에 배치된 경찰은 검문이나 학생증 검사를 하지 않고 아무런 제지 없이 학생들을 집회장으로 들여보냈다. 학생들이 '애학투련' 결성 선언문을 낭독하고, 독재정권 화형식을 하는 순간 갑자기 대규모의 경찰 병력이 최루탄을 난사하며 학교 안으로 난입해 진압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폭력 진압에 밀려 학생회관, 사회과학관, 도서관, 본관 등 5개 건물로 흩어져 들어가 건물에 고립된 채 필사의 저항을 하며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강요된' 농성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 3박 4일(66시간 50분)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경찰은 10월 31일 아침, 헬기까지 동원한 8천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황소 30'이라는 폭력적 진압 작전을 벌여 1천5백여 명의
전승일 작가 | 삼중수소의 공격 싱글채널 비디오 / HD / 2분 10초 삼중수소가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게 되면 다른 방사선 핵종보다 더 치명적으로 세포에 손상을 일으키며, 체내에 남아 증식하면서 농도가 축적된다. 또한 삼중수소는 인간 유전자에도 손상을 일으켜 세대 간 영향을 미치며, 해양 생태계의 각종 어류에도 영향을 주어 생식 능력 저하 등 여러 가지 생물학적 파국을 초래한다. 본 작품은 미디어 속 이미지에 등장하는 삼중수소의 영상 그래픽 작업을 통해 그 ‘공격성’을 재시각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