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박근혜 정부시절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경과해 소멸시효가 만료되었다. 이로 인해 아직 소를 제기하지 못한 블랙리스트 사건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길이 막힌다. 그동안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대략 1천 명 수준으로, 전체 피해자 1만 명 중 10%만 소송 중이거나 승소하여 손해배상을 받았다.
가장 최근 판결은 지난 5월 3일이다. 법원은 이 사건의 피고인 대한민국 법무부에 각 1500만 원씩의 손해배상금을 원고에게 지급하라는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원고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며,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되, 블랙리스트로 인해 배제되어 못 받은 지원금은 원고의 재산적 손해로 간주되어 추가로 청구할 수 있다는 전제였다.
문화예술계와 법무부는 이 화해권고를 받아들여 사건을 종결하였다.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는 공무원의 위헌 행위와 불법 행위, 직원 남용은 물론, 평등권 침해, 기관들의 독립성 침해, 정당한 지휘감독권이 없는 출판진흥원에 대한 공무원의 월권 행위 등이 모두 벌어졌다.
판결문에서는 이러한 불법 위헌 행위의 당사자로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비서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책임을 분명히 하였다.
소멸시효 만료 전 가장 마지막으로 제기된 소송은 제 4차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민사소송이다. 2022년 1월 21일 대한민국 법원은 이 소송에 대하여 국가폭력을 인정하면서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고 선고하였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1~3차 민사소송은 2022년 4월 28일, 소송을 제기한 지 5년 만에 열려 4차와 마찬가지로 화해권고를 받고 종결했다. 하지만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충북민예총 소송은 같은 민사소송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가에서 항소하였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청주지법은 충북민예총이 제기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집단 소송'에서 국가가 개인당 1500~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이후 피해자집단이 제기한 첫 민사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항소로 이 소송은 아직도 고등법원에 계류중이다. 블랙리스트 형사 사건인 김기춘 조윤선 등에 대한 소송이 마무리 된 뒤 속개할 예정이었지만, 이들의 재판 기피 등으로 판결이 나지 않으면서 2년째 재판 기일도 잡히지 않고 있다.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 시네마달(대표 김일권)이 국가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를 상대로 낸 소송도 정부의 항소로 아직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문성관 부장판사)는 지난 5월, "피고들이 공동으로 원고에게 8천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인 시네마달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원고의 청구액은 1억 9800여만 원이었다.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원고가 당연히 지원금을 받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피해를 입증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영진위는 항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항소포기 의견에도 불구하고, 소송 당사자인 서울고검이 항소를 제기하였다.
시네마달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 벨>을 배급하는 과정에서 세무조사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시네마달 관련 다큐멘터리 심사 조를 별도로 구성해 의도적으로 배제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두 번의 항소 건으로 정부가 블랙리스트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 충북민예총 사건도 시네마달 사건도, 문제의 당사자였던 문체부는 항소 의사가 없었고 연관 사건에 대하여 모두 화해권고 결정이 났다. 그런데 유독 이 두 건에 대해서 법무부와 서울고검은 항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소멸시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본권 침해이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일텐데,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계속 항소하여 판결을 늦추고 압박하여 지레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더욱 나쁘다.
게다가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소멸시효는 인지 후 3년, 사건 후 5년(일반 사건은 10년)으로 일반적인 사건보다 더 짧게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많다고 판단하여, 국가의 권력남용에 해당하는 사건은 소멸시효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이례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를 없애고, 판결 시한도 최대 한도를 정해서 오래끌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