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원주는 민선 8기 시장 교체와 함께 전례 없는 문화적 파괴를 맞이했다. 새로 취임한 시장은 전임 시정의 흔적 지우기에 집착하며 문화예술정책을 싸그리 뒤엎었다. 사업은 멈췄고, 공간은 폐쇄됐으며, 운영 주체는 바뀌었고 블랙리스트까지 등장했다. 원주의 문화예술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폭력의 정점에는 ‘아카데미극장’이 있었다.
1963년에 개관한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60년을 버텨온,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단관극장이다. 그 시절 원주의 C도로는 '시네마 로드'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 거리에 4개의 극장이 줄지어 있었고, 저마다 특색 있는 상영으로 극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눈물과 웃음을 선사했다.
시간이 흘러 원주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그 거리의 마지막 상징이자 시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문화유산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 무렵, 극장은 시민들의 손으로 다시 되살아났다. 2022년 1월, 원주시에서 극장을 매입했고 문체부 공모에 선정돼 리모델링과 문화 커뮤니티 공간 활용 비용으로 39억 원의 예산을 확보한 상태였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2023년 4월, 원강수 시장은 극장 철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충분한 숙의도, 공청회도 없이 불과 1년 만에 모든 계획이 뒤집혔다.
극장 철거 조짐이 보이자 <아카데미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픈카톡방이 개설되고 각계각층의 전문가 단위에서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철거 장비가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8월부터는 격렬한 대치가 수차례 있었고 많은 사람이 다치고 눈물을 흘렸다. 철거 과정에서 법적 절차는 무시됐고,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실종됐다.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적했다. 수많은 기자회견과 집회, 피켓팅, 천막 농성, 단식 농성, 고공 농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무지한 자에게 주어진 권력은 마치 칼자루와 같았다. 시민의 외침은 거짓말과 조롱으로 돌아왔고, 권력은 귀를 막은 채 기계처럼 철거를 강행했다. 결국 2023년 10월 말, 고공 농성자들이 연행됨과 동시에 극장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 후, 지난 2년간 원주시의 행정은 말뿐이었고, 약속은 번번이 무시되었다. 극장 철거 당시, 극장 안에 남아있던 자료와 물품을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고 시민에게 공개하겠다던 마지막 약속 또한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극장이 철거된 자리에는 원주에서 가장 초라한 공연장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계속 물음표만 남는다. 도대체 시장이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나? 시민을 탄압하며 철거를 밀어붙여야 할 만큼, 무엇이 그의 '역린'이었을까?
첨예한 사안에 대해 토론과 숙의는 마땅한 의무임에도, 되레 조례에 따라 시정정책토론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공권력을 휘두르며 입을 막았다. 시민의 안전이 중요하다면서 시민을 극장 유리문으로 밀어 넣었다. 철거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법의 잣대를 들이밀며 시민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시장을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원주의 주인은 시장이 아니라 시민이다. 아카데미극장은 시민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려 했던 시민 24명이 업무방해, 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검찰은 징역 총 5년 10개월, 벌금 총 4,500만 원을 구형했다. 24인의 최후진술이 있던 날 재판정은 마치 한 편의 법정 드라마 같았다. 법정은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 훔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피고인 모두 당당하게 “옳은 일을 했다”라고 말했고, 이들이 처벌받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는 8월 11일, 이들에 대한 최종 선고가 내려진다. 이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온라인 탄원 연명은 게시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2,000명에 육박했다. 아카데미극장 문제는 더 이상 시민 24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대한민국 공공성과 정의의 기반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경고이다. 시민들이 법정에 설 것이 아니라, 잘못된 권력이 여전히 살아 날뛰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오늘도 연대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부당함에 맞서고 서로를 붙잡는 순간, 권력은 반드시 흔들린다. 시장에게는 임기가 있다. 그러나 시민의 연대는, 끝이 없다.
최은지 (아카데미의 친구들 활동가)
주 - 원주 아카데미극장 사건이란?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문을 열어 6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원주의 마지막 단관극장이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라, 오랜 추억이 깃든 소중한 공간이자 도시의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과도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뒤바뀐 것은 2022년,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미 리모델링을 위한 국비 39억 원이 확보되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던 극장을, 시는 안전과 비용 문제를 핑계로 일방적인 철거를 통보했습니다. 충분한 논의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청회도 없었습니다.
이에 지역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은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결성해 극장 보존 운동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아카데미극장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전국의 영화인들도 이들의 보존 운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원주시는 2023년 10월, 행정대집행을 통해 결국 강제 철거를 실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다치고 눈물을 흘렸으며, 저항하던 이들은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고공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극장 철거 이후에 원주시는 철거를 방해한 시민 20여 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시민들 역시 철거 과정이 부당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야외공연장 조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건물의 철거가 아니라, 권력이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짓밟고 소중한 가치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준 비극이자, 개발 논리로 인해 지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