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잠깐 한눈판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력서가 아니라 동영상으로 직원을 뽑고 있다고 한다. 한화생명, 롯데홈쇼핑, 제주항공 등 의외로 많은 기업에서 채택 중이다. 채용 시장에 동영상 이력서가 등장한 건 2000년 전후이니, 활성화되는 데에는 2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동영상 이력서가 누구보다 필요한 곳은 공연예술 분야이다. 배우의 목소리 톤과 발음, 표정 변화와 움직임은 문서와 사진으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프로젝트 실존’은 배우가 특정한 역할의 핵심 장면을 연기하는 것을 찍어 연기 프로필 영상으로 아카이빙한다.
현재 11개의 영상이 올라왔는데, 링링링링, 아마데우스, 칼리굴라, 화염, 눈 등 다양한 작품의 엑기스를 통해 배우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배우 임요영 씨는 ‘동물원 이야기’ 중 ‘제리’역 독백을 10여 분이나 이어간다. 배우 김해주 씨는 ‘기생충’의 ‘김기정’역을 소화했고, 배우 표민지 씨는 ‘칠산리’의 ‘간난’역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배우 이명희 씨가 ‘장미의 성’에 나오는 ‘이씨부인’역을, 배우 이봉하 씨가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정진수’역을 연기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 소름 끼치는 영상들은 마치 소극장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공연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여기에 올라온 영상들은 그저 배우들의 프로필 영상이라 하기가 두렵다. 짧은 시간에 특정 배역의 핵심적인 대목에 순식간에 몰입하여 연기해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세팅되지 않은 무대에서 상대 배역도 없는데 말이다.
촬영을 맡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박치치 감독은 작가노트에서, “우리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실존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배우는 존재 이상의 실존적 의미로서 연기 그 자체가 되고 그럴 때 세계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우리는 이 영상 앞에서 압도된다.
그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러한 연기자, 즉 피사체의 실존을 담는다. 그래봐야 일부분만을 떼어낼 뿐이며 온전히 담지 못해 아쉬워할 뿐이지만.
“이것은 연출자에게 평생을 거쳐 넘어야 할 거대한 벽으로 다가온다. 뷰파인더를 보는 이는 평생에 걸쳐 기술과 경험을 쌓아 운명을 거슬러 벽을 넘고자 하지만 결국 이 지고한 실존의 벽을 넘지 못 하고 좌절한다.”
“존재가 존재 스스로를 규정하고 주체적인 세계의 존재로서 실존하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것. 우리는 이것을 연기라고 부른다. 존재들이 실존하는 순간들을 포착하되 그것이 온전하지 못 해 괴로워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촬영이라고 부른다.”
프로젝트의 이름이 실존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